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니? 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by 이성혁

잘 지내고 있니?

라는 말을 듣고 싶어요. 잘 지내고 계신가요?


오랜만에 편지를 씁니다. 이렇게 오래 걸리려고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쓰고 싶은 이야기가 없던 것도 아니고요. 어떤 솔직한 마음을 쓸까 고민했어요. 제 마음이 요동치는 중이거든요. 잔잔한 바다로 출항했던 배가 깊은 풍랑을 만난 기분이에요. 난파될까 겁이 납니다.


요즘은 도서관에서 독서 모임과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어요. 어제는 인천에 다녀왔고 내일은 집 근처 도서관에 갑니다. 가는 곳곳마다 책이 있어서 좋아요.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지는 않습니다. 한 권을 몇 년 동안 읽기도 하고 하루 만에 읽기도 합니다. 그때그때 변하는 마음 때문입니다. 요즘 기대하는 것은 금, 토, 일에 있을 퍼블리셔스. 북페어를 갈 때마다 오래된 친구 모임에 가는 기분이에요. 만나면 반갑게 인사를 나눠주세요.


어제는 하루 종일 비가 왔고 곧 비 소식이 또 있네요. 늦은 장마인가 봐요. 요즘은 눈이 보고 싶습니다. 하얀 눈이요. 추위는 싫지만 눈은 좋거든요. 눈을 보면 괜히 따뜻한 것 같고 마음이 녹고 그래요. 시간이 너무 빨라요.


작년에는 11월 27일에 첫눈이 왔대요. 어쩌면 한 달 뒤에 첫눈이 올지도 몰라요. 겨울을 기다리지 않지만 눈은 기다려집니다. 그리고 또 한 달이 지나면 올해가 끝이 납니다. 작년 12월 31일에는 도쿄에 있었습니다. 첫 일본 여행이었어요. 도쿄는 그렇게 춥지 않더라고요. 도쿄 시내를 걸으며 같고 또 다른 풍경을 보았습니다. 낯설지만 어색하지 않은 풍경들이요.


수능 원서를 쓸 때 한 곳은 일어일문학을 지원했던 것이 생각났어요. 일본 영화와 드라마, 일본 소설을 좋아했거든요. 아직 좋아하긴 하는데 요즘은 좀처럼 본 것들이 없네요. 가장 최근에 본 일본 영화는 네오 소라 감독의〈해피 엔드〉입니다. 아직 보지 못한 분이 계시면 꼭 보시길 추천합니다. 제가 불안해서 그런지 저는 방황하는 학생들, 청춘들을 이야기하는 영화나 소설을 좋아합니다. 제가 여전히 방황해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이건 다른 이야기인데요. 얼마 전 인천 도서관 수업을 다녀오는 길이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다녀왔어요. 오고 가는 데 4시간 30분 정도 걸립니다. 돌아오는 길은 늦은 밤인데 늦은 밤인데도 지하철에는 많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자리 앉지 못하고 서서 소설을 읽었습니다. 옆에는 교복을 입고 커다란 백팩을 맨 어떤 여학생이 서 있었습니다. 학생 앞에는 빈 임산부 좌석이 있었습니다. 다리가 아픈지 아니면 어디가 아픈지 식은땀을 닦으며 임산부 자리 앞에 털썩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렇게 빈 임산부 좌석 앞에 쪼그려 앉고 한두 정거장을 갔습니다. 열차 문이 열리더니 술에 취한 아저씨가 오셔서 빈 임산부 좌석에 앉았습니다. 앞에 쪼그려 앉아 있던 학생을 지나치며 말이에요. 학생은 일어서더니 열차 문 앞에 다시 쪼그려 앉았습니다. 그때 어떤 양심을 보았습니다.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학생은 결국 몇 정거장을 그렇게 쪼그려 앉아서 가다 내렸습니다. 학생이 어떤 감정을 느꼈을까 생각했습니다. 저는 ‘어떤 책임감’이라는 단어가 생각났습니다. 주변을 둘러보며 도움이 필요한 곳이 있다면 도와주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참 많습니다. 부족한 것도 참 많고요. 무작정 걷고 있는데 목적지를 까먹은 느낌입니다. 앞으로의 내가 기대되지 않는 날이 아주 가끔씩 있습니다. 시간과 현실 앞에서 무력합니다. 그래도 저를 살리는 일은 쓰는 것인 것 같습니다. 어떤 이야기를 써야 할지 몰라서 편지를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다시 그리고 계속 써보겠습니다. 솔직한 마음을요. 좋은 책이 무엇인지 여전히 모르지만 좋은 책을 만들고 싶어요. 좋은 이야기를 써서 많은 사람에게 위로를 주고 싶고요. 해보겠습니다.


감기에 걸리기 쉬운 날씨 입니다. 저는 이미 두 번이나 골골거렸습니다. 아프지 마세요. 몸과 마음이요. 건강하게 흰 눈을 만나봅시다.


겨울 입구에서

성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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