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작은손이 투덜거렸다고 - 아니, 억울해했다고 - 한다.
하필 왜 내가 왔을 때 이걸 진행하는 거예요!
많은 작은손들이 억울해했을 것이다. 요즘은 어린이도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데 바빠 모야에 오는 시간을 내기가 어려운데, ㅇㅇ을 만들겠다 의욕을 불태우며 온 모야에서 글루건을 쓸 수 없다는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들었으니 말이다.
첫 번째 콘텐츠를 발행한 후, 그 콘텐츠가 현장에서 어떻게 활용되는지를 보려고 방문한 모야에서 만난 작은손 역시 짧은 시간 동안 착실히 상실의 다섯 단계를 거쳤다.
부정 에이~ 그래도 조금은 써도 되죠?
분노 아, 왜 못 쓴다는 건데요!!!
타협 딱 한 번만 쓰면 안 돼요? 한 번만요.
우울 ...... :(
수용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만 만들고, 내일 와서 글루건으로 붙여야지~ (음? 작은손? 잠깐만요?)
하지만 그 후엔 투덜거리면서도 뚝딱뚝딱 무언가를 (무엇인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만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오른손이 공유해 주신 사진들을 보면, 다른 모야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던 것 같다.
작은손들이 이 콘텐츠를 수용하는 방식은 다양했다.
과격하게 포기하는 작은손 그럼 나는 오늘은 안 만들래요.
원래 방식을 고수하는 작은손 붙이는 건 내일 할게요.
원래 글루건을 안 썼던 작은손 (아무 반응 없이, 하던 작업을 계속한다)
뭔가 오해한 작은손 모야 가난해졌어요? 집에 있는 글루건 갖고 올까요? 기증할게요.
타협하는 작은손 (만들고 싶었던 것을 미뤄두고, 글루건 없이 만들 수 있는 것으로 주제를 바꾼다)
시도하는 작은손 (글루건 없이 연결할 방법을 궁리하고 시도한다. 오른손에게 질문도 한다)
콘텐츠를 만든 사람으로서는 당연히 시도하는 작은손이 반갑다.
하지만 주목해야 하는 것은 반대의 경우다. 포기하거나, 원래의 방식을 고수하려 드는 작은손. 그리고 타협하는 작은손 - 그도 기존의 계획을 미뤘다는 점에서는 포기한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 - 이다
우리들끼리 하는 이야기가 있다.
모야에 처음부터 글루건이 없었더라면 어땠을까?
우리의 예상은 대체로 일치한다.
그래도 작은손들은 잘 만들었을걸?
몇 년에 걸쳐 팝업놀이터를 열면서 깨달은 사실이 있다. 어린이들은 어떤 환경에서든 즐거움을 찾아내고, 놀고, 무언가를 만들어낸다는 것이다. (문제가 되는 것은 언제나 어른이다. 방법을 묻고, 정답을 묻는다. 자신이 알고 있는 '정답'을 구현할 도움과 딱 맞아떨어지는 도구를 요구한다.) 그러니 처음부터 모야에 글루건이 없었더라면, 작은손들은 그 환경 속에서도 충분히 원하는 것을 만들어내고, 놀았을 것이다.
<만들기의 반대말> 콘텐츠 배포가 끝난 뒤, 오른손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과 인터뷰 결과도 이 의견에 힘을 싣는다. 애초에 '글루건 없이 만들 것'을 전제한 워크숍에 참여한 경우, 힘들어하는 작은손은 있을지언정 글루건으로 문제를 해결하려 드는 작은손은 없었다 (내가 아는 한 그렇다). 하지만 갑자기 글루건을 제한하는 것으로 환경이 바뀐 경우 작은손은 포기하고, 고수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인다. 반면 환경이 바뀐 경우라도 그 제한이 일시적이지 않고, 몇 주씩 길게 이어지는 경우에는 적응하고, 그 안에서 다시 만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니 '못'하는 건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작은손이 새로운 방식을 시도하는 걸 어렵게 만드는 요소는 무엇일까?
이것 역시 오른손 설문 결과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었다.
부족한 것을 채우는 것은 재료가 아니라 작은손의 생각과 실행입니다. 글루건과 접착제는 현대의 발전된 도구입니다. 쉽고 빠릅니다. 하지만 끼우고, 꿰고, 연결하는 수많은 방법들을 잊게 합니다.
- 발화자 불상(不詳)
처음에는 모든 걸 글루건으로 빠르게 완성하던 습관 때문에 포기하려는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작은손들은 새로운 재료나 형태를 탐색하며 결합하는 방식으로도 충분히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느리지만 확실하게 깨달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 마을도서관햇빛따라, 짱구(김주영)
같은 이야기가 오른손 인터뷰에서도 나왔다.
'마을도서관 햇빛따라'와 김해 '한국 작은도서관', 제천의 '내보물1호 도서관', 그리고 울산의 '양정작은도서관달팽이'의 오른손을 모시고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한 줌zoom 인터뷰였는데, 인터뷰 중 반복해서 나온 단어가 '빨리'였다. 글루건을 배제함으로써 시간을 들이고, 만들면서 시간을 갖는, '빨리빨리'에서 벗어난 만들기가 나왔다는 이야기였다.
거기에 주목해 생각하다 보니 어쩌면 글루건이 자주 사용되는 건 '쉽다'는 사실 외에도 '빨리 완성할 수 있다'는 데에 이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작은손이 만들기 경험을 이야기하면, 자연스럽게 '무엇'을 만들었냐고 묻는다. 작은손이 자신의 작품을 보여주면 그게 '무엇'인지부터 확인한다.
"의자를 만들었구나!"
"가족이구나!"
"총이구나!"
"공룡이구나!"
그걸 알아야 제대로 반응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뿐인가. 모야에서 전시되는 것은 보통 완성물이고, 전시되는 작품에는 제목이 붙는다. 제목은 일반적으로 그 결과물이 무엇인지 가리키는 단어로 이루어진다.
이게 온전히 틀렸다거나 나쁘다는 건 아니다. 다만 지금까지 우리가 너무나 당연하고, 익숙하게 해 온 행동이 작은손에게 만들기에서 중요한 것은 결과물, 완성하는 것이라는 메시지를 심어준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 것이다.
앞에서도 말했듯, 요즘은 어린이인 작은손들조차 시간에 쫓긴다. 모야에서 놀 수 있는 시간은 정해져 있고, 그 시간 내에 무언가를 완성하기 위해서는 어디에나 붙고, 빠르게 굳는 글루건만큼 유용한 것이 없다. 그러니 완성에의 강요, 빨리빨리 만들겠다는 강박을 갖게 한 것이 글루건 사용의 커다란 이유는 아닐까. 지금의 만들기 자체가 결과물, 완성에 초점을 둔 만들기로 흐르고 있지는 않은가.
결국 <만들기의 반대말은?>이라는 질문은 새로운 질문으로 돌아왔다.
완성에 대한 강요는 어린이 만들기에서 지양해야 하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완성을 위한 만들기가 아닌, 경험과 과정에서 즐거움을 찾을 수 있는 만들기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렇다면, 시도와 탐색, 행위 자체에 대한 중요성을 어른들이, 오른손이, 이해하고 이끌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래도 내년, 모야를 향한 릴리쿰의 질문은 이것이 될 것 같다.
모야를 꾸준하게 다니던 작은손(초2)이 있었는데 점점 쓰는 재료, 만드는 방식이 비슷해지면서 표정에서 지루함이 느껴졌어요. 특히 하루는 목공풀을 지루한 표정으로 칠하는 걸 보고 면과 면 연결, 줄을 이용한 연결, 압정이나 이쑤시개로 연결하는 방법 등 같이 해본 후 만들기에 접목해 보았어요.
무의식적으로 풀과 테이프 등을 써오다가 새로운 방식이 재미있었는지 앞으로 만들기에 여러 방법을 섞어 하기로 했어요.
- 발화자 불상(不詳)
다양한 연결 방법이 있다는 것과 글루건, 테이프, 풀이 있어야 꼭 만들기가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말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닌 경험으로 전달했다 생각합니다.
작은손들이 하기 싫어하고 관심 없어 보여 내심 안타까웠는데 경험 이후 모야에서 만들기를 하다 "그 때 이거 배웠잖아요", "접착제 없어도 이렇게 연결하면 가능해요"등 배웠던 것을 다시 생각해해 보고 다른 작은손에게 알려주며 성장한 모습을 보았습니다.
- 발화자 불상(不詳)
새로운 작업 방식의 탐구 및 문제 해결의 새로운 방식을 스스로 고민해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져볼 수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반포모야에서 관찰된 모습이 ‘접착제’를 사용하지 않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기보단, 그럼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해야 되지?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해 보고 싶어 하는, 그 과정에서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문제들과 해결방식에 호기심과 뿌듯함의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 반포도서관 모야, 이유림
만들기에 있어서 글루건 한 번이면 쉽게 접착할 수 있는걸 굳이 굳이 우회해서 다른 방식으로 결합 또는 붙이는 방법을 고안하는 경험 자체가 특별했던 것 같습니다.
......
아마 워크숍에 참여했던 대다수, 어쩌면 작은손 모두가 이번 만들기의 반대말 프로그램에 참여했건 기억을 잊을 수도 있겠지만, 운영자로서 작은손들이 이번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느꼈던 '불편함'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살아가는 데 있어 다양한 종류의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그 모든 어려움을 단숨에 해결해 주는 '글루건'은 존재하지 않고, 언젠가 작은손들은 어려움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각자 머리가 아플 정도까지 고민하는 시간을 분명 겪게 될 것이기 때문에... 스스로가 해결책을 고민하는 이 시간을, 그리고 성취감을 기억한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세종시립도서관 모야, 노수원
2025년 모야 <만들기의 반대말은?>을 돌아보면서, 물고기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