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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엄기언 Mar 30. 2023

벚꽃이 흐드러지는게 난 싫다.

신도시 사는 80년대생 아줌마

“올해는 사상 처음으로 3월에 벚꽃축제가 열릴 예정입니다.”


뉴스 말미에 라일락색 원피스를 입은 기상캐스터가 전해주는 전국 벚꽃 개화시기에 따르면 예년보다 높아진 기온으로 인해 강원도 강릉에서 열리는 벚꽃 축제일이 3월에 열리게 되었다는 소식이다.

주방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벚꽃나무가 며칠 사이에 하얀 꽃이 팝콘 튀겨놓은 것처럼 팝팝 올라와 단지 사잇길을 환하게 만들어 놓았다.

하얀 꽃들이 무리 지어 피어 있는 모습에 괜히 들뜨고 가슴이 콩닥콩닥했던 작년과는 달리 올해는 연두색 새순이 돋아나는 것도, 꽃봉오리가 움트는 것도 보기 싫다.

아니, 더 정확히는 꼴 보기가 싫어졌다.


인스타나 맘카페에 올라오는 벚꽃구경 인증사진들을 볼 때마다 묘하게 기분이 불쾌해짐을 느꼈다.


‘어? 나 왜 이러지? 왜 이렇게 베베 꼬인 거지?‘


불과 지난달 도쿄에서 마주한 매화꽃 무리 앞에서 환한 웃음 지으며 사진을 수십 장 찍던 나는 왜 돌변한 걸까?


꽃이 피면 햇살과 바람에 흩날리며 정처 없이 흩날리다 땅바닥으로 곤두박질쳐 사람들 발길에 짓이겨지다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린다.

영화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에서 살인자역을 맡은 벤 위쇼가 아름다운 향수를 바른 채 사람들에게 형체도 없이 죽임을 당하던 결말이 떠오른다.

아름다움은 영원하지 못한다.

늘 결말이 열려있으나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느껴질 뿐이다.


꽃이 피는 절정의 순간이 찰나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내게는 너무나 슬픈 나머지 외면하고 싶고 급기야 꽃이 피는 것 자체가 짜증스럽게 다가온 것이다.

불멸의 이별을 당해야 하는 순서를 역행할 수 없는 자연의 섭리를 너무나 잘 아는 나이이기에.


“우리도 꽃구경 가요! 다들 난리던데…”


친하게 지내는 지인들과의 단톡에서 나는 꽃구경 대열에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갔다.

작년 이맘때 탄천에서 경험한 벚꽃비의 영광이 다시 펼쳐질지는 미지수다.

좋은 것을 볼 때는 한 없이 좋은 기분을 만끽하고 함께 누리기를 서슴지 않는 기분파인 내가 막상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결에, 탄천에 흘러 흘러가는 하얀 꽃잎들을 보며 꺄악 탄성을 지를지도 모르겠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러 저녁에 종종걸음으로 슬리퍼를 끌며 밖으로 나왔다.

가로등 아래에서 소담스레 피어 있는 목련꽃을 올려다보다 갑자기 울컥하는 무언가가 눈주위를 따뜻하게 했다.


‘어머! 주책맞게 꽃 보고 울고 지랄이야. 나이 먹고 왜 이래?’


예상치 못한 순간에 눈물이 차오르는 경험은 30대 후반 남의 결혼식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친구 결혼식장에서 남몰래 눈물이 흘러서 당황했고, 남편 후배 결혼식장에서 일면식도 없는 부부의 주례를 듣다 눈물이 흐르는 기이한 경험을 했다.

나이를 먹고 인생을 알아가는 과정에 감수성도 진해져가나 보다 했다.

카톡 프사가 꽃천지면 나이 든 사람이라던데 난 그렇지도 않다.

그런데 별안간 어두운 밤 아파트 귀퉁이에 고고히 피어있는 목련꽃을 보고 울고 있는 꼴이란…

음식물 쓰레기통을 잡고 있는 손에서 물기가 뚝뚝 흐르는 것을 느끼며 소매 끝으로 눈을 비볐다.


수많은 작가들이 인생을 꽃의 개화에 빗대어 표현하곤 했다.

청소년기에는 못다 핀 꽃봉오리라면 열정의 청년기엔 팝 하고 꽃이 피는 시기이다.

그리고 30대에 접어들면 가장 꽃이 아름답게 얼굴 드러낼 절정의 시기로 여긴다.

그리고는 40대, 50대가 되어갈수록 초라하게 고개를 떨구고 툭하며 땅으로 고꾸라져버리는 동백꽃처럼 인생도 저물어간다.


40대인 내가 느끼는 노화, 중년의 기분, 더 이상 설레지 않는 일상의 순간들, 이미 다 알아버린 것 같은 스포일러 가득한 삶의 기로에서 어쩌면 질 게 뻔한 꽃을 보며 나 자신을 보는 아픔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웃어도 싱그럽지 않고, 매일 한올씩 신경 거슬리게 눈에 띄는 하얀 머리카락을 놀람이 아닌 보통의 한숨으로 대하는 이 나잇대에, 흐드러지는 벚꽃 따위 작년에도 올해도 내년에도 만날 자연의 섭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뜻으로 다가와버렸다.


다만 상실의 아픔을 겪고 싶지 않은 내 안의 본능이 그리도 벚꽃을, 목련을 놓아주지 못한 모양이다.


(그림참조: 김선현,그림이 나에게 말을 걸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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