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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liquum Apr 11. 2019

놀이해부도감: ① 딱지치기

놀이를 파헤치고 해킹해 보는 놀이 해부 도감

어떤 놀이를 처음 배운 순간을 정확히 기억하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나는 더는 골목에서 뛰어놀지 않게 된 지금도 구슬치기, 고무줄놀이, 말뚝박기 등 어린 시절의 놀이를 기억하고 함께 놀던 친구들의 얼굴도 어슴푸레 떠올릴 수 있지만, 처음으로 딱지 접는 법을 배우고, 머리 위로 넘어가는 고무줄을 발에 거는 방법을 배웠던 순간은 도무지 기억할 수 없다.


초파리가 공기 중에서 자연스레 생겨나는 게 아닌 것처럼 내가 가진 소소한 지식 역시 어딘가에서 얻은 것일 것이다. 아마 소문처럼 흘러왔겠지. 제대로 걷기도 전 놀이터 구석에 앉아, 나보다 나이가 많은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먼저 익숙해진 친구들의 응원이나 구박을 받아 가면서, 그도 아니면 동네 누나나 오빠가 동생에게 알려 주는 것을 귀동냥하면서 말이다. 골목이 아직 어린이들의 차지였던 시절, 놀이는 그런 식으로 전해지고, 변화하고, 발전 혹은 쇠퇴를 해 왔다. 


<놀이해부도감>은 그 구전의 흐름을 거슬러 하나의 놀이에 얽힌 역사와 과학, 미학을 탐구해 보고자 한다. 누군가에겐 한갓 농담 같을 수도 있지만, 하루가 지루한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 탐구가 새로운 놀이로, 과격한 실험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과학과 꼼수의 미학, 딱지 얼마나 쳐 봤니? 

- 과학적 고증과 재현을 통한 딱지 연구 


놀이해부도감이 첫 번째로 파헤쳐 볼 주제는 딱지치기, 그중에서도 종이를 접어 만든 딱지를 가지고 노는 놀이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은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에서 딱지치기를 ‘종이로 만든 딱지를 땅바닥에 놓고 다른 딱지로 그 옆을 쳐서, 땅바닥의 딱지가 뒤집히거나 일정한 선 밖으로 나가면 따먹는 어린이 놀이’라고 정의했다. (2017년까지만 해도 ‘남자’아이들의 놀이로 정의되어 있었는데 개정된 모양이다 - 박수) 


그렇다면 ‘딱지’는 무엇일까. 


이 사전은 딱지에 대해서는 단 한 줄, ‘두꺼운 종이를 접어 만든 것과 무늬나 그림이 인쇄된 종이를 오려 낸 것, 두 가지가 있다’고 적혀 있다. 


이것으로는 설명이 충분치 않다는 의문을 품게 된다. 어차피 딱지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테니 구구절절한 설명은 필요하지 않다 생각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명색이 ‘사전’이니 그런 태도는 곤란하지 않은가 싶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된다. 누구나 그랬을 거라고 단언하지는 않겠으나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이 달력이나 교과서를 뜯어 정사각형 모양의 딱지를 접어 본 경험이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혹은 동네 문방구를 지나며 인기 있는 만화 영화의 캐릭터가 빼곡히 인쇄된 종이 위에 동그랗게 뜯어 낼 수 있도록 칼선이 새겨진 그림 딱지를 본 적이 있거나. 


모두 같은 이미지를 머릿속에서 그릴 수 있으니 된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렇지가 않다. 이 글을 시작하며 짐짓 놀이의 전문가라도 된 양 그럴싸하게 선언했던 것처럼 놀이는 고형의 것이 아니다. 요즘 인터넷에서 ‘딱지’를 검색하면 예전에는 보지 못했던 종류의 딱지가 보인다. 고무나 부드러운 플라스틱 재질로 로봇이나 공룡 등 캐릭터의 모양을 찍어 낸 딱지이다. 나는 최근에서야 이런 딱지가 있다는 걸 알았지만, 요즘 아이들에게는 태어나 접해 본 딱지라곤 고무 딱지가 전부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니 백과사전의 딱지에 관한 설명은 편찬 시기였던 1995년에는 맞았지만, 지금은 틀린 셈이다.   


전통 딱지와 고무 딱지


재미있는 점은 우리나라에서는 종이를 접어 만드는 딱지와 그림 딱지를 거쳐 그나마 가장 나중에 등장한 이 고무 딱지가 딱지의 시초가 된 진흙 멘코(めんこ, 面子)와 비슷하다는 점이다. 


일본 야마나시에서 출토된 진흙 멘코 (www.pref.yamanashi.jp)


시간을 거슬러 딱지치기의 유래를 살펴보면 ― 의미 있는 시작점을 어디로 보는지에 따라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 일본의 아동문화학자인 오사무 카토(加藤理)는 그 원형을 헤이안 시대(794~1185) 사료에 묘사된 놀이에서 찾는다. 그때의 놀이는 지금과는 달라서 조개껍데기나 나무 열매, 작은 돌 등을 바닥에 얕게 판 구멍 안에 던져 넣는 방식이었다. 이 놀이는 조금씩 방식을 달리하며 명맥을 유지해 오다 에도 시대(1603~1868)에 이르러 진흙으로 사람의 얼굴이나 몸, 동물 형태를 찍어 내는 방식으로 놀잇감이 발전했고, 어린이를 비롯한 전 연령대의 사람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했다고 한다. (어떤 사람은 그때 멘코가 유행한 이유를 진흙 멘코의 매력이 아니라 힘과 관계없이 기술만 있으면 이길 수 있는 놀이였다는 데에 있었다고 설명하는데, 신빙성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설득력은 있다고 본다. 어린이에게 어른을 이길 수 있는 기회라는 건 엄청 큰 매력 요소가 아닌가.)


멘코의 유행은 메이지 시대(1868~1912)로도 이어지면서 진흙은 납으로, 납은 종이로 그 소재가 점차 달라진다. 우리와 같은 형태였는지는 모르겠으나 그때쯤 일본에서도 종이를 직접 접어서 만드는 방식의 멘코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러나 마분지의 등장으로 종이 인쇄물의 제작비가 줄어들자 멘코에서 상품성을 본 어른들이 이를 사업화하면서 일본의 멘코 문화는 그림이 인쇄된 원형, 혹은 사각형의 종이 멘코를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멘코가 현대와 유사한 규칙을 갖춘 것도,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도 이때다.


종이 멘코. By Nesnad - Own work ( 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5556079)


당시에는 종이가 귀했고, 멘코의 영향도 있어 그림이 있는 책 표지를 겹겹이 붙이거나, 헌 장판을 오려서 만들었다. 시멘트나 비료의 포대도 두껍고 질겨 인기 있는 소재였다고 한다. 그러다 1940년대에 종이가 널리 보급되면서 지금과 같이 종이를 접어 만드는 방식으로 현지화되었다.


일본에서처럼 인쇄 기반의 딱지가 더 성행할 수도 있었을 텐데 종이 접기 방식이 더 흥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 부분은 자료가 없어 추측할 수밖에 없지만, 어쩌면 크기며 두께를 제 맘대로 만들어 쓰던 아이들에겐 파는 대로 자르는 것밖에 못 하는 딱지는 지루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한국의 딱지는 본격적인 ‘커스텀’의 영역으로 간다.



조선 딱지와 넘겨 먹기

처음에는 ‘조선 딱지’가 있었다. 직사각형의 종이를 사다리꼴로 접는 방식이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서는 방석 형태의 사각형 딱지가 더 우세하게 되었다. 사각 딱지는 종이 한 장으로 접는 ‘한 장 접기‘와 종이 두 장으로 접는 ’두 장 접기‘가 있다. 접은 모양이 방석을 닮아 ’방석 접기‘라고 불리기도 했다.


조선 딱지 접는 법
한 장으로 방석접기
두 장으로 방석 접기를 하는 2가지 방법

방석 접기를 하면 봉투처럼 사방이 막히는 공간이 있어 놀이를 할 때 여러 가지 꼼수를 쓰기 좋아 다양한 변주가 가능하기도 하다.


딱지를 가지고 노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도 언급한 ‘넘겨 먹기’이다. 넘겨 먹기는 순서를 정해 선을 제외한 아이들이 자신의 딱지를 바닥에 놓고 선부터 자신의 딱지로 땅에 놓인 다른 딱지를 내리쳐 딱지가 뒤집어지면 갖는 방식이다.


이 놀이에서 유리한 위치를 차지하려면 딱지가 큰 게 좋지만 너무 크면 제어가 어렵다. 또 강력한 수비를 위해선 바닥에 놓았을 때 딱지와 바닥에 틈이 생기지 않을 만큼 납작한 게 좋다. 그렇다고 딱지를 너무 얇게 만들면 공격력이 약해진다. 무게 역시 마찬가지다. 무거울수록 좋을 것 같지만 단점이 없는 건 아니다. 


수비와 공격, 양쪽 모두에 최적인 딱지의 무게와 크기, 그리고 납작함의 정도, 즉 편평비의 미묘한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 우리의 선조(?)들은 흡사 권법 만화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끊임없는 연구와 훈련에 노력을 기울였다. 그 연구의 결과는 앞으로의 딱지 인구에게 매우 귀중한 사료가 되어 줄 터인데 명문화된 것을 찾지 못해 아쉬운 대로 직접 실험을 진행해 보았다. 


여기에 그 연구의 결과를 공유한다.



지금까지 이런 연구는 없었다, 딱지는 과학이다


첫 번째 실험의 변인은 ‘종이 무게’였다. 

다른 조건은 같고 딱지의 무게만 다를 때 딱지의 수비 성공률과 공격 성공률은 어떻게 달라질까. 이를 실험하기 위해 나는 40g씩 평량이 차이 나는 종이 5장을 준비해 정확히 가로 10cm, 세로 10cm가 되는 딱지를 만들었다. 그리고 평량 160g의 종이를 기준 딱지로 삼아 정해진 횟수만큼 공격과 수비를 해 보면서 그 성공률을 측정하였다.


이 결과를 확인하면 적어도 종이의 평량이 244g이 될 때까지는 딱지가 무거울수록 공격과 수비에 더 유리하다는 걸 알 수 있다. 


다음은 ‘편평비’에 따른 실험이다.

딱지가 뒤집혀서 땅에 놓인 경우, 딱지의 편평비는 수비 성공률에 어떤 차이점을 보일까. 그리고 딱지의 두께는 공격력에도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이 실험을 위해 나는 평량 160g의 종이를 이용해 가로, 세로 10cm가 되는 딱지를 접고 무게가 거의 안 나가는 비닐 에어캡을 딱지의 중앙에 삽입하는 방식으로 딱지의 높이를 달리해 실험해 보았다.



결과는 다음과 같았다.



편평비가 공격에 미치는 영향은 미미하나, 수비에 있어서는 편평비가 커질수록 놀라운 비율로 수비력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각 딱지 간의 높이 차는 고작해야 1mm에 지나지 않는데도 수비에 미치는 영향은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던 것이다. 어째서 ‘선조’들이 딱지를 소파 아래 두었다거나 피아노 다리 아래 깔았다는 등의 증언을 했는지 이해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변인으로 삼은 것은 ‘딱지의 크기’였으나, 이 실험은 실패하고 말았다. 동일한 종이를 이용하고, 딱지의 크기만 15mm씩 키우는 방식으로 실험했는데, 결과 데이터를 정리하던 중 딱지의 전체 무게를 동일하게 맞췄어야 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딱지의 크기에 따라 무게도 달라지면서 다른 변인이 발생한 탓에 나는 눈물을 머금고 수비/공격 성공률 데이터를 폐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다행히 또 하나의 실험이 더 남아 있었다. 그것은 절대 딱지를 향한 선조들의 집념이 만들어 낸 꼼수, 즉 비기(祕技) 증명 실험이었다. 



절대 딱지의 고증과 재현, 비기인가 꼼수인가

나보다 먼저 딱지왕의 길을 걸었던 이들의 발자취를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터넷만 뒤져 보아도 아주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무용담을 뽐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많은 사례들 중 가장 그럴싸해 보이는 다섯 가지를 골라 실험해 보았다. 다음은 평량 160g의 종이를 이용한  가로, 세로 10cm의 딱지를 기준으로 개조 전과 개조 후의 수치를 측정한 것이다.


첫 번째 비기는 ‘철판 삽입’이다.

첫 실험에서 본 바와 같이 무게는 딱지의 성능에 매우 중요한 요소였다. 이를 향상시키기 위해 어떤 사람들은 딱지 안에 얇은 철판을 끼워 넣은 적이 있다고 했다.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제작 시 충분히 주의만 기울인다면 겉으로는 표가 나지 않는다.      


철판을 삽입한 딱지와 해당 딱지의 공격/수비 성공률


실험 결과는 수비 성공률은 드라마틱하게 높아졌으나 공격 성공률은 기대만큼 크지 않았다. 너무 무거워진 무게 탓인지, 딱지를 칠 때 제대로 조준하지 못하면 상대의 딱지를 튕겨 올리지 못하고 오히려 위에서 눌러 버리는 역효과를 낳았다. 따라서 철판을 집어넣는 개조는 조준 실력이 뛰어난 사람들에게나 적합하며, 철판의 무게도 세심히 고려되어야 한다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두 번째는 ‘테이프로 포장하기’이다. 

딱지를 테이프로 한 번씩 감아 주면 편평비가 줄어들고, 종이의 틈을 막은 덕분인지 바람의 영향을 받는 정도가 줄어 수비력이 높아진다는 얘기를 처음 읽었을 때, 나는 그 근거의 그럴싸함에 고개를 끄덕였다. 테이프의 양만큼 무게가 더해지니 공격력까지 향상될 것은 당연해 보였다. 


테이프로 포장한 딱지와 해당 딱지의 공격/수비 성공률


그러나 실험 결과 무게나 편평비, 공격력과 수비력 모두 약간의 성과는 있었지만 그 차이가 미미해 기대에 미치지 못하였다. 어쩌면 미학적인 부분을 고려하느라 은박지 테이프를 한 번씩만 감은 것이 패착인지도 모르겠다. 이 부분은 다시 여러 종류의 테이프로 실험해 보아야 정확한 확인이 가능할 것 같다.


세 번째는 마트료시카처럼 딱지 안에 딱지를 넣어 무게를 늘린 ‘겹딱지’이다.  


겹으로 제작한 딱지와 해당 딱지의 공격/수비 성공률


내가 읽은 체험담에서는 겹으로 제작하면 자칫 너무 두툼해질 수 있다고 했는데, 평량 160g의 종이는 그리 두꺼운 편이 아니어서 편평비에는 별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겹딱지의 경우 수비력과 공격력이 크게 향상되었다. 특히 공격력이 기존 대비 4배 이상 늘어났는데, 이것은 철판을 넣었을 때와는 달리, 안에 들어간 딱지가 스프링과 같은 역할을 하면서 탄성이 생긴 결과라고 추측한다.


네 번째 비기는 ‘스테이플러 박기’이다.

딱지의 중심을 기준으로 종이가 들뜰 수 있는 결합 부분에 스테이플러를 박아 주는 방식이다. 삐죽삐죽 징이 박힌 가죽 재킷을 입은 펑크족이 연상되어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딱지이다.    


스테이플러를 박은 딱지와 해당 딱지의 공격/수비 성공률


이 실험 결과 역시 놀라웠다. 스테이플러를 박은 딱지는 무게, 편평비, 공격력 및 수비력에서 각각 안정된 상승효과를 보여 주었던 것이다. 또한 딱지를 던질 때 손에 걸리는 느낌이 좋아 조준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되었으며,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보기에 멋졌다.


마지막 다섯 번째 비기는 ‘풀딱지’이다.

이는 편평비를 최대치로 낮추는 것에 목적을 둔 것인데, 딱지를 접을 때 종이에 풀을 발라 주름이 지지 않도록 잘 조립한 뒤 그 위에 무거운 것을 올려둬 납작하게 만드는 방법이다. 풀을 바른 면을 다른 면들 사이에 깔끔하게 넣는 것이 어려워 여러 장의 종이를 버려야 했으나 일단 성공하고 나서 두꺼운 책으로 하룻밤을 눌러놓자 만족할 만한 편평비가 나왔다. 


이 딱지는 평평한 땅에 내려놓으면 바닥에 착 달라붙어 아무리 내리쳐도 도무지 뒤집어지지 않았다. 그러나 이 딱지가 궁극의 절대 딱지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


풀을 발라 누른 딱지와 해당 딱지의 공격/수비 성공률


풀딱지의 실험 결과는 특히 재미있었는데, 근소한 수치이긴 하나 공격 성공률이 개조 전보다 떨어진 유일한 딱지였기 때문이다. 수비력이 많이 높아지긴 하였으나 수비용 딱지와 공격용 딱지를 바꿀 수 없는 룰에서 이런 딱지는 양날의 검이다. 그러니 이건 모든 딱지를 잃고 가진 건 자존심과 풀딱지밖에 남지 않았을 때 내놓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적어도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지는 않을 테니까.


최종적으로 비기별 공격 성공률과 수비 성공률을 살펴보자.

비기들의 실험 결과를 모아 보면 다음과 같다. 


비기별 공격과 수비 성공률


이 중 어느 방법을 택할지는 개인의 자유다. 이 데이터를 그대로 활용할 수도, 이 연구를 바탕으로 자신만의 새로운 꼼수를 탐구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딱지는 실전이다

여기까지 왔으면 남은 것은 하나, 딱지를 치는 사람의 실력이다. 상상 외로 딱지치기에 임하기 위해서는 아주 엄격한 준비가 필요하다. 이를테면 셔츠 앞자락을 여민다거나, 미리 손톱 아래를 깨끗하게 해 두는 일 같은 것. 일단 땅을 짚었다는 시비가 붙으면 '아까 바짓단에 튄 흙탕물을 긁어 내고는 손 씻기가 귀찮아서 뒀을 뿐'이라는 변명 따위는 통하지 않는다. 이렇게 될 경우 보통 말싸움으로 이어지는데, 여기서 밀리면 그때까지 딴 딱지를 모두 토해 내야 할 수도 있으니 싸움에 자신이 없다면 미리미리 규칙에 대해 합의하고, 정정당당하게 임할 것을 충고한다.



손 못지않게 딱지를 던질 때 발의 위치도 중요하다. 발을 딱지 가까이에 대면 조준도 용이하고 딱지를 내리치며 일으킨 바람을 (조금이나마) 증폭시킬 수 있어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욕심이 과해 남의 딱지를 밟기라도 하면 반칙패를 당할 수 있다. 딱지 끝을 살짝 밟으면 편평비가 높아져 공격하는 사람이 유리해지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정정당당하게 임할 것을 충고한다.



사람들은 흔히 ‘놀이의 목적은 승부를 내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에 있다’고 말한다. 나도 그 말에 동의한다. 딱지치기의 즐거움은 친구들과 딱지를 칠 때에만 있지 않다. 자신의 딱지를 강하게 만들기 위해 물에 적시고, 무거운 것으로 눌러 납작하게 말리는 흡사 도자기를 빚는 장인과도 같은 지난한 과정에서도, 내 규칙이 옳고 네 규칙이 틀렸다며 투닥투닥 하는 중에서도 우리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러니 이 부족한 연구를 마무리하는 즐거움은 이 글을 읽고 있는 각자에게 맡기겠다. 처음 조선 딱지를 접고, 방석 딱지를 접은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리면서 새로운 형태의 딱지를 만들어 보는 것은 어떨까. 완전히 다른 규칙을 생각해 볼 수도 있겠다. 


진흙 멘코가 만들어진 후로 200년이 지났으니, 다시 200년 뒤 누군가의 글에 ‘이 놀이는 딱지치기의 규칙을 잘못 이해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문구가 쓰이는 걸 상상해 보면서 신나게 놀아 보시길. 그것이 누군가의 눈엔 한갓 농담같이 하찮은 것일지라도 결국 우리를 웃게 하는 것 그 농담이니 말이다.


딱지 연구는 여기서 마친다.


“Play long and prosper.”




이 글은 릴리쿰이 2017년 서교예술실험센터에서 진행한 놀이해부도감 전시를 바탕으로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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