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중과 대화, 그리고 연결. 광파리의 이야기

by 리멤버 Remember

“갈등은 믿음 깨질 때 생기고 진심으로 대해야 풀린다"


‘한바탕 웃다 가자'
김광현 창업진흥원장의 페이스북에 올라온 사진에 위 문구가 쓰인 캘리그래피가 있었다.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image.png?type=w1200 김광현 원장 페이스북


“살다 보면 끊임없이 갈등이 생깁니다. 해명해도 갈등이 풀리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갈등은 믿음이 깨지거나 약해졌을 때 생깁니다. 적극 해명해 양해를 얻을 수도 있지만 완전히 해결되진 않습니다. 상대가 나를 믿을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진정성을 보여줘야 합니다. 조바심 낸다고 될 일이 아니죠. 한바탕 웃고 나서, 반성하고, 상대를 진심으로 대해야 오해가 풀립니다. 이런 평소 생각을 캘리그래피로 써 봤습니다.”

김 원장한테 창업진흥원장 1년 성과를 물었다. 김 원장은 “3년 임기 마치고 나서 평가받고 싶다”면서 “아직 진행 중이긴 하나 조직문화를 바꾼 건 잘한 것 같다"라고 말했다.



“‘No’라고 말할 수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다”


김 원장은 작년 4월 취임식 때 깜짝 놀랐다. 강당에 들어서는 순간 직원들이 자신을 노려보는 것 같았다. 한결같이 굳은 표정이었다. ‘이 친구들이 웃지 못하는구나. 아파하는구나. 조직문화를 바꿔야겠다.’ 이렇게 생각했다. 그래서 “‘노(No)’라고 말할 수 없는 조직은 죽은 조직이다”, “소통을 통해 혁신하자”고 강조했다.

조직문화를 바꾸기 위한 시도는 다각도로 진행됐다. 대표적인 게 ‘도시락 미팅'이다. 김 원장은 외부 약속이 없을 땐 직원들과 함께 도시락 점심을 먹으며 얘기를 나눈다. 취임 후 1년 동안 30회가량 도시락 미팅을 했다. 원장실 탁자에 둘러앉아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며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다. 자기 자랑이든, 원장에게 하고 싶은 말이든,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다. 직원들은 처음엔 머뭇거리지만 이내 거침없이 얘기를 털어놓는다.

원장 프레젠테이션도 창업진흥원의 새로운 소통 방식이다. 매월 첫 월요일 아침에는 월례조회를 하는데, 마지막 순서는 ‘원장님 말씀'이다. 전에는 ‘교장선생님 훈시’ 느낌이 났다. 김 원장은 첫 월례조회 때부터 이것을 바꿨다. 자신이 직접 만든 자료를 넘기면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자신이 왜 창업진흥원장이 되려고 했는지, 임기 중에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그것을 어떻게 하려고 하는지 등을 설명했다.

창업자 간담회 방식도 바꿨다. 전에는 창업진흥원장이 창업선도대학이나 중장년 센터 창업자들을 만날 땐 디귿(ㄷ)자 형태로 자리를 배치하고 원장이 중앙에 앉았다. 김 원장은 자리를 이렇게 배치하면 창업자들이 원장한테 보고한다는 느낌을 받는다며 자리 배치를 미음(ㅁ)자로 바꿨다. 둘러앉아 토론하는 형태로 바꾼 것이다. 그 결과 창업자들은 활발하게 얘기하고 헤어질 땐 명함을 주고받는다.

소통이 활성화되면서 직원들의 의견 개진도 활발해졌다. 작년 말에는 부서별로 창업 지원 프로그램 개선안을 만들어 중소 벤처기업부에 건의했다. 이 건의는 상당수 받아들여졌다. 김 원장은 “정책 개선방안을 중기부에 제안하고 우리 스스로 개선할 점을 끊임없이 찾고 있다"라고 말했다. 올해 들어서는 창업자 불편을 덜어주기 위해 행정 정보 공동 이용을 추진하고 멘토링 시스템 등을 개발하고 있다.

김 원장은 자신의 경영철학을 이렇게 표현했다.

“저는 직원들 사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에서는 사기가 충만한 전사 10명이 사기 꺾인 전사 100명을 이길 수도 있잖아요. 리더가 방향을 제시하면 직원들이 실행하는데, 사기가 높아야 성과가 잘 나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직원들 사기를 끌어올릴까 고민을 많이 합니다. 원장으로 취임한지 1년이 됐는데, 조직에 피가 돌기 시작했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직원들 표정이 밝아졌고 저한테 얘기를 많이 해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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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 때부터 깨달아 온 존중과 대화의 가치


김 원장은 기자 출신이다. 경제신문에서 28년가량 기자로 일했다. 여기에는 IT 부장, 생활 경제부장 등 데스크로 일한 6년이 포함됐다. 기자 시절에는 주로 산업계 취재를 했다. 그 덕분에 창업계를 알게 됐고 인맥도 쌓을 수 있었다. 그 인연으로 2015년 1월 은행권 청년창업재단 디캠프(D.CAMP) 센터장이 됐다. 그는 “창업자들을 돕는 일이라면 가치가 있고 디캠프 센터장이라면 도전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김 원장은 “권위적인 사람, 수직적인 문화에 대해서는 체질적으로 거부감을 느낀다"라며 몇 가지 얘기를 들려줬다. 대학 졸업 직후 시골 5일장을 돌아다니며 양말 장사를 했던 일, 대학 시절과 대학원 시절에 입주 아르바이트를 하며 ‘눈칫밥'을 먹었던 일, 6개월 석사 장교를 마다하고 방위병을 선택했던 일 등. 밑바닥부터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온 만큼 아랫사람의 마음을 잘 알았다. 그리고 잊지 않았다.

그래서 디캠프 문화, 창업계 문화에 적응하는 데 오래 걸리지 않았다. 디캠프 동료들은 “그렇게 하면 안 된다"라는 식으로 조언을 많이 해 줬다. 나이나 직급을 따지지 않고 서로를 존중하는 문화, 수평적인 문화를 접하면서 마침내 몸에 맞는 옷을 찾아 입은 것 같았다. 그는 디캠프를 ‘창업계 허브'로 만드는데 주력했다”고 말했다.

디캠프 센터장 임기가 끝난 뒤에는 쉬고 싶었다. 그러나 노는 것은 그에겐 맞지 않았던 것 같다. 창업진흥원장 공모가 뜨자 고민에 빠졌다. 민간 창업계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공공부문에도 기여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김 원장은 “창업정책을 집행하는 창업진흥원이 민간 창업계와 따로 노는 것이 문제라고 생각해 지원했다”고 말했다.



지금의 김광현을 만들어 준 ‘연결’, 그리고 노력


디캠프의 활성화와 창업진흥원의 변화. 그 중심에는 김 원장의 존중과 대화가 있었다. 존중과 소통은 그의 인간관계에서도 드러난다. 언제나 상대의 말을 귀담아들을 줄 알았던 그의 주변에는 늘 사람들이 있었다. 김 원장은 평기자였던 자신이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건 사람들과의 연결 덕분이라고도 했다. 기자로서 업계 사람들과 자주 소통했기에 스타트업, 창업계와 가까운 사람이 되어간 것이다.

하지만 그는 “30여 년 사회생활 동안 사람 이름 외우는 게 가장 어려웠다"라고 했다. 여러 차례 만난 사람한테도 명함을 내밀기 일쑤였다. 그러다 보니 한 사람의 명함을 세 번, 네 번 받은 적도 있다. 상대방이 “지난번에 우리 만났잖아요"라고 말할 때는 얼굴이 달아오르기도 했다. 낯은 익은 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기자 시절에는 취재원 관리에 애를 먹었다. 주요 취재원들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죄다 기억하는 동료 기자들을 보면 부러웠다. 취재원들을 기억하기 어렵다면 관리라도 잘 해야 하는데 만만치 않았다. 이름을 수첩에 써놓기도 했고, 명함관리 소프트웨어도 써 봤고, 엑셀이나 구글 주소록도 써 봤다. 어느 것도 만족스럽지 않았다.

30년 불편을 마침내 해소한 건 리멤버였다. 명함 관리를 용이하게 만들어줬을 뿐 아니라 상대의 인상착의나 이력을 메모해 둔 것도 큰 도움이 됐다. 얕은 기억력이 주는 불편을 해소할 수 있었다. 리멤버는 그가 사람들과 ‘연결’될 수 있게 도와준 ‘통로'였다. 현재 김 원장의 리멤버 명함첩에는 명함이 1만 개 이상 등록돼 있다. 기자 시절에 알게 된 취재원, 창업계 지인, 창업자, 친구 등의 명함이다. 4년간 1만 개니까 매년 2,500개씩 늘어난 셈이다. 창업진흥원 직원들 명함도 모두 리멤버에 올려놨다.

김 원장은 기억력이 원래 나빴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초등학교 2학년 때는 국민교육헌장을 5분 만에 외워 형을 놀라게 했고,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늘 전교 수석을 차지했다. 김 원장은 “고등학교 때 정신적 충격을 받아 기억력이 나빠졌다"라고 털어놨다. 그 ‘충격'에 대해서는 일체 말하지 않고 배시시 웃기만 했다.



“떠날 때 박수받고 싶을 뿐”


김 원장에게 “요즘에는 어떤 일이 힘드냐?"라고 물었다. 김 원장은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면서 “직원들이 힘들어할 때”라고 답했다. 예를 들어, 직원이 창업자한테 폭언을 듣고 화장실 가서 울었다는 말을 전해 들을 때, 직원이 건강이 악화돼 병가 가겠다고 보고할 때, 잦은 야근으로 아기가 엄마를 몰라봤다는 말을 들을 때라고 했다. 김 원장은 “행복한 조직문화를 만드는 작업도 추진 중”이라고 말했다.

김 원장은 한때 ‘광파리'란 필명의 테크(IT) 블로거로 활약했다. 지금은 원장 일에 충실하기 위해 블로깅은 중단한 상태다. 김 원장한테 “임기가 끝나면 무슨 일을 하고 싶냐?"라고 물었다. 그는 “깊이 생각해 보진 않았다", “떠날 때 박수받고 싶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래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라서 뭔가를 할 것 같다"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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