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18일 일요일.
하루 종일 장염 증상으로 고생했다. 화장실에 몇 번을 갔는지 모르겠다. 주말이었음에도 손님이 별로 없었으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약이라도 찾아 먹으려고 집에 다녀왔다. 창 밖으로 보이는 것보다 날씨가 더 좋았다. 하늘은 맑고 투명해 해가 모든 곳을 선명히 비추었다. 땅 위의 모든 것이 제 색깔을 또렷하게 빛내고 있었다. 초록은 정말 파랬고, 자동차, 간판, 옷가지들의 빨강과 노랑은 그 경계가 손이 베일 듯 날카로웠다. 이토록 화창한 날, 답답해 보이는 주방에 앉아 가게 밖을 내다보는 아내가 왜 그리 딱해 보이던지. 혼자서 더 잘 해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 5월 20일 화요일.
책이 좀 팔렸다. 보상이라도 하듯이. 장사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이제 장사가 잘 되는 날을 기록해야겠다. 그저 그런 장삿날은 보통의 나날이다. 평일平日, 특별한 일이 없는 보통 때, 표준국어대사전.
스팀 청소기를 돌리는 날이라 혼자 먼저 출근했다가 열쇠를 놓고 왔다는 사실을 가게 앞에서 깨달았다. 잘 잊고 잘 잃어버리는 나 대신 아내가 열쇠를 들고 다닌다. 여분 열쇠를 내 가방에도 넣고 다녀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여분 열쇠를 어디다 잘 두었는지 기억이 나질 않았다. 아내와 함께 온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끝내 못 찾았다. 숨긴 사람도 잊어버린 완벽한 보안. 열쇠가 먼저 발견될지 가게가 먼저 망할지 궁금해졌다.
# 5월 21일 수요일.
갑자기 여름이 왔다. 집에 선풍기를 꺼냈고, 겨울 이불은 이제야 답답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언제 여름이 오나 싶었는데 선선한 봄 날씨가 벌써부터 그립다.
이유 없이 쌀쌀맞은 손님들이 있다. 들어오면서부터 두드려대는 그들의 냉소와 굳은 말들에 혼이 나기 시작하면,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소리가 귀에 들리는데도 피가 바싹 마른다. 사람에게 마음 주는 일 따위는 깨끗이 지워버리고 로봇처럼 일해야 할까. 서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채 알고리듬대로 움직이는 로봇들. 나는 인간임을 증명하고 싶었다.
다와다 요코의 온라인 북토크가 있는 날이었다. 정기현 소설가의 닮고 싶은 차분한 진행, 통역사의 낭랑한 목소리, 하얀 파도 거품처럼 머리가 센 다와다 요코의 노랫소리 같은 일본말을 듣고 있자니 콘서트 같은 한 시간 반이 금방 지나갔다. 진행자의 마지막 질문은 『헌등사』에 실린 단편 「동물들의 바벨」에 나오는 토끼의 질문을 그대로 요코에게 던진 것이었다. "만약 무엇이든 전부 알고 있는 사람에게 딱 한 가지 질문만을 할 수 있다면 당신은 어떤 질문을 하겠습니까." 그녀는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걸 좋아해서 질문이 없을 것 같다는 멋진 대답에 이어, 그럼에도 만약 답이 반드시 있고 그걸 알고 있는 존재라면 폭력이 없는 세상을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그 말이 얼마나 어른스럽고 따뜻하게 느껴지던지. 답이 아닌 질문이었을 뿐인데도. 그녀는 이 복잡하고 이해불가한 세계에서 같이 살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녀와 진행자를 비롯해 카메라 뒤의 방청객들, 곳곳에서 웨비나를 시청하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그녀의 책을 읽었을 그 모든 독자들까지 아우르는 거대한 공동체와 연결되는 기분이었다. 외롭지 않다는 느낌이 들었다. 어떻게 해야 하냐는 그녀의 질문은 행동할 준비가 된 사람의 물음이었다. 걱정과 불안은 내려놓고 내 할 일을 묵묵히 해 나가기로 했다.
그때 이후로 미치루가 신경 쓰여서 교실의 일상 풍경이 흑백으로 보여도 미치루의 몸만큼은 늘 색깔을 띠었다. 그뿐 아니라 미치루가 입으로 말하는 이름, 미치루가 쓴 글씨, 미치루가 쉬는 시간에 하는 행동마저 신경 쓰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사람의 몸에 닿으면 오직 그것만으로도 마음의 열쇠를 빼앗기는 듯하다.
—다와다 요코 『헌등사』
# 5월 26일 월요일.
진공청소기가 고장이 났고 정전기포와 걸레로 바닥 청소를 하고 있다. 정확히는 청소기 헤드 롤러가 돌아가지 않는다. 가정용 제품을 가게에서 사용했기 때문인지, 시멘트 바닥과의 마찰이 모터에 부하를 준 것 같다. 청소기 헤드 가격이나 당근에 올라온 청소기 가격이나 별 차이가 없었다.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을 때까지 당분간 힘들게 청소를 해야 한다.
펜던트 조명은 수리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또다시 불이 들어오지 않는다. 뽑기를 잘못한 것인지, 원래 그 모양인 제품인지, 설치 환경이 문제인지. 이번에는 본사 직원이 직접 방문해서 봐주기로 했다.
시간에 끝없이 침식되고 부서지고, 세계는 계속해서 변화하는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공들여 만들고 쌓은 모든 것들이 본래대로 돌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인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고치면서 사는 게 삶이라면 너무 뻔한 수사일까. 그저 걱정거리만 하나 더 늘었다.
점심을 먹고 돌아오는 길, 중앙공원에 들러 산책을 했다. 아내가 입구에서부터 학창 시절 추억을 떠올렸다. 친구들과 줄넘기를 하면서 놀다가, 건너 건물 지하에서 팥빙수를 사 먹었다고 했다. 여러 번 얘기했던 것 같지만 질리지 않고 귀를 기울인다. 읽은 책도 여러 번 다시 읽는데.
영화 '어바웃 타임'에서 시간이동을 할 수 있는 빌 나이는 죽기 전 마지막으로 꼬마 시절 아들과 해변에서 놀았던 순간으로 돌아간다. 나는 어린 시절 여름밤의 한강 고수부지 공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찜통 같은 무더위에 잠 못 이루는 밤이면 부모님과 동생과 다 같이 강바람에 더위를 식히고 돌아왔던 그때로 다시 가보고 싶었다. 지금 꺼내 보면 심장이 뜨겁게 쪼그라드는 기분인데, 걱정도 불안도 없이 사랑만 할 수도 있는 때라는 것을 왜 몰랐을까. 그 뜨끈한 기운이 한여름 불볕 때문만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야말로 '사랑의 여름'이라는 것을 왜 못 깨달았을까. 빌 나이도 나와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그는 자신이 깨달은 행복의 공식을 아들에게 일러준다.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살아 보고, 똑같은 하루를 다시 살아보라고. '처음엔 긴장과 걱정 때문에 볼 수 없었던 세상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느끼면서 말이다.
녹음 짙은 산책로를 걸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 정도면 잘하고 있다고 서로를 위로했다. 서로 위안하기, 요즘의 주요 일과다.
집에 가기 전 가게에 들러 택배 상자를 들이고, 사이즈가 안 맞았던 물걸레 청소포를 집으로 가져와 마루 바닥을 닦았다. 청소만 하다 삶이 끝날 것 같았다.
인간은 청소하는 존재입니다. 하지만 단순히 주변 환경과 물건을 깨끗이 정돈하는 것이 청소의 전부는 아닙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청소란 인간과 환경 사이의 균형을 잘 다듬는 행위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 파도가 모래사장을 쓸어내는 바닷가처럼 인간과 자연 사이에 존재하는 ‘적당한 편안함’을 찾아 균형을 맞추는 것. 그것이 ‘청소’가 가진 진정한 의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무인양품, 기분 좋은 것은 어째서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