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쓰고 싶다고 생각했었고,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쓸 수 있을 거라고 자만했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글쓰기에 전념하고자(하하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무슨 용기로, 미친 짓) 글쓰기로 만난 동기들과 몰려다니며 술을 퍼마시고(예술을 논한답시고, 웃기지도 않음)
술을 마시기 위해 합평을 하고, 글을 쓰기 위해 연애를 하고(오그라든다) 울고 불며 인생을 만만하게 보기 시작한 것이 벌써 10년 전이다.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한 줄도 쓰지 못할 것 같던 우린 각자 자리로 돌아갔고, 그중에선 애초 노선대로 방향을 잡은 친구들도 더러 있긴 하지만, 놀랍게도 지금은 그 누구와도 안부조차 묻지 않는 사이가 되었다.
그럼 10년 동안 난 어떻게 지냈을까?
주로 회사에 있었다. 회사 1, 회사 2, 회사 3 정도.
한 곳에 오래 머물지 못하는 못된 습관 때문인지 회사를 종종 옮겼다. 포기가 빠른 만큼 시작도 수월한 편이라 직장이 바뀌는 일에 크게 스트레스는 없었다.
다만, 모든 직장에서 열심히 뼈를 갈아 일을 했지만 나의 성과에 비해 경력이 다소 평가절하 된다는 좌절감을 빼면 견딜만한 시간이었다.
그럼 또, 10년 동안 난 썼나?
아니.
전혀라고 썼다가 아니라고 수정한다.
전혀 안 쓴 건 아니고 그렇다고 썼다고 하기에도 애매한, 요즘 유행한다는 ‘간헐적’ 글쓰기를 하고 있었다.
글쓰기 좋아함+영화 좋아함=시나리오라는 순진한 공식으로 시작했던 글쓰기 1은 단편 2, 중편 1을 남기고 내려놓았다.
감정을 길게 길게 풀어내길 선호하던 나는 감정을 스크린으로 옮기는 방식에 적응하지 못하고 나가떨어진 셈이었다.
그러면 혼자 감정을 길게 길게 원 없이라도 풀어보자 하고 시작했던 글쓰기 2는 소설이었다.
소설은 재미있었다. 일단 쓰고 싶은 대로 다 쓰고 다 쓰고 다 쓰고 또 썼다. 처음 신춘문예에 공모한 단편소설 중에선 감정 놀이로 A4용지 2매를 할애한 글도 있다.
그렇게 살풀이하듯 쓰다 보니 알맹이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때야 학교 다닐 때 교수가 한 말들이 떠올랐다. 소설의 작법 뭐 어쩌고 저쩌고 하는 것들.
이때까지만 해도 글 쓰는 일에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고 있었는지 번쩍 생각나는 내용을 휴대폰에 메모하더라도 꼭 시간을 내서 한글 파일에 제대로 글을 쓰고 시작한 글은 끝맺음하는 정성을 보였었는데 순간 SNS 붐이 일고 트위터-블로그-페이스북-인스타로 이어지는 과정에서 나의 글은 점점.. 뭐랄까... 풍선? 같아졌다.
부풀어 있지만 작은 바늘 침에 펑하고 터져버리면 쪼그라드는 풍선. 허세만 가득한, 감동도 메시지도 주제도 없이 허공을 떠도는 주인의 손을 떠난 풍선.
회사에서 탈출한 지 6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회사 일에 치여 살 땐 시간만 생기만 일주일에 한편씩 글(어떤 글이든)을 써내겠다는 굳은 다짐이 있었다.
처음엔 심신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진짜 아무것도 안 하고(진짜로 아무것도 안 했다. 진짜로)
조금 후엔 그동안 바빠서 못 간 여행이 필요해 여행을 다녀왔고(마지막 여행이 될 줄이야. 코로나야.)
여행에서 돌아와선 예상치도 못한 엄마의 부상으로 집안일을 도맡았고(관절염과 신경쇠약이 도졌다)
어린이집에 등원하지 못하는 조카들과 동생이 집에 와 있었고(관절염 2와 신경쇠약 2가 더해졌다)
그러다 보니, 6개월이 지났다.
결국 쓰지 않은 핑계를 찾아 나열한 것일 뿐 진짜 글을 못 쓸 만큼 중대한 일은 없었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럼
갑자기 왜 매일 쓰기로 결정했나.
갑자기는 아니다.
나는 지금 열심히, 잘 놀고먹고 있고 몸도 마음도 많이 회복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오랫동안 하지 않던 운동을 시작했고, 떡볶이와 맥주로 채우던 끼니는 탄단지 비율 잘 맞춘 건강식단으로 바꿨다.
식사와 운동을 챙기기 시작했다는 건 그만큼 에너지가 생겼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렇게 잘 지내고 있다고 여기던 얼마 전 갑자기 깊은 우울감이 몰려왔다.
우울감의 이유가 무엇일까, ‘우울함’이 ‘그동안 우리 너무 소원했다 얘, 나 그리웠지?’ 같은 악감정으로 나에게 발을 들였을 리는 없지 않은가.
매일 밤 탄천을 걸으며 이유를 생각했다. 내 안에 깊게 자리 잡은 이 우울감의 이유가 무엇일까.
식단과 운동을 하면서 자기 기록쯤으로 여기고 인스타그램에 하루하루를 기록하는데, 하다 보면 다른 사람이 먹고 운동하는 것도 궁금해지기 마련이고 그렇게 ‘탐험’을 하다 보면 열심히도 하는 사람이 진짜 많다. 그런데 그 들의 글에서 보인 공통점이 한 가지 있었는데, ‘출근, 퇴근’이라는 단어였다. 출퇴근이 없다면 학생, 학생이 아니라면 운동 자체가 직업인 사람들.
현실 자각 타임
그렇다. 나는 하루를 꽉꽉 채워 운동도 열심히 하고 책도 읽고 가끔 글도 쓰고 하물며 취미로 그림도 그리면서 ‘잘’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 모든 행위들이 다른 사람들에겐 경제활동 후 할 수 있는 ‘취미생활’ 일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던 거다.
나는 경제활동을 왜, 하고 있지 않은지 혹은 언제까지 하지 않을 예정인지, 한다면 무엇을 할 것인지 등등의 고민이 꼬리에 꼬리를 물면서 결국엔 우울감이 내 안으로 반갑게 비집고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쓰기로 했다.
경제활동이 돈을 버는 일 외에도 생산적인 것, 없던 것에서 있던 것으로 만들어 내는 행위도 포함시킬 수 있다면 내가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은 결국엔 쓰는 일이다.
왜 그렇게 쓰고 싶어 하는지는 아직 내 안에 풀어내지 못한 얘기들이 많아서 어떻게든 밖으로 흔적을 남기고 나서야 갈망이 사라질 수 있다면 일단은 쓰는 게 답이라는 결론이다.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쓰기로 한다.
글 쓸 때 좋지 않은 버릇 중 하나가 한 문장 쓰고 백스페이스 파바바바바 눌러 지우고 똑같은 문장 다시 쓰고(누가 보면 쉬지 않고 글 써내는 천재인 줄 알 것임) 같은 버릇을 지운다.
한 단어라도 쓰고 생각이 나지 않는다면 손가락을 잠시 멈추고 생각한다.
글을 쓰기 위한 기획을 하지 않는다. 처음부터 완성을 바라보고 기승전결의 틀을 잡아야 시작하는 글쓰기는 이제 나에겐 의미가 없다.
시간이 되면 앉아서 약속한 시간이 될 때까지 쓴다. 어떤 것이든. 한 문장도 써지지 않으면 안 써지는 마음만이라도 그대로 옮겨 적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