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생활하는 12평 남짓한 작은 평수의 오피스텔에는 단 하나의 룰만 존재한다. 매일 부딪히는 사소한 일로 얼굴을 붉히거나 큰소리가 나거나 냉랭한 분위기를 풍기는 일들은 모두 차단하고 평온함이 깃드는 '쉴 곳'으로 만들 것. 이 단 하나의 룰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매일 밤 9시 오늘의 안건을 들고 식탁에 앉는다.
전 씨가 구직활동을 시작한 지도 시간이 꽤 흘렀다. 금방 취업을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지만 현실은 아르바이트도 또 하나의 경쟁시장이었다. 처음 구직을 시작할 때는 유학 준비로 인해 공부를 같이 병행하며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찾았는데, 시간대가 맞지 않거나 나이, 직무 경험 유무 등 명시한 조건에 부합되지 않거나 급여가 명시한 것보다 적거나 하는 문제로 구직활동이 쉽지 않았다. 보낸 이력서를 보고 연락이 오는 곳은 많았지만, 면접까지 이어져도 당장은 급하지 않으니 면접 후 1주일이 지나고 연락을 준다거나, 기다려도 연락이 오지 않는 경우도 더러 있었다.
우리는 동거 시작 이후 발생하는 공동 생활비를 제외하고는 다른 금전적인 부분에선 공유를 일절 하지 않는다. 공동 생활비란 월세, 관리금, 식비, 공동으로 사용하는 비품들로 이루어져 있고 통장 하나를 만들어 카드 사용으로 둘에게 필요한 입. 출금이 가능하게 하는 식이다. 혼자 살 때보다 고정지출이 늘어나 생활비도 늘 것을 감안해도 어느 정도 지출이 늘어날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아 첫 달은 주 단위로 계산을 했고, 한주 한주 늘려가는 식으로 하자 했지만 전 씨가 구직활동이 어려워지면서 공동 생활비 부분에서도 조율이 필요한 상황이 되었다.
- "우리 생활비 부분에서 월세, 관리비 같은 고정적인 비용은 두고 그 외에 것들을 줄이는 방향으로 조정을 해야 할 것 같아."
- "그럼 남은 건 식비랑 비품인데, 식비도 최소한의 비용으로 나가고 있어. 하루 한 끼 집에서 해 먹어야 한다면 장은 봐야 하는 거고, 외식비를 줄이는 쪽으로 보면 현재 주 1회 외식도 많지 않잖아.
-"... (말끝을 흐리면서 의기소침하게 말을 이어간다.) 외식을 줄이는 건 어때?"
전 씨가 생활비를 조정하는 단계에서 현 지출을 최소화할 수 있는 부분을 조목조목 따져가며 말을 하는 동안 풀이 죽어 기를 못 피는 모습에 마음이 아렸다.
-"흠...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어때?. 일단 지금은 우리가 통장에 넣어 둔 돈이 있으니까, 이것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필요한 부분만 생활을 하고, 나머지는 유동적으로 가능한 만큼 각자 넣어두고 쓰자.
- "그래도 괜찮겠어?.."
- "응. 난 괜찮아."
- ".. 고마워. 나 요즘 구직 활동을 하다 보니까, 내가 쓸모없는 사람이 된 거 같아.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기본 시급도 수습기간에는 다 주지 않는 데가 많고, 경험자 위주로 구하는 곳이 수두룩이고, 요구하는 것도 거의 대기업에서 요구할 만한 수준이니 내가 너무 현실을 모르고 살았나 싶더라.."
전 씨가 지금 느끼는 것들은 모두 이미 나도 충분히 겪을 대로 겪었던 것들이다. 같이 사는 것에 대한 불편함은 정도에 따라 다르고, 편의를 봐줄 수 있는 부분 또한 금전적인 문제에 비해 훨씬 넓지만, 상황에 따라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가 있고, 이로 인해 생기는 금전적인 문제가 해결이 되지 않으면, 모든 게 나 자신에 대한 가치 값으로 환산이 되어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에 무리해서 부담을 주고 싶진 않았다.
다행히도 전 씨는 얼마 안 있다 새 직장을 구할 수 있었고 구직 활동이 끝나면서 생활에 전반적인 부분이 원래에 자리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