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활하는 12평 남짓한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에는 단 하나의 룰만 존재한다. 매일 부딪히는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거나 큰소리가 나거나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들은 모두 차단하고 평온함이 깃드는 '쉴 곳'으로 만들 것. 이 단 하나의 룰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매일 밤 9시 오늘의 안건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전 씨와 내가 답답함을 표한 뒤 집안에는 스산한 기운이 퍼지고 있었고 우리는 눈치싸움을 시작했다. 밥을 먹을 때도, 청소를 할 때도, 각자의 일을 할 때도, 둘 사이에 선을 긋고 각자의 영역에서 벗어날까 조마조마하며 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었다. 동선이 부딪히기라도 할 때면 우리의 눈치싸움은 더욱더 팽팽 해졌다.
아이러니하게도 감정은 고스란히 드러내지 않기 위해서 안간힘을 쓰면 쓸수록 잘 새어 나오는 것 같다. 옳은 방향이 아닌 이곳저곳 모난 형태로 삐뚤어지게 형태를 드러낸다. 그렇다고 매번 대놓고 솔직해지기도 힘들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이해받고 싶은 미성숙한 태도를 가진 어른의 삶은 그만큼 오해 사기도 쉽기 때문에, 때로는 거리를 두고 천천히 살펴봐야 하는 깊은 배려가 필요하지만 당장에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충동 또한 강하게 밀려든다.
하루의 일과를 끝내고 앉은 식탁에는 침묵만이 흘렀다. 미주알고주알 각자의 하루를 나누고 요란스럽게 울렸던 우리의 목소리는 자취를 감추었고, 켜놓은 TV 화면 속 연기자들의 목소리로 정적인 식탁을 매웠다. 돌멩이를 씹은 듯 까끌거리기만 했던 밥을 반쯤 남긴 체 그릇을 치우며 전 씨에게 말했다.
- "우리 잠깐 밖에서 산책하고 올까...?"
- "그래. 옷 갈아입고 나가자."
밖으로 나오니 옷깃을 펄럭이며 스치는 바람이 차게 느껴진다.
- "춥다. 그렇지? 요즘은 날씨가 제멋대로야. 어제는 반팔 입었는데, 오늘은 3개나 껴입었어."
-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깊은 숨을 천천히 내쉰다.) "난 이제야 좀 시원하고 좋은데?"
- "내가 생각해봤는데, 우리 집 안에서는 다투지 말자. 대화를 하다 가도 화가 나면 서로 나가서 떨어져 걷더라도 일단은 나가자. 지내면서 서로 의견이 안 맞거나 감정이 상하는 일은 앞으로도 생길 텐데, 보다시피 '미안해'라는 말로 상황은 종료되어도, 이미 드러낸 감정은 자리를 뜨지 않고 집안에 그대로 남아있잖아. 나는 우리가 사용하는 공간을 뒤숭숭하게 어지럽혀 놓는 게 싫어. 매일 꺄르르르 웃음이 넘치진 않아도 마음 편하게 쉴 곳이 되었으면 좋겠어.
- (전 씨가 내 어깨에 손을 올리고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 다소 경망스럽게 웃는다.) "꺄르르르 까르르르 웃는 건 어떤 건데?"
- (미간을 찌푸리며 새침하게 전 씨를 바라본다.) "지금 너처럼 웃는 거다. 왜!"
- "그래. 그러자. 근데 난 꺄르르르르 이렇게 매일 웃을 수 있는데!?"
- (얄궂게 장난치는 전 씨가 싫지 않은 듯 살짝 밀쳐내며 웃는다.) "그래. 그래라."
- "떡볶이 사러 갈래?"
- (눈이 휘둥그레 져서 말한다.) "지금 우리 밥 먹은 지 30분도 안됐어.."
이날 우리는 스산한 기운 속에 담아 두었던 묵직한 말들을 산책을 하며 가볍게 덜어냈고, 돌아가는 길에 자주 가던 포장마차에 들려서 떡볶이를 포장해 집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