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ppy Anniversary

책방일기 76호

by 그럼

# 9월 26일 금요일

새책은 꾸준하게 들어오는데 팔리는 속도는 그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다. 다른 책방들은 재고를 어떻게 처리하지? 그렇다고 주문 안 할 수도 없고. 무엇보다 내가 읽고 싶기 때문이다.

민음사 신간 미니북 시집 주문이 정신없이 들어온다. 많이 주문한 책은 안 찾고 기대 않던 책은 잘 나갈 때마다 찾아오는 현타. 난 이 업에 적합한 사람인가. 온라인 주문으로만 재고가 거의 동이 났다. 평소 온라인 판매가 많지 않으니 택배기사님들과의 택배 계약은 언감생심이고 주로 편의점 택배를 이용한다. 스마트스토어에서 '착한 택배'라는 1건이라도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서비스가 있다는 것을 최근에야 알았다. 하지만 평소에 이용량이 많지 않기 때문인지 수거가 들쭉날쭉이다(착하기만 한 택배?).

어제 출고했을 미니북 재입고 분이 오지 않고 있다. 담당자에게 메일을 보냈으나 답이 없다. 예약 주문한 고객들에게 빠르면 오늘 입고될 것이라고 안내했었다. 대부분 처음 보는 손님들이다. 얼마나 실망할지. 첫인상이 중요한데 고객을 몇 명씩 잃고 있는지도 몰랐다. 곧 주말이니 만약 오늘 배송되지 않는다면 월요일 휴무일에 직접 배달이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 9월 27일 토요일

2차 주문 건은 물론 합배송한다고 했던 3차, 4차 주문까지, 미니북이 한꺼번에 배달됐다. 아침까지만 해도 숙연한 마음으로 입고 지연 사과 메일 초안을 작성해 놓았었다. 2차 주문은 왜 익일 출고가 안되었던 것일까. 예약 손님들에게 안내 문자를 돌렸다. 좀 찾는다 싶은 책들을 재입고하면 신기하게 손길이 뚝 끊기고는 한다. 이번 미니북도 무리해서 주문한 것은 아닌지 걱정이 조금 되었지만 모두 팔렸다. 재주문하려고 보니 품절이다, 더 주문해야 했다. 왜 이렇게 인기가 많은지 책을 이리저리 살펴봐도 감이 오지 않았다.



# 9월 30일 화요일

공포에 질려 잠을 못 이루고 아내에게 떨리는 손을 잡아달라고 해야 했던 개업일 전날 밤. 그날로부터 1년이 지났다. 축하 인사를 건네는 손님들. 케이크에, 꽃에, 책이라도 한 권 사가는 단골들. 손님들에게 나누어주려고 주문한 작은 돌떡이 민망할 정도로 더 많은 축하를 받았다. 하지만 위탁도서 분기 정산에, 온라인 주문 처리, 모임 준비, 입고 도서 정리, 때맞춰 도착한(기념이라도 하듯이) 실물 지역서점 인증서로 도서관 계약 신청까지, 1주년이라는 감회에 젖을 새도 없이 하루가 바쁘게 흘렀다. 저녁에 혜윰(하늘연달님이 별명을 바꾸었다)님이 맥주 두 캔을 결제하고는 축하 건배를 하자고 했다. 카운터에서 아내와 셋이 한 모금씩 나누어 마셨다. 이제 마음껏 기뻐해도 되겠지 싶었지만 술을 한 잔 마셔서 그런지 급격하게 피곤해지기 시작했다.

지난 1년간 탄탄히 바닥을 다진 기분이다. 몸은 여전히 힘들고 피곤하지만, 마음의 동요는 많이 잔잔해졌다. 크게 놀라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그게 확실히 체념은 아니다. 이 일이 나를 훌륭한 사람으로 만들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어떤 사람인지는 맛보게 해 주었다.

바닥에 곧고 또렷한 선을 그었다. 장사는 여전히 부족하지만 이 선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과 넉넉함, 불안과 집중력, 좌절감과 포옹, 근거 없는 자책과 근거 있는 낙관, 권태와 두근거림, 새로운 세계와 지나간 세계. 그것들 사이의 경계선.



# 10월 2일 목요일

기념일은 이틀이나 지났지만, 그날 못 뵌 단골들을 보니 뭐라도 챙겨주고 싶었다. 엄마 말대로 떡을 나누어서 받을 것을. 엄마 말을 들어야 한다. 줄게 없는데 선결제에, 빵에, 또 선물을 한 아름 받았다. 환하게 웃는 얼굴이 둥둥 떠다니듯 카운터로 다가오고 떠나는 장면을 몽타주 기법으로 편집해 계속 돌려보고 싶다.



# 10월 4일 토요일

교환독서의 재미가 무엇인지 깨닫고 있다. 넷플릭스 같이 보기나 댓글 놀이 같은 재미와 펜팔처럼 느린 호흡의 소통. 책을 매개로 취향을 나누는, 일반적인 독서모임과는 또 다른 세상이다. 책은 저자와의 대화였는데, 책과 나와 타인들의 대화가 되었다.



# 10월 9일 목요일

몸이 아프다. 고장 난 것 같다. 요즘 나를 괴롭히는 양 어깨는 말할 것도 없고, 오늘은 오픈 준비부터 왼쪽 고관절에서 무릎까지가 발을 디딜 때마다 찌릿찌릿했다. 허리 때문인 것 같다. 그럴수록 아내 일을 더 도왔다. 될 수 있으면 한가한 시간엔 아내를 집으로 보냈다. 몸 약한 아내가 더 아플터였다. 건강 때문에 지속가능한 삶을 고민할 줄은 몰랐는데. 몸이 지치니 마음도 힘들게 느껴진다. 마음이 고요해지면, 동요할 때는 몰랐던 몸의 아픈 부위들이 여기저기 고개를 들고, 몸이 아프니 다시 마음이 동요하고. 뫼비우스의 띠 같은 건가.



# 10월 15일 수요일

생일이다. 축하해 나. 언제 이렇게 나이만 어른이 되었나.


내가 나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내 책들 위에 부드럽게 떨어진
먼지 표지로
내가 읽지 않을 책들, 또는
나를 불안하게 만들지만 완성시켜 주는
작은 파란빛이 반짝이는
그 그림자처럼.

—박참새 「Defense」 『정신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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