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박하게 살면 빠듯이 살아질 만큼의 수입이란, 불필요한 욕망을 일깨우지 않는다는 점에서 편안한 것이었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가정의 달 탄생책은 기대만큼 불티나지 않았다. 그 메시지를 잘못 해석하고, 6월 탄생책은 책을 설명하는 태그 대신 책 속 한 문장을 적어보기로 했다. 책을 집어 보게 할 만큼 마음을 흔들면서도 내용을 잘 그려내는 문장을 고르기란, 가능성의 영역만큼이나 다른 의미에서 쉽지 않다. 부지런한 블로거들이 많았고, 대부분 검색에 걸렸기 때문이다. 탄생책은 블라인드북이다. 애서가들이 좋아할 만한 문장을 잘 골랐다는 얘기였고, 하지만 그 문장을 사용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책 속 한 문장의 모순이었다. 그렇게 독서 노트와 책을 계속 뒤적이다가, 재독의 재미에 빠져 탄생책 준비는 뒷전이 되었다.
산문 서너 권을 읽은 다음에는 꼭 시집을 찾는다. 시인이 그러모은 아름다운 말의 정수를 읽으면, 긴 글에 빠져 있는 동안 흐트러진 마음이, 머릿속을 차지했던 복잡한 생각들이 말끔히 정리되는 기분이다. 특히나 힘든 독서를 하고 난 뒤에는 더 그렇다. 시집의 가벼운 물성마저 좋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남기고, 무엇에 집중할지 배운다.
주말이 되면 영화 '머니볼'의 1루수가 된 기분이다. 주말에는 손님이 많이 찾아줘야 하지만 많이 오는 것이 두려워지고 (없으면 당연하고), 자기에게 공이 오는 게 가장 무섭다는 그 1루수의 말이 떠오르는 것이다. 오픈 초부터 일요일마다 음료를 마시고 가는 남자 손님이 있다. 예의 바른 태도와 배려심 깊은 말투의 그는 매번 음료 쿠폰 도장을 사양했다. 한 번은 감사한 마음에 도장 10개를 찍어드렸다. 그 쿠폰은 지금까지도 쓰이지 않았다. 그날이 그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아무래도 내향인을 잘못 건드린 모양이다.
마음에 드는 청소기 당근을 끝까지 못 찾았다. 엄마가 집에서 사용하던 다이슨 청소기를 고쳐서 사용하기로 했다. 오랜만에 만난 엄마의 오른팔에 감긴 커다란 보호대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깨 회전근이 파열되어 전신마취 수술을 하고 사흘간 입원했다고 했다. 그걸 아직은 혼자 할 수 있다며 자식들에게 꽁꽁 숨긴 것이었다. 그제야 요새 연락도 잘 안되고 엄마의 목소리가 이상했었다는 것을 생각해 내는 무심한 아들. 사고가 있던 것은 아니었다. 엄마는 더 늙고 더 자주 아플 텐데, 불안한 현재가 목을 죄고 있었고, 가슴에 바위를 얹어 놓은 것처럼 답답했다.
요즘 들어 잠긴 문을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코너를 돌았다가 다시 돌아가고 (가게문 이상 무), 1층에 내려왔다가 다시 올라간다 (현관문 이상 무). 보내고 받은 거래 내역을, 씻었던 손을, 읽은 이메일을 재차 돌아보고 재확인한다. 건망증이 아니라 내 감각에 대한 불신, 세계에 대한 불신이다. 보이는 것 만지는 것을 못 믿고, 보고 또 보고, 만지고 또 만진다. 늙지도 젊지도 않은 애매한 나이에 잔고는 말라가는데, 침착하고 담담하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한지 일인지 모른다. 인생에 찾아오는 극심한 시련을 통과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많이 만났다고 생각했다. 시련에 굴복하지 않고 맞서 극복하는 그 모든 수사들과 구절들이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는다.
먼지통을 교체하고 청소기를 돌려보는데 청소기가 어찌나 무거웠던지. 어깨도 코끝도 다 시큰거렸다.
저녁은 떡볶이를 배달해 먹었다. 가게에서는 김밥, 집에서는 떡볶이가 주식이다. 내가 운영하는 게 카페인지, 책방인지, 분식집인지 모르겠다. 새로 발견한 가게였다. 지난 첫 주문 때는 진한 국물에 감칠맛이 아주 제대로였지만 이번에는 주인이 바뀌었나 싶을 정도로 다른 맛이다. 그래서 별점이 낮아진 모양이라고 우리는 다시는 먹지 않기로 했다. 겨우 0.1점 낮아졌을 뿐이었다. 한 번의 실수였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고객의 마음이란 얼마나 예민하고 날카로운지. 갑자기 등줄기로 식은땀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