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콕 맛보기 1. 우아한 시티 투어

방콕이 처음이라면

by 애나 라잎

빨간 숫자들 사이에 까만 숫자가 끼어있는 샌드위치 시즌엔 비행기에서 그리 오랜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될만한 멀지 않은 거리에 있는 곳, 이미 계획되어있는 긴 휴가에 재정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을 물가가 저렴한 곳이 제격이다. 12개월 중 가장 사랑스럽다고 생각하는 5월, 샌드위치 시즌에 친구들과 함께 방콕으로 짧은 여행을 떠났다.


일도 계획하는 것과 관련된 일을 하고 있는 나는 여행 계획을 세우는 일도 매우 즐겨하는 편이다 ('즐겨한다'라는 표현은 조금 부족할지도 모른다.). 계획을 세우기 전엔 여행책과 그곳에 관한 매거진 기사를 샅샅이 살펴보고(데이터는 많을수록 좋으니까), 내 눈에 들어오는 곳들을 표시해둔다. 여행 서적보다는 매거진을 더 많이 참고하는 편이다. 여행책은 매년 새롭게 리뉴얼되어 나오지만 내용이 정말 바뀌고 있는지 의문이 들기 때문이며, 남들과 똑같이 교과서적인 여행을 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매거진은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중요하게 고려하는 '느낌 있는 곳'들을 많이 소개해준다. 방콕 여행을 가기 전 참고했던 또 한 가지는 당시 H카드에서 운영하던 여행 사이트(거의 이 사이트만 참고했다고 하는 게 더 맞다.). 지금은 아니지만 그 전엔 '방콕'이나 '베를린'과 같은 남다른 매력을 가진 몇몇 도시들의 잇플레이스들을 소개하곤 했었다. 여행책에서도 매거진에서도 보기 힘든 그런 곳. 이렇게 다양한 자료들을 참고하여 체크해놓은 곳을 지역에 따라 분류하다 보니 날짜별로 테마(Theme)가 생겼다. 첫째 날은 우아한 시티 투어, 둘째 날은 과거로 떠나는 여행, 셋째 날은 힐링&칠링.


첫째 날, 시티 투어를 떠나기 전 우리는 호텔 수영장으로 향했다. 나에게 '호텔 놀이'는 여행에서 빼놓지 않고 꼭 해야 하는 한 가지. 바쁜 일정 속 호텔 놀이를 즐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여행 일정 중 하루를 통째로 호텔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과 같은 자투리 시간을 활용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번 여행에서 선택한 곳은 '소피텔 소'라는 호텔로, 싱가포르 마리나 베이 호텔의 미니 수영장이라고 할만한(요즘엔 이런 수영장을 가진 호텔들이 무지 많지만..) 작지만 방콕이 내려다 보이는 수영장이 있었고 퀄리티 있는 칵테일을 맛볼 수 있는 곳이었다. 호텔에 대한 이야기는 나중에 자세하게 할 예정으로 호텔 소개는 여기까지.



1. 시암 센터

아침에 일어나 소피텔 소 호텔 수영장에서 우리가 여행을 왔다는 사실을 완연히 느끼며, 수영을 즐기기보다는 사진 찍기에 더 열을 올리다가 택시를 타고 시암 센터로 향했다. 방콕에는 커다란 쇼핑몰이 여러 개가 있는데, 우리가 선택한 곳은 시암 센터. 그 이유는 방콕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들을 이 곳에서 많이 만날 수 있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나는 3일 중 가장 많은 지출을 했다. 티셔츠, 짧은 점프 수트, 투피스, 스커트 등 방콕에서만 살 수 있을 것 같은 옷들을 사며 쇼핑을 신나게 즐겼다.


점심도 이 쇼핑몰에서 해결했다. 방콕에서 가장 유명한 디자이너 브랜드 '그레이 하운드(Grey Hound)'의 카페. 남들이 블로그에서 맛있다고 하는 것들을 시켰는데, 음식이 맛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고 수박 주스(태국에서는 '땡모반'라고 부른다.) 만은 정말 맛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왜 그 맛이 안 나는지 모르겠지만 방콕에서는 어딜 가서 먹어도 맛있다.


Life is a journey.
Full of pictures, places, stories, and good tasting recipes.

- Grey Hound 카페 메뉴판 표지에 적혀있던 문구



2. 짐 톰슨 하우스

만족스러운 쇼핑과 만족스럽지 못한 점심을 하고 향한 곳은 짐 톰슨 하우스. 방콕에서 왕궁이나 사원 같은 옛 모습이 깃들여 있는 곳을 방문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그래도 짐 톰슨 하우스만은 꼭 들리라고 하고 싶다. 짐 톰슨은 태국의 실크를 전 세계에 알린 태국을 사랑한 미국인으로, 짐 톤슨이 직접 설계하고 살았던 짐 톤슨 하우스는 투어를 통해서만 구경할 수 있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누군가의 집 안 구석구석을 구경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일이었다. 이 방은 무슨 용도로 사용했는지, 창문은 왜 이렇게 생겼는지, 이 장식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에 대한 설명을 들으니 얼굴도 모르는 그 사람을 원래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느낌이 들었다. 참고로 짐 톤슨 하우스는 스타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양태오'도 극찬했던 곳.


투어를 마치고 나면 기념품 숍에서 실크 스카프 쇼핑을 즐길 수 있다. 면세점에서 사면되겠지라고 생각하고 그냥 지나친다면 후회할 수 있다. 이 기념품 숍이나 백화점 매장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아이템들을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실크 스카프는 엄마들이 좋아할 만한 아이템. 내가 방콕 여행을 갈 때 작은 이모가 우리 집에 머물고 계셔서 엄마와 작은 이모를 위한 스카프를 하나씩 사서 돌아갔는데, 엄마가 둘 다 마음에 들어하는 바람에 조금 난감했다.



3. 바닐라 브래서리 @시암 파라곤

어쩌다 보니 첫날엔 조식을 제외하곤 점심과 저녁을 모두 카페에서 해결을 했다. 조식을 너무 배불리 먹어서인지 일반적으로 여행을 하며 허기가 지는 그런 느낌을 첫째 날엔 전혀 느끼지 못하기도 했지만, 여러 데이터에서 확인한 이 동네 맛집들 중 내 눈에 들어온 곳은 주로 카페였기 때문이다. 바닐라 브래서리는 디저트와 음료 메뉴가 매우 다양하게 구성되어 있다. 먹는 재미보다는 고르고 보는 재미가 있다. 크레페를 만드는 모습도 직접 볼 수 있다. 런던 플리마켓에서 많이 보았던 장면인데, 세상 처음 보는 신기한 광경인 듯 유리창문 앞에 서서 셔터를 미친 듯이 눌렀다.


이곳에 가면 덩달아 시암 파라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자신의 색깔을 잃어버린 채 음식 매장이 빼곡히 들어서 있는 우리나라 백화점 지하 1층의 모습과는 달리, 여기의 지하 1층에서는 개성 있는 맛집들이 나란히 서서 뽐내고 있는 색다른 풍경을 접할 수 있다. 아름다웠던 예전 가로수길의 모습 같다고나 할까. 넓은 공간에서 서로 여유 있게 간격을 유지하며, 완벽한 차림으로 자신의 색깔을 보여준다. '우아한 시티투어'란 첫날의 테마에 꼭 어울리는 곳.



4. 망고탱고

남들이 '디저트'로 할만한 음식들로 가벼운 저녁을 하고 우리가 진짜 디저트를 즐기러 간 곳은 망고탱고. 방콕 여행을 왔다면 아주 많이, 그리고 자주 먹어야 할 '망고' 맛집이다.


우리나라에서 맛있는 망고를 먹으려면 꽤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하지만, 태국에서 망고는 호텔 조식 뷔페에 널려있을 만큼 흔하고 맛은 어딜 가나 똑같다. 국내 5성급 호텔이나 S사에서 운영하는 럭셔리한 마트에서나 맛볼 수 있는 그 망고의 맛을 태국에서는 아무 곳에서나 느낄 수 있다. 방콕 어디에서든 이렇게 일관된 맛을 보여주기 때문에 망고를 먹기 위해 어디론가 특별히 가야 할 필요는 없다. 다만, '망고' 자체의 질보다는 망고를 얼마나 다양한 모습으로 색다르게 만날 수 있는지가 망고 맛집을 선택하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 있다. 망고탱고가 망고 맛집이 된 이유도 이 때문인 듯. 우리는 달콤함으로 무장한 케이크와 크레페로 니글니글해진 속을 망고의 상큼함으로 달랬다.



5. 소피텔 소 호텔 루프탑 바, 하이소

디저트까지 마쳤으니 이쯤에서 일정을 마무리할 만도 하지만, 우리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우아한 방콕 시티 투어의 끝은 루프탑 바에 있다. 방콕에는 수많은 루프탑 바가 있는데(우리나라 호텔에서 루프탑 바를 만나기가 흔치 않은 게 이상하게 느껴질 정도), 각 호텔의 루프탑 바마다 어떤 장점이 있는지, 우리가 머무는 호텔과 얼마나 가까이에 있는지 등을 분석해보다 그냥 우리가 머무는 소피텔 소 호텔의 루프탑 바를 가기로 했다. 5월인데도 불구하고 찌는 듯한 더위 속에 방콕을 돌아다니느라 땀으로 샤워를 해야 했던 우리는 루프탑 바에 어울릴만한 복장을 새롭게 장착하고 호텔의 29층으로 올라갔다.


어둠 속에도 잘 보이는 스크린 메뉴판(아이패드 아님)에 신기해하며, 각자 취향에 맞는 칵테일을 골랐다. 나는 칵테일을 고를 때 어떤류의 과일을 사용하는지를 중요하게 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보는 것은 칵테일에 붙여진 이름이다. 이왕이면 예쁜 이름을 가진 칵테일이 좋다. 눈 앞에 나타나기 전에 기대감으로 마음이 부풀어 오르게 하는 그런 이름.


방콕 야경을 배경으로 앉아 라이브 공연을 감상하며 칵테일을 음미했다. 사진 속 여자 보컬의 노래 실력은 라이브가 아닌 것처럼 느껴질 정도로 훌륭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다시 우리의 열정적인 셀카 찍기가 시작되었다. 지금은 내 코가 어디에 붙어있는지 알아볼 수 있을 정도의 사진만이 폴더 안에 수두룩히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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