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을 위해 그렇게 성실하게

책방일기 77호.

by 그럼

# 10월 18일 토요일.

유튜브 라이브로 허연 시인 북토크를 들었다. 일하면서 콘텐츠를 보고 듣기란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매번 느끼면서도 매번 신청한다. 시인은 우는 행위를 찬양했다. 그는 자주 운다고 했다. 하루에 다섯 번은 운다고 했다.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음악을 듣다가. 조선시대 어느 선비의 말을 전했다. 물은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게 자연의 이치인데, 대관절 왜 눈물은 가슴에서 올라와 눈으로 나오는가. 왜 아래에서 위로 흐르냔 말이다. 우는 사연을 더 듣고 싶었는데, 손님들이 들어오고, 다시 돌아갔을 땐 다른 화제로 옮겨 가 있었다.



# 10월 19일 일요일.

오픈하고 일찍부터 찾아와 책을 읽는 커플이 있었다. 남자 손님이 중간에 제나 히츠의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를 사면서 재고가 더 있냐고 물었다. 전병근 선생님의 추천으로 책방에 찾아왔다고 했다. 둘은 그가 진행하는 북클럽에 참가 중이었고, 책이 다음 모임 도서였다. 소개를 해준 전선생님과 멀리서 찾아준 그들에 대한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쿠키라도 챙겨드렸다. 그저 같은 책을 읽고 같은 사람을 알고 있다는 사실이 뭐가 그렇게 기쁜지.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사람이 되는 기분이다.

로저먼드가 그랬듯이 그도 리드게이트가 미들마치에서 이방인이기 때문에 더 마음에 들어 한 것은 분명했다. 새로운 사람과는 아주 많은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 말이다! 심지어 더 나은 인간이 되기 시작할 수도 있다.
—조지 엘리엇 『미들마치』

현님이 오랜만에 왔다. 그녀는 사람이 많을 때만 와서 매번 장사가 무척 잘된다는 오해를 한다. 그녀에게는 행운을 불러오는 사람이라고 했다.



# 10월 21일 화요일.

언제부터였을까 시詩가 좋아지기 시작한 게. 그 부푼 마음을 이제는 도저히 달랠 수가 없었고, 시 창작 수업을 신청한 게 이틀 전이다. 오늘 시작하는 수업을.

두 명의 시인이 진행하는 강좌다. 우려했던 두 가지 상황 중 한 가지 상황이 벌어졌다. 신청자가 나 밖에 없거나(이틀 전에도 신청을 받았으니), 나만 초짜인 상황. 후자다. 시를 1-2년 써 온 사람들, 이미지와 사운드를 만지는 예술인들, 영화인, 그리고 시인 참가자... 참가자는 스무 명 가까이나 많았다. 자기소개 시간에 잔뜩 겁에 질린 말만 뱉었다. 자영업자이고 무섭습니다. 그런데 자영업자가 나인가?

두 시인이 각자의 신작 시 한 편을 읽고 대담을 나누는 워크숍의 형태로 진행한다. 합평은 아니지만 숙제가 있다. 수업이 진행되고 시인들의 차분한 목소리로 시를 둘러싼 말을 듣다 보니 처음의 두려움이 많이 사그라들었다. 시는 조금 더 예술에 가까운 언어로 멀어졌다가 시인들과 함께 다시 가까이 내려앉았다.



# 10월 23일 목요일.

돌아가신 장인어른은 아내가 태어났을 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생일을 하루 빠른 날로 신고하셨다. 그래서 아내는 늘 하루 전부터 축하를 받으며 이틀의 생일을 보낸다. 축하하는 사람들은 매번 알면서 속는 건지. 장모님마저 하루 먼저 시작했으니 축하하고픈 마음을 못 참는 게 맞는 것 같다.

누적된 피로를 떨쳐내고, 아픈 몸도 쉴 겸 아내 생일을 핑계 삼아 하루 쉬어가기로 했다. 오랜만에 최애 신토불이 떡볶이도 먹고(휴무일이 같으니 장사 시작하고 처음이다), 다른 동네책방에도 놀러 갔다. 책방을 연 뒤 다른 책방들을 방문할 때마다 그 낯설고 신비로운 느낌이 간혹 섬뜩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왜일까. 익숙해져 무디기까지 한 내 책방이 손님들에게 어떻게 느껴질지, 공간은 잘 꾸려놓은 것인지, 큐레이션은 인상적인지 손님의 입장에서 새삼 두렵게 다가오기 때문인지 모른다. 책을 사면서 책방지기에게 우리도 책방을 하고 있다고 고백했다. 서로가 어떻게 여기까지 이르게 되었는지 전혀 모르지만 눈빛으로 고충을 짐작하며 동병상련함을 느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계산하던 그가 벌떡 일어났기 때문이다. 장사는 어떤지 묻고, 우리 책방에도 놀러 오겠다고 다짐하고, 주변 맛집을 소개해주겠다며 쉬지 않고 반가운 말을 늘어놓았기 때문이다.

늘 그렇듯 쉬는 날은 바쁘게도 흘러간다. 어젯밤에 같이 누워 아내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줬는데, 일 년은 더 된 것처럼 추억이 되어 주마등 같이 슬프게 재생된다. 하루하루가 왜 이렇게 애틋할까. 너무 좋아서 그럴까.



# 10월 28일 화요일.

두 번째 시 창작 수업, 희망자에 한해 숙제 합평이 있었다. 참가자들의 시 구절들을 들으니 괜히 마음이 뜨뜻하게 끓어오른다. 바쁘게 움직이는 행인들 사이에서 무언가 골똘히 고심하는, 유심히 주변의 사물을 관찰하고 가만하게 하늘을 올려다보고 마음에 그려보는 행위를 일삼는, 어디선가 비슷한 갈망에 이끌려 마음앓이를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기 때문일지 모른다. 더 아름다운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완전히 혼자는 아니라는 실감.



무엇을 위해 그렇게 성실하게 울고 있나요.

—박지일「뻐꾸기 들어갈 수 없는 제목」『립싱크 하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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