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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joicewons Jul 12. 2021

마취가 풀리면

고통을 느끼고 싶지않아 영원히


치통이 시작됐다. 일년 전, 바로 이맘 때 사랑니와의 사투가 기억났다. 마취는 했지만 뭔가 대공사가 이루어지는 것이 온 몸으로 느껴졌던 그 때의 기억들. 그리고 마취가 풀리면… (생각하고 싶지 않아 정말!)


지끈지끈 두통을 함께 데려온 치통은 결국 제발로 치과를 찾아가게 만들었다. 이유인즉슨, 작년에 발치한 사랑니가 뿌리가 신경을 건드리고 있어서 윗 부분만 쪼개서 한 것이었고, 뿌리쪽 사랑니가 이제 위로 올라와서 신경을 건드리지 않게 되어서 잇몸을 조금 째고 발치를 해야하는 상황. 고름이 가득차서 통증이 수반된 거라고 했다.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순간이었다.

또 사랑니야?



치료하는 날을 잡고, 하루 세끼 열심히 염증약을 먹으며 몇일 전부터 주변사람들, 가족들에게 이 고통의 순간의 무게를 나누며.. 마음을 준비했다.


그 날이 되었다.

경건하게 누워 두 손을 모아 간절히 기도하고 한껏 어깨가 올라가 긴장한 것처럼 보였는지 쌤이 씨익 웃으시며 말한다.


“긴장하지 마세요. 금방 끝날 거에요. 자, 마취할께요. 조금 따끔할 수 있어요.” (이 와중에 자상함)


마취약을 넣은 주사바늘은 잇몸에 거침없이 쑤욱 들어왔고, 한껏 긴장한 탓에 온 신경이 잇몸으로 향했던 나는 발버둥을 치며 “아얏!” “아아악”을 외쳐댔다.


15분 후. 내 입술은 이제 내 입술이 아니었고, 잇몸도 내 잇몸이 아니었다. 모든 감각이 이제는 마취되어 그 어떤 통증도 느낄 수 없는 치료하기 완벽한 순간이 되었다.


그리고 5분 후.

검붉은 피가 얼룩덜룩 묻은 작은 이 조각 하나가 쌤의 책상에 놓여있는 것이 보였다.


순간 생각했다. 마취가 풀리지 않고 이대로 통증도 아픔도 없으면 얼마나 좋을까. 입 안에서 어떤 대 공사가 이루어져도 하나도 아프지 않을만큼 고통을 멈출 수 있다면, 왜 마취가 풀리고 다시 그 몇배의 아픔을 느껴야 하는 것인가.


마취가 풀려가는 내 입 안에서 시작된 불안한 상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다.


누구나 당연히 아프고 싶지 않고 고통을 느끼고 싶은 사람은 없겠지만 잠깐의 마취가 내 고통을 덜어준 것이 참 감사하기도 좋았다. 인간의 마음이란.. 마취로 영원히 고통을 덜어주었으면 하는 마음. 왜 이런 고통을 오롯이 느껴야만 하는가… 마취의 힘을 빌려 영원히 무감각했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고생했던 잇몸들이 다시 제 역할을 하기 위해 열을 내며 제자리로 돌아오는 동안 - 이리저리 뒤척여보아도 잠도 오지 않고, 어떻게 해도 통증이 느껴지는 약 4시간 - 눈물도 찔끔(?)났지만, 그저 이 시간을 잘 견디고 있는 나에게 마음속으로 무한 칭찬을 보냈다. 그래야만 했다.


또 다른 아픔을 느낄 수 있는 상태로 돌아오고 있기 때문에.



그나저나 나는 오늘도 치과에 간다.

이제 실밥을 뽑으러.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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