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지엔이 사는 법

Book Review: 파리지엔은 남자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

by 애나 라잎

일요일 늦은 오후, 백화점에 갔다가 그곳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곳에 들렸다. 우리 집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백화점 4층에 있는 서점. 얼마 전 이 백화점이 리뉴얼을 했는데 잘했다 싶은 생각이 드는 곳이다. 하지만 서점이 커피숍과 함께 있는 건 나에겐 아쉬움이다. 향긋한 커피보단 다양한 과일과 야채의 조합으로 만들어지는 신선한 주스를 좋아하기 때문에. 오래 두어도 변하지 않는 커피가 책과는 더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다.


그곳에서 한 권만 남아있던 책을 충동적으로 샀다. 뭔가가 약간 묻어있는, 완벽한 새 책이 아니었는데도. (나는 책에 대한 약간의 결벽증이 있다. 내 책에는 내 손때만 묻어야 한다는 것.) 감미로운 조명이 책을 비추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책 속으로 빠져들었다.


파리지엔은 남자를 위해 미니스커트를 입지 않는다.


원래 이런 느낌의 책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매력적으로 보이는 법, 남자에게 사랑받는 법, 여자로 성공하는 법 같은 얘기가 들어있을 것 같은 여자만을 위한 자기계발서. 자기계발서는 뻔한 말들로 가득하고, 여자를 위한 지침서 같은 책은 쓸데없는 소리로 가득하다고 생각하는 주의다. 그야말로 '있어빌리티'로 무장한 책.


왠지 겉모습에서 풍기는 이미지가 그런 류의 책이 아닐까 싶었지만, 여자는 이래야 한다고 얘기하는 책은 아니다. 파리지엔의 사고방식과 사는 방법을 위트 있게 담고 있다. 물론, 가볍지만 흥미롭다. 책을 읽다 그들과 나에게서 비슷한 구석을 종종 발견하게 되어 가끔 놀라기도 한다. (지금도 그런데, 이 책을 읽고 지금보다 더 도도하고 괴상망측하고 재수 없어질까 걱정이다.) 글과 글 사이사이에 들어있는 일러스트나 사진도 매력적이다.


모델, 소설가, 프로듀서, 매거진 편집장으로 활동하는 4명의 파리지엔에 의해 탄생한 이 책은 5가지의 주제로 파리지엔의 특성과 라이프스타일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1. 프렌치 시크는 그런 것이 아니다

그녀의 옷장에는 절대로 없는 것

파리지엔이 어떤 사람인지 재미있게 들려주는 부분. 파리지엔의 옷장에 없는 것들로 프렌치 시크에 대해 조금은 이해할 수 있다. 어중간한 것, 화려하기만 한 것, 이름만 내세우는 것에 의존하지 않는 파리지엔. 하이힐이거나 플랫 슈즈 거나. 수수해 보이지만 합성 섬유는 1%도 섞지 않은 순수한 소재, 이름뿐인 제품보단 그 스스로가 가지는 가치가 높은 제품을 선택하는 그녀들. 여기에 약간의 모순과 허세가 깃들여 더 매력적이다. 파리지엔의 모순적인 모습이 더 재미있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만의 스타일로 살아갈 뿐 그 누구의 팔로워(Follower)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우리의 귀여운 모습을 시크한 그녀들에게서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2. 내 안의 모순을 뻔뻔하게 인정하라

20160723_142154.jpg I just can't believe he actually listened.

여자들의 특성을 하나의 대화로 보여주는 부분도 종종 나온다. 매거진 화보 같은 멋진 사진들과 일러스트같이 그려진 문장 때문에 책을 빨리빨리 넘길 수 있다. 반나절이면 이 책을 다 읽을 수 있는 이유.


파리지엔은 어머니와 할머니, 그 윗대부터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집안 고유의 레시피도 알고 있다. 이 음식들은 손이 많이 가기 때문에 며칠 전부터 미리 준비해야 한다. (이틀 전에 장을 봐서, 전날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여기서도 중요한 것은 항상, '아니, 별 것도 아닌 거 갖고 그래. 나 이거 5분 만에 했는데?"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이다. 절대로 레시피를 가르쳐 주지 말고 재료를 어디서 구했는지도 알려주지 말아야 한다. 모든 것은 쉬워 보여야 한다.


그녀들이 시크함을 유지하는 방법. 모든 것이 간단하고 쉬운 일인 것처럼, '노력'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는 사람처럼 행동하지만, 그 뒤에는 땀과 허둥거림이 있다.


3. 자신을 위해 외모를 가꿔라

20160723_142318.jpg 미니스커트에 대하여
프랑스에서는 미니스커트가 남자를 유혹하고 싶다는 신호가 아니다.
그것은 자유롭다는 표시다.

파리지엔은 누군가를 위해 외모를 가꾸지 않는다. 또한, 외모는 반짝이는 보석과 값비싼 가방으로 표출되는 것이 아니며, 돈으로 살 수 없는 내적인 아름다움이 입 밖으로 나오는 순간에도 빛이 날 수 있다. 여기서 내적인 아름다움은 심성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지나친 자존감으로 가득 차있고, 모순덩어리에 약간은 삐딱한 그들의 마음을 아름답다고 표현하기는 조금은 부적절해 보인다. 심성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전형적인' 아름다움은 아니므로.

그녀는 반짝반짝 빛나고 싶다.
오로지 그녀의 말솜씨로만 그 빛을 발하면 된다.
지적으로 부유하다는 외적인 표시들.


4. 사랑하라, 과감히

20160723_143539.jpg 사랑을 사랑하는 여자

파리지엔의 비밀.

절대로 보내지도 않을 편지를 쓴다.

엄청난 돈을 들여 란제리를 사지만 그렇다고 남들에게 보여 줄 것도 아니다.

일주일 만에 세 명의 남자를 똑같이 격렬하게 사랑한다.

업무상의 미팅을 거절하고 오지도 않을 전화를 기다린다.

이름조차 모르는 사람을 늘 생각하며 산다.


꼭 누군가와 실제로 사랑하고 있기 때문에 늘 얼굴에 미소를 띠고 있는 것은 아니다. 사랑을 사랑하고, 사랑하고 있는 자신을 사랑하는 파리지엔.


5. 어디에서든 파리지엔처럼

20160723_171316.jpg 파리지엔으로 일주일을 보내는 방법

'파리지엔으로 일주일을 보내는 방법' 부분을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기만의 스타일로 충동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사는지 알 수 있다. 일상의 아름다움을 놓치지 않고, 불편함을 감수하고 나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 가구 배치를 전부 다시 하기로 결정했다 내일로 미루고, 수요일은 토요일 같이 보낸다.


파리지엔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들이 있는 공간과 보내고 있는 시간을 함부로 하지 않는다. 그때그때 드는 감정과 생각 또한 놓치지 않는다. 파리가 아름다운 걸까? 그녀들이 아름답게 사는 삶을 택한 걸까.



이 책은 이렇게 약간의 미화된 파리지엔 라이프와 함께 짧은 역사와 이론, 정보(프렌치 요리의 레시피 같은)가 곁들여있다. 마음 한 구석을 건드리는 한줄기의 글귀도. 파리의 잇 플레이스와 프랑스 영화, 여럿이 함께하기 좋은 게임 소개도 있다. 파리지엔의 삶을 살짝 엿보고 싶다면 가볍게 보기 좋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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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고 나면 이렇게 모순덩어리의 매력적인 여자들이 사는 곳은 어떤 곳일까 궁금해진다. 칼 라거펠트가 이 책 한 권이면 파리지엔이 되기 위해 프랑스에 갈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 책을 다 읽고 나니 파리에 한 달쯤 살아보고 싶어 지는 이유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