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서울도서전을 구경했을 때는 책방 문을 열기 전이었다. 벌써 1년이 지났다. 이번에도 날씨는 맑고 후덥지근했다. 내리쬐는 해와 엉금엉금 기는 자동차 행렬, 공사판 소음, 높은 빌딩과 인파에서 뿜어져 나오는 열기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우리를 압도했다. 이른 점심을 먼저 먹고 느긋하게 전시관으로 갔다. 굳즈에는 별 관심이 없었으니 오픈런을 할 필요는 없었다. 입장 줄은 작년처럼 길지 않았다. 평일인 첫날이기도 했지만 현장 티켓을 팔지 않기 때문인 것 같다. 하지만 전시관 내부는 달랐다. 대형 출판사들은 말할 것도 없고 대부분의 부스에 사람들이 붐벼 책 구경하기 쉽지 않았다. 이번에도 관람객 대부분은 젊은 여성들이다.
기념 굳즈들을 사거나 얻기 위한 줄이 많았다. 출판사 굳즈가 아닌 북커버나 책갈피 등 책 관련 소품을 파는 업체들을 둘러보는 게 이번 참관의 목적 중 하나였지만 관련 부스들이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줄었다.
천천히 돌아보았다. 책방에 있는 책들인데도, 조명 때문인지 열기 때문인지 왜 그리 탐스러워 보이던지. 리멤 서가의 책들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SNS 박탈감 같은 것일까. 생일책만 전문으로 다루는 부스가 두 곳이나 있었다. 탄생책 큐레이션과 구성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진다.
독립출판 구역으로 넘어가는 길, 복도 한쪽이 사람들로 꽉 막혔다. 출판사 무제의 작은 부스 앞이었다. 박정민 대표가 모자를 눌러쓰고 마스크로 얼굴을 가린 채 정신없이 책을 팔고 있었다. 인기 배우도 저렇게 열심인데, 심기일전했다. 독립출판 구역은 구경하기 더 힘들었다. 작은 책상 주변으로 구름같이 모여든 관람객들의 어깨 사이사이를 기웃거리며 눈도장만 찍었다.
축제의 장이었다. 사방에서 웃음이 넘쳐났다. 이렇게들 책을 사가는데 이번 달은 더 힘들어질 터였다. 아무리 잔칫날이라지만 좋은 목이 장사의 전부인가 싶었다. 그렇지만 사람이 이렇게 많으니 좋은 일이었다. 텅 빈 축제였다면 애초에 그른 장사인 것이다. 모두가 본질에 집중하고 제대로 분투하고 있었다. 나만 잘하면 되는 것이었다.
끔찍했던 6월, 팍팍한 한 해의 절반이 어느새 지나갔다. 요즘처럼 삶이 고달팠던 적이 있었나 싶다. 그러면서 동시에 이렇게 애정을 느꼈던 적도 있었던가 싶다. 삶이라는 것이 고단하고 힘겨울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즐거운 삶을 살고 있는지 몰랐다. 피부에 닿는 비관과 속에서 막연히 끓는 낙관, 그 전체를 감싸는 아름다움과 두려움. 이게 그렇게나 맛보려던 삶의 맛인지 몰랐다.
내가 그린 그림에서 죽음의 어둠이나 각료 회의의 엄숙함이 지나치게 표현되었을 때, 나는 나비에게 “네 맘대로 색을 칠해 보거라.”라고 말한다. 그러면 죽은 흙을 뿌린 듯 얌전히 있던 치마, 나뭇잎, 깃발, 바다가 즉시 바람에 펄럭인다. 때로는 신이 나비가 그리는 것처럼 세상을 보고자 하며, 삶이 축제처럼 즐거워야 한다고 명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건 색들이 서로 조화롭게 멋진 시들을 읽어 주는, 시간이 멈춰 있고 악마가 절대로 들어오지 않는 세상이다.
—오르한 파묵 『내 이름은 빨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