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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Jul 14. 2020

미안해 삐약삐약삐약

7월 14일 AM 8:40

4년 전쯤이었던 것 같다.

우리 집에 아주 잠깐 병아리가 왔던 일이.

엄마는 농사일을 하시는 이모집에 놀러 가셨다가 병아리 한 마리를 데리고 왔다.

퇴근하고 현관문을 여는데 우리 집에선 들어본 적 없는 동물소리에 선뜻 발을 들여놓지 못하고 현관에서 주춤거렸다.

“무슨 소리야? 병아리?”

“응. 이모네 닭이 병아리를 부화시켰어. 신기하지?”

“그래서 걜 데리고 왔다고? 키울라고?”

“그럼 키울라고 데리고 왔지. 예겸이가 얼마나 좋아하겠어.”

그렇다.

우리 집 사람들은 동물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좋아하고 싫어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무서워한다.

보드라워 보이는 털 밑으로 만져지는 딱딱한 뼈의 느낌이 무섭고 무턱대고 들이미는 주둥이도 무서웠다.

그런 엄마가 동물을 들인 건 순전히 손주 ‘때문’이었다.

그림책에서 보던 동물을 직접 보고 만지는 경험을 하게 해주고 싶었을 거다.

그렇게 우리 집에 병아리가 오게 되었다.

병아리는 너무 밝은 빛에 있으면 안 된다고 해서 조명을 어둡게 만든 방에, 작은 박스에 집을 만들어주었다.

‘삐약삐약삐약삐약’

초등학교 앞에서 박스 안에 병아리들을 잔뜩 담아 놓고 한 마리 500원에 팔던 병아리들을 쪼그리고 앉아 한참을 구경했었다.

그땐 동물에 대한 공포가 없었고 다만 이 병아리를 내가 키울 수 있을까, 무턱대고 사갔다가 엄마한테 혼나진 않을까, 닭이 되면 어떡하지 같은 걱정이 앞서 차마 500원을 쓸 수 없었다.

그런데 그런 병아리가 눈 앞에 있다니.

10살쯤에 했던 걱정은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이 얠 어떻게 키워? 닭이 되면 어떡해? 병아리를 옆에 두고 치킨을 먹을 순 없을 텐데. 같은 원초적인 걱정.

이런 걱정과 더불어 한 가지 문제가 또 있었는데 엄마가 병아리를 데리고 올 때 아빠와 상의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었다.

조금의 불편함, 시끄러움, 낯섦을 감수하지 못할 것이 아니하지 않을 것이 뻔한 아빠를 어떻게 설득시키려고 한 것일까 엄마는.

역시나였다.

아빠가 병아리를 만난 반응은 역시나 부정적이었고 아빠의 미간은 한껏 구겨졌다.

병아리가 싫다는 말 대신 있는 힘껏 표정으로 내보이는 불쾌함 같은 것.

그 와중에도 병아리는 쉴 새 없이 삐약삐약삐약 소리를 내었다. 불안해서인지 불편해서인지 아니면 그냥 소리를 내는 건지 도무지 알 길 없는 삐약삐약삐약.

병아리 삐약 한 번에 아빠 눈치를 한번. 병아리 삐약 아빠 눈치 한번.

내가 아빠 눈치를 살피는 것과 다르게 엄마는 아빠의 반응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든지 말든지’ 같은 엄마의 태도에 어쩐지 나는 억울한 마음까지 들었다.

내가 데려온 병아리가 아닌데..

하룻밤이 길고도 길었다. 모두 불을 끄고 자면 병아리도 함께 잠을 자겠지, 싶었으나 작고 노란 병아리는 쉼 없이 삐약삐약삐약.

다음 날 병아리는 전날보다는 조금 진정된 모습이었다. 거실에 풀어놓으니 여기 구석에서 아무것도 없는 바닥을 쪼기도 하고 저기 구석으로 갔다가 다시 여기로 왔다가 바쁘게 움직였다.

전날 밤의 삐약삐약삐약은 상자에서 꺼내 달라는 뜻이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아빠가 다시 퇴근하고 병아리의 삐약삐약삐약은 낮보다 더 크고 선명하게 들려왔다.

아빠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표정으로 들고 있던 숟가락을 탁! 내려놓으며 “쟤 좀 어떻게 해!!”라 말했고

엄마는 “쟬 어떻게 해? 키우겠다고 데려왔는데 그럼 버릴까?” 하니

아빠는 “그래! 그냥 누구 줘버려!”라는 말도 안 되는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엄마는 갑자기 식탁에서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는 병아리가 든 상자를 안고 현관문을 쾅 닫고 나가버렸다. 말릴 새도 틈도 없이.

5분 정도 지난 후 돌아온 엄마는 빈 손이었다.

“엄마, 병아리는? 진짜 버렸어?”

신발도 벗지 못하고 한참을 가만히 서있던 엄마는 그제야 정신이 드는지

“내가 미쳤었나 보다.” 하더니 바쁘게 뛰어나갔다.

한참 후 돌아온 엄마는 빈 손이었다.

“엄마 병아리는? 왜 빈손이야?”

“그 사이에 누가 데려갔나 봐.... 박스가 통째로 없어졌어... 금방 다시 갔는데.. 그 사이에 누가 데려간 걸까?”

말하는 엄마의 눈빛에 물기가 어른거렸다.


우리 집에 온 병아리는 그렇게 우리에게서 떠나 졌다.

그 날은 바람이 많이 불고 아직은 쌀쌀한 늦봄이었는데, 박스 안에서 얼마나 무서웠을까.

나는 왜 엄마를 말리지 않았을까. 어쩌면 나도 아빠의 의견에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 아니었을까.

병아리를 유기한 죄책감 같은 것이 깊게 남았다.

어쩐지 위선이라 느껴지는 나 자신에 대한 회의도 함께.



AM 9:36에 마친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되는 일이었는데 후회가 많이 남는다.

미안해 삐약삐약삐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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