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깅스이 Oct 23. 2021

게으른데 성질 급한 사람의 첫 브런치북 발간

아무튼 끝냈다



 최근의 나는 엉망진창이었다. 백신 후유증인지 환절기 때문인지 몸이 많이 아팠다. 10분 정도 걸으면 얼른 집에 가서 누워야 하는 수준의 체력을 자랑했다. 거기에 알러지성 비염, 결막염, 역류성 식도염 기타 등등 각종 염증을 달고 살았다. 몸 상태가 좋지 않으니 운동도 중단했다. 내가 외출하는 곳이라고는 헬스장 아니면 카페, 그리고 올리브영 밖에 없는데 그중 하나를 잃은 거다. 여담이지만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올리브영까지는 10분 이상 걸어야 하는데 그럴 기력이 없어서 오늘드림을 애용했다. 집 밖에 안 나가면 돈을 아낄 수 있다는 말은 틀렸다. 신체 활동이 없으니 마음도 우울해졌다. 글을 쓰기는커녕 노트북 앞에 앉는 것조차 힘겨웠으니 답답하기 짝이 없었다. 아무 것도 안 하는 상태가 잦아지니 줄곧 숨이 막혔다.


 몸이 좀 나아지면 브런치북 발간에 대한 의욕이 활활 타오를 줄 알았다. 아니었다. 나는 게으른 완벽주의자였다. 막상 브런치북을 만드려고 보니 기존의 글을 싹 다 고치고 싶었다. 그러려면 어마어마한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나는 게을렀다. 물론 그럴 체력도 없었다. 어느 정도로 열심히 살아야 성실한 건지 이제 잘 모르겠다. 내가 아는 나는 언제나 목표 의식이 확고하고 계획적이며 열정적인 인간이었는데, 지금은 딱히. 누구보다 열심히 회사를 다닌 대가가 불안장애여서 그런 걸까? 언제나 건강이 우선이라는 마인드가 머릿속에 깊게 박혔고, 아무리 철저히 계획을 세운다고 해도 모든 것을 다 이룰 수는 없다는 걸 알아버렸다.


 심지어 나는 회피형 인간이라는 걸 최근에야 알았다. 브런치북 발간이 내 가장 우선이 되어야 할 글쓰기라는 걸 분명히 해두었음에도 불구하고, 글쓰기 공모전 사이트를 샅샅이 뒤져 날짜가 임박한 다른 공모전에 몰두했다. '브런치북 발간 마감은 뭐, 아직 시간 남았잖아. 침착하게 하자.'라고 생각하면서 브런치 접속을 피했다. 그래 놓고 성질은 급해서 마감일에 아슬아슬하게 응모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분일초를 끝까지 다 쓸 생각은 못할 망정 마음이 촉박해지는 건 싫어서 여유로운 벼락치기를 했다. 


 아무튼 끝냈다. 포기하고 싶은 마음도 컸다. 날짜가 임박한 어제부터 오늘은 비상약을 먹어야 할 정도로 불안했다. 그래도 나는 했다. 일단 했으니까, 잘한 거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브런치북 초판을 발행했다는 문구에 뿌듯하고 괜히 마음이 찡하다.


나의 첫 브런치북 <불안하다고 불행한 건 아니랍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브런치북 발간을 차일피일 미루는 중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