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깅스이 Oct 05. 2021

브런치북 발간을 차일피일 미루는 중입니다

방어기제 [회피] 작동 중!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브런치북 발간 프로젝트 응모 마감은 10월 24일인데 오늘이 벌써 5일이다. 지금껏 쓴 글은 양으로 보나 질로 보나 부족하다. 마감 날짜가 다가올수록 더 불안하고 초조하다. 열심히 써도 촉박한 시간인데 근래 몸이 좋지 않아 앓아누운 날이 많았다. 그러면 침대에서 노트북을 켜 틈틈이 한 두 문장이라도 쓰려는 노력, 아니 성의를 보여야 하는데 그것마저 안 했다. 브런치를 통해 내 책을 낼 수 있는 일 년에 한 번뿐인 귀한 기회가 주어졌는데, 이미 한참 전에 기획해둔 대로 글을 쓰기만 하면 되는데 나는 지금 왜 이러고 있는 걸까?


 글을 아예 쓰지 않은 건 아니다. 사실 꽤 썼다. 그게 브런치가 아니었다는 게 문제다. 브런치북 완성을 나도 모르게 미루고 있었다. '오늘은 공황을 겪었던 일을 써야지.'라고 마음먹은 날에도 막상 노트북 앞에 앉으면 쓰기가 싫었다. 뭔가 그 내용에 대한 글을 쓸 feel이 아니라고나 할까. 그 대신 다른 글쓰기 공모전을 기필코 찾아내어 글을 썼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 쓰면 더 불안했기 때문이다. 브런치북 완성을 위한 글은 쓰지 못했지만, 어쨌든 오늘도 어딘가에 글을 써서 냈다는 일종의 성취감을 얻었다.


 글을 쓰려고 세 번이나 시도했지만, 아직까지 초안도 쓰지 못한 주제도 있다. 그 주제를 떠올리면 할 말이 넘친다. 나는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전에 아이디어나 글을 구성할 내용을 적는 작은 수첩을 들고 다니는데, 이미 그 주제에 대한 내용을 몇 장이고 써뒀지만 노트북으로 도저히 글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주제에 관한 경험으로 나의 생각도 많이 바뀌었고 다른 사람들도 꽤나 고민해봤을 내용이라고 생각해서 브런치북에 꼭 담고 싶은 이야기인데 왜 이렇게 쓰기 어려울까.


새 건물을 지으려면 기존의 것을 부수고 땅을 파내야 한다. 글을 쓸 때도 마음을 건드릴 수밖에 없나 보다. (canon af35ml - agfa vista400)


 진료시간에 의사 선생님께 고민을 말씀드렸다. 브런치북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오히려 다른 글을 쓰게 된다고. 그리고 어떤 내용은 아무리 노력해도 글로 엮을 수 없어서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고 여쭈었다. 선생님께서는 내가 회피 방어기제를 쓰는 것 같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주로 경험을 떠올리며 글을 쓴다. 공황에 대한 글을 쓰려면 그 경험을 떠올려야 한다. 자연스럽게 당시의 감정을 마주하게 되는데 이 때문에 공황을 겪었던 그날처럼 숨이 차고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더욱이 나는 대부분의 글을 정신건강 관련 문제를 주제로 쓰다 보니 발랄한 내용은 극히 드물다. 글을 쓰는 과정에서 부정적인 감정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나 보다.


 "선생님, 저 그러면 괴로워도 참고 글을 쓰는 게 좋을까요?"

어쨌든 쓰고 나면 마음이 정리되고 후련한 기분이 드니까, 과정은 좀 참아야 할까 싶었다. 선생님께서는 괴롭고 고통스러운 마음을 견디면서 억지로 글을 쓸 필요는 없다고 했다. 다만, 힘든 내용에 대해 글을 쓰고 나면 결과적으로는 정신적으로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라고 덧붙였다. 마음이 극도로 힘들었던 날을 보내면서 내 마음을 글로 쓰고 싶다는 욕구가 들었고, 울거나 불안해하며 글을 쓰더라도 완성하고 나면 어쩐지 개운했던 게 다 나한테 도움이 되기 때문이었을까? 어쨌든 몸에 좋은 약은 쓴 게 사실인가 보다. 너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조금 버거운 주제라도 계속 글을 써보기로 마음먹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여름에 생리를 한다는 것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