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방지기에게 필요한 능력

책방일기 72호

by 그럼

덥다. 냄새나고 축축하고, 왜 진화의 톱니바퀴는 덕지덕지 땜질하듯 지저분하게 우리 몸을 빚었는가. 영화 'A.I.'의 마지막 장면에 나오는 미래의 로봇처럼 진화된 형태의 존재를 상상해 본다. 복잡성과 다양성이 없다면 외란에 취약할까. 강철도 녹이 슬고, 플라스틱도 부식을 겪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땀을 흘려도 우리 몸은 연약하기 그지없는데. 그 광대한 우주에서 살짝 기울고, 살짝 찌그러지게 돈다고, 위도 차이라는 게 얼마나 된다고 춥고 덥고 죽고 살고, 생명이란 얼마나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 다이아몬드라면? 단단하고 빛나는 0에 가까운 순수한 덩어리라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덥다. CCTV 녹화기가 삑삑 거리며 꺼지더니 다시 켜지지 않는다. 창고에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스위치가 고장 났다.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집 식탁 상판이 부서지고, 냉장고가 갑자기 멈췄다고 했다. 아무런 예고 없이 일어난 일들이다. 무더위에 허약한 것은 무생물에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오픈 준비를 하며 청소기를 돌리는데 입구에서 인기척이 났다. 고개를 들어보니 'tcotc' 카페 사장님이 문 앞에 서 있다. 언제부터 계셨지. 서로 쭈뼛거리며 다가가 그녀에게 구운 과자와 종이 카드를 건네받았다. 청첩장이었다. "두 분 결혼 안 하셨었어요?!"

사장님 커플도 우리처럼 다니던 회사들 그만두고 장사를 시작했다고 했었다. 당연히 결혼한 부부라고 생각했다. 결혼하지 않은 연인 사이의 동업은 내 머릿속에서는 이어지지 않는 논리였다. 문 연지 벌써 5년째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옆 골목 카페 '로레'의 전에 그 자리에 있던 '벤더' 카페 사장님 커플도 중간에 결혼했었다. 그 힘든 길을 함께 헤쳐 왔다니, 지금에 이른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아름답고 위대한 문학은 고난 속에서 나온다. 여전히 삶을 의심의 눈초리로 보고 있다. 배워야 할 게 많았다.

책 선물을 해야겠다 싶었다. 카뮈의 '결혼·여름'을 골랐다. 여름에 태어나 여름에 결혼한다는 그들에게 잘 어울릴 것 같았다.


그들은 둘 다 모르는 게 많았고, 둘 다 최대한 노력하고 있었다. 스스로를 의심하고, 앞으로 나아가고, 물러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둘 다 계속 노력할 것이다. 서로를 믿으니까. 상대방이 그런 고난, 그런 어려움, 그런 불안과 노출을 무릅쓸 만한 가치가 있는 유일한 사람이니까.
—한나 야나기하라 『리틀 라이프』



주문한 지 5일이나 지났는데도 도서 일부가 도착하지 않았다. 도매처에서는 주문날 발송했고, 그다음 날 배송 완료라고 조회됐다. 택배 기사님에게 연락을 해봤다. 전화도 받지 않고, 메시지에도 답이 없다.

가게 택배는 책이나 식재료 등 무거운 게 많다. 어쩌다 보니 모든 도서 도매처의 택배를 다루는 C택배 기사님은 그중 제일 많이 보는 분이다. 궂은 날씨에도 고생하시는 택배 기사님들에게 종종 커피를 드린다. 노동에 대한 그의 동기와 사명감을 무시하는 값싼 동정심으로 비칠까 봐 겁나기도 했지만, 하얗게 센 머리 아래로 까맣게 탄 얼굴을 볼 때마다 안 드릴 수가 없다. 특히나 요즘 같은 날씨에는 더욱 그렇다. 손님들뿐만 아니라 가게를 찾고 마주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친절하는 것이 결국 나 자신을 지키고 내 삶을 잘 사는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책을 읽으며, 욕구만 충족시키면서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타인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면 필연적으로 사랑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삶이라는 게 다 믿음의 문제 아닌가.

연락 없는 그가 바쁜가 보다 했지만 사실 조금 무서웠다. 책 보다 사람에게 실망하는 일이 생길까 봐 무서웠다. 커피 한 잔에 대단한 대가를 바란 것은 아니다. 그저 낭만적인 호의, 감상적인 믿음이었을 뿐이었을까 슬펐던 것이다. 돈 문제는 돈 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믿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짧은 기간 동안에도 혼쭐나게 배웠으면서 여전히 어수룩하고 어리석었다. 장사의 불안에 더해 그렇게 삶이 더 흔들릴까 봐 무서웠다.

다음날, 택배 기사님은 물건을 못 찾겠다고, 본인이 배상하겠다고 미안해하며 나타났다. 쓸데없는 걱정이었다. 택배 오배송 건 하나에 며칠간 쩔쩔매다가 기분이 좋아진 나를 보고 아내가 한심한 눈으로 쳐다본다. 배워야 할 게 많다.


모든 걸 다 바쳐 사랑해도 미안해할 것이 생겼다. 그러니까, 삶은 바치는 종류의 무언가가 아닌데
—예소연 『사랑과 결함』



넷플릭스 드라마 '핫 스팟'을 보았다. 극의 화자이자 주인공인 엔도의 직장 선배 다카하시는 외계인이다. 외계인인 그는 인간이 가진 신체 능력을 더 뛰어나게 발휘할 수 있다. 건물 위로 높이 점프한다거나, 자동차보다 빨리 달린다거나, 소머즈 같은 청력을 가진 식이다. 하지만 드라마는 '캡틴 아메리카' 같은 히어로물이나 '엑스-파일' 같은 스릴러가 아니다. 엔도와 친구들 그리고 외계인의 소박한 일상을 그린 코미디물이다. 체육관 천장에 낀 배구공을 꺼내고 스마트폰 액정보호 필름을 붙이는 것에 그의 능력이 요긴하게 발휘된다. 그런 능력이 있다면 책방에 도움이 될까 상상해 본다. 책 나를 땐 좋겠다. 출근길 현관문을 나서자마자 순식간에 책방에 도착하면 덜 더울 것이다.

지난 금요독서회, 내가 손님을 대응할 때 긴장돼 보인다고 한 참석자가 말했다. 뭐든 잘하려고 해서 그런 것 같다고, 그럴 필요 없다고 했다. 그녀 역시 서비스업을 하며 많은 사람을 만나고 있었다.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했지만(물론 가끔은 그렇지만) 바깥에서 보는 그녀의 눈이 더 정확한지 모른다. 사랑을 실천하는 중이라는 현문우답을 했다. 그것이 나를 지키기 위함 임을, 내 삶을 사랑하기 위한 방법임을 말했다. 실험 중인지도 모른다.

요즘의 힘든 시기를 버틸 수 있는 것은 독서모임들, 그 모임을 만드는 사람들 덕분이다. 책을 붙잡고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으며 누가 시키지도 않은 숙제를 하는 사람들. 삶에 대해, 세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 따뜻한 말을 나누는 사람들. 그런 선한 사람들이 주변에 많아졌으면 하고 바란다.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미덕이 아닌가 싶다. 고민하기. 질문하기. 친절하기. 잘 꾸려나갈 생각은 않고 그렇게 자꾸 참석자들에게 기대려고 한다. 그들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얼마나 고마운지 그 너른 품에 마냥 안기고 싶은 것이다.

엔도를 포함한 다카하시의 주변인들은 그의 정체를 알고 나서도 요란스럽지 않다. 그저 생활의 달인을 만난 정도의 놀람이다. 나와는 다른 존재를 밀어내지 않는다. 다카하시의 능력도 일상의 평범함을 강조하는 이상의 역할은 하지 않는다. 호텔에서 일하며 온천욕을 하고(여기에는 비밀이 있다) 건프라를 조립하는 삶이 그가 바라는 삶이다. 엔도는 혼자서 딸을 키우는 싱글맘이다. 외계인보다 호텔이 없어져 일자리가 사라지는 것이 더 걱정이다. 소변컵 회수하기의 달인인 간호사 친구. 다카하시의 특별한 사정을 알고 도우려는 공무원, 호텔 지배인, 술집 사장 등 주변인들은 어떤가. 다정한 말 건네기, 꾸준하게 일상을 살아내는 힘, 그것이 초인적인 능력이다.


그녀는 자신이 불행하다는 걸 몰랐다.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당신에 대한. 하지만 꼭 어떤 누군가를, 혹은 무언가를 믿어야 할 필요는 없다—그저 믿음 자체로 족한 것이다. 그로 인해 그녀는 가끔씩 은총 안에 머물 수 있었다. 그녀는 믿음을 잃은 적이 없었다.
—클라리스 리스펙토르 『별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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