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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 Rebecca Sep 07. 2023

분신사바로 시험을 봤어요.

어땠을까

꼴등 했지. 정말 진심으로 정직하게 꼴등 했다. 전교꼴등. 우리 학교 3년 연속 전교꼴등이 내 덕분에 딱 한번 꼴등을 면했다. 그리고 나는 한번 전교꼴등이 되었다.


만약 내가 분신사바로 점수가 꼴등보다 좋았다면 나는 도박에 중독된 사람처럼 지속적으로 분신사바 백점 맞기에 도전을 했을 것이다. 심지어 나는 친구들에게 분신사바 시험을 보겠다고 선언했고 나를 따라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굉장히 기분 나쁜 티를 내주었다. 내가 제일 처음 하니까 분신사바는 내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이가 없다.


 여고괴담에 나오는 분신사바는 정말 진심으로 빌고 빌어서 가능한 것이지 나처럼 그냥 될 거라고 믿고 해 봤자 귀신은 내 편을 들어주지 않는다. 귀신도 굉장히 굉장히 많이 간절해야 들어주는 것 같다. 꼴등 해서 정말 다행이다. 그 뒤로 나는 어떤 시험도 정정 당당히 모든 문제집을 달달 외워서 시험을 봤고 당연히 좋은 점수를 얻었다. 그러나 그 시절 분신사바는 굴욕이긴 했다. 친구들이 많이 비웃었다.


질풍노도의 시기를 오래도록 겪은 나는 중3 때 최고였다. 특히 중3 때 친하지 않은 친구들이 몰래 물건을 훔치며 키득거리는 것을 보고 나도 물건을 훔쳐봤다. 나는 분신사바도 꼴등을 했고 문구점에서 문구를 도둑질했을 때도 바로 걸렸다. 정말 대단하다. 운이 이렇게 좋단 말인가. 문구점에서 공책 따위를 훔치다 걸리지 않았다면 오래도록 공짜의 늪에 빠졌을 것이다. 공짜의 매력은 정말 조마조마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기 때문에 일단 걸리면 경찰서에 가게 되고 부모님께 연락을 해야 하며 나는 엄청나게 오랜 시간 도둑질에 관한 비난을 감내해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잘 도망쳐서 기사회생을 했고 다시는 물건을 훔치지 않게 되었다. 또 내가 벌어서 내가 사는 정직한 사람으로 성장했으며 지은 죄를 대신에 사람도 돕고 있다. 죄책감을 덜기 위해서 나는 나의 물건을 함부로 하는 사람들을 여럿 용서해 주었다. 나처럼 철없는 시절에 겪는 많은 일들에 대해서 상담도 아끼지 않았고 봉사도 하며 기부도 한다. 그리고 용서를 하기도 한다. 참 용됐다. 그러나 여전히 공짜는 경찰서에 가거나 비난을 받는 기분이 들어서 싫다. 공짜는 거부하겠다. 나는 경찰서가 싫다.


그 후로도 나는 비뚤어진 짓을 많이 했었다. 내가 물건을 훔치게 된 것은 용돈을 안 주셨던 부모님 탓으로 돌렸다.(비밀이었으니 속으로 탓을 했었다.) 회사가 싫은 것은 나는 잘했는데 상사와 프로세스가 별로라고 탓했다. 영어 점수가 오르지 않는 것은 영어학원 선생님 실력이 좋지 않아서라고 생각했다. 결혼생활이 문제가 생긴 것도 부모님이 자꾸 결혼을 종용해서 급하게 결혼한 거니 부모님 탓이라고 생각했다.



주작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진심으로 정말 그렇게 생각했었다. 이 생각에서 벗어난 지 몇 년 안 되었다. 아주 오래도록 남 탓을 하면서 살았다. 심지어 언젠가는 부모님께 따지기까지 했다. 


심적 고통이 생기는 상황이 발생하면 괴로운 시간을 보내면서 '나는 잘못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구의 잘못인가'남 탓으로 돌리기 위해 가해자를 만들면서 내가 피해자가 되어서 억울하고 분하다는 생각으로 긴 시간을 보냈다. 돌이켜보니 정말 어이가 없다. 모두 나의 선택이었지 엄마는 강요한 적이 없다. 우리 엄마는 정말 피해자다. 아침에 일어나서 도시락을 두 개씩 싸서 (나는 급식 없던 시절에 학교를 다녔다.) 입에 토마토랑 사과 넣어주면서 키웠는데 나는 온통 부모님에 대한 원망 속에서 살았다. 심지어 등록금에 차비에 밥값도 엄마와 아빠의 모든 것을 아껴서 나에게 주셨는데 나는 한다는 소리가 부모탓만 했다는 것이 많이 부끄럽다. 그래서 어느 날 사과했다. 내가 잘못 착각했던 것 같다고 진지하게 사과를 했다. 엄마는 내가 모진 소리를 할 때는 같이 소리 지르면서 내가 언제 그랬냐고 하시더니, 가슴에 품고 계셨는지 가끔씩 미안하다고 더 잘해줬어야 했다면서 울곤 하신다. 한숨이 나온다. 



내가 성인이 돼서도 이 악물고 하루하루 노력하고 공부하고 무언가를 해내고 멋지게 일하고 돈 벌어서 부모님께 갑자기 두둑하게 용돈도 드리고 하면서 부모님은 나에 대한 미안함이 더 심해지셨다. 아무리 아니라고 내가 잘못생각했고 어려서 헛소리 했다고 모두 엄마 아빠 덕분에 내가 잘 컸고 지금의 내가 있다고 말을 해도 울고 불고 하면서 더 잘했어야 했다고 하신다. 



나는 많이 모지리다.

그러니 속죄하는 마음으로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응당 당연하다. 부모님 은혜에 보답하는 방법은 쉽다. 나를 매일 보여주는 것이다. 매일 가서 밥 같이 먹고 전화 자주 하고 오라면 오고 가라면 가는 예스 걸로 사는 것이다. 거기에 플러스로 돈 잘 벌어서 용돈 팍팍드리고 자랑거리를 듬뿍 만들어 드리는 방법을 택했다. 요즘 아주 흡족해하신다. 



이것도 정말 다행이다. 



내가 계속 피해자코스프레를 하면서 부모탓 남의 탓만 하며 살고 있다면 나 자신이 얼마나 한심스러울까? 우리 부모님은 나 때문에 얼마나 더 긴 시간을 죄책감에 괴로워하셨을까? 모든 것이 나의 선택으로 일어난 결과다. 엄마말을 듣고서 잘된 것이 없으니 내가 원하는 길을 가자. 독기를 품고 살았다. 부모 덕분에 독기를 품었으니 내 좋은 일은 모두 부모님 탓이구나.




하루하루 지나면 지날수록 시간이 흐를수록 가족의 소중함이 더욱 깊어진다. 참 오래도록 지치지 않고 어렸구나. 남 욕할 거 없다. 나나 똑바로 살자. 





나는 참 운이 좋다.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서 잘 살겠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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