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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일라 Jul 15. 2020

그저 겁이 많아서예요.

7월 15일 am 8:48

친구들이 날 부르는  별명 혹은 기억하는 이미지가 몇 가지 있다.

플랜송 - 여행 갈 때 30분 단위로 계획을 짜고, 일을 시작하기 전에 계획이 없으면 움직이지 못한다.

폭파왕 - 오랫동안 열심히 차곡하게 쌓아온 SNS 계정들을 삽시간에 폭파시켜 버리면서 얻은 별명이다.

결단녀 - 사소한 일에 머뭇거리지만 인생의 방향을 바꿀 수 있는 ‘큰’ 사건에선 주저 없다.

연예인 - 다른 뜻이 아니라 전화번호를 하도 자주 바꿔서 친구들 전화번호부 목록 내 이름 뒤엔 항상 ‘진짜’ 혹은 ‘진짜 마지막 번호’ 같은 수식어를 붙여 놓는다고 한다.

하하하 ‘내가 진짜 그래?’라며 생각지도 못한 내 별명들을 웃고 넘기면서도 잠깐잠깐 생각에 퐁당 빠질 때가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철저하게 계획하는 일에 지나치게 많은 에너지가 소비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멀고도 먼 나라 여행을 가면서 아무 계획도 세우지 않고 내일모레 출발 티켓을 끊어 떠나기도 했으니 이제 플랜송은 나와는 조금은 거리가 먼 얘기가 되었다.

큰 사건에서 고민하지 않고(결정하기까지 고민은 수없이 하지만 결정하고 난 다음 뒤도 돌아보지 않는) 쭉 달릴 수 있는 건 젊음과 시간이 보장되었을 때 가능한 얘기라는 것을 온몸으로 체험하고 요즘은 돌다리도 두들겨 건너보는 내가 되었다.

또, 오랫동안 공들여 만들어낸 비루하지만 새끼 같은 나의 기록들을 단순간에 없애버리는 것이 후에 몰려드는 깊은 상실감의 일부 원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꼭 어딘가에는 따로 저장을 해 두는 버릇도 생겼다.(SNS 계정을 삭제하는 일은 너무나 간편하니까.)

그리고, 마지막 연예인.

18살 처음 휴대폰(PCS폰이었구나)을 시작으로 20여 년 동안 내가 거쳐간 번호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이것마저도 정확히 기억나는 건 아니고 대충인데도 족히 10개가 넘는다.

011에서 010으로 앞자리가 바뀔 때 빼고는 번호가 그대로인 동생, 아빠, 친구들을 생각하면 ‘잠깐, 나에게 진짜 고질병이 있나?’싶을 정도로 이상한 버릇이다.

전화번호가 많이 바뀐 만큼 전화번호부 안의 사람들 이름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는데, 그저 언제나 그대로 있는 이름들은 가족과 25년 지기 친구뿐이다.


대학에 입학하고 그 전과는 다르게 만나는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정확한 실체를 파악하기도 전에 또 다른 사람을 만나고 웃고 나를 꺼내어 보여주고 부비고 돌아볼 겨를 없이 또 앞으로 나아가고 새로운 일을 만들고 또 사람들을 만나고 나를 꺼내 보여주고 부비고 또 앞으로 나아가는 시간들이 지나면서 에너지는 점점 고갈되어갔다.

눈은 웃지 못하고 입만 삐죽거리는 사람이 되었다고나 할까.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많은 일을 하는 것이 ‘잘, 열심히 사는 것’이라 여기던 시간 속에서 나의 존재는 흐릿해지고 신경은 날카로워졌다.

주인공이 되고 싶었지만 내 인생에서조차 주변인으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시절이었다.

자주 내 존재를 없애는 방법에 몰두했고, 시도가 실패로 끝났을 때 전화번호를 바꿨다.

전화번호를 바꾸기 시작한 버릇이 이때부터였다. 사람들로부터의 도망과 사람들에게 나의 존재를 알리고 싶었던 양가적 감정에 허우적거리는 표현의 수단.

전화번호를 바꾸고 나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일로만’ 만났던 사람들의 연락처를 지우는 것이었다. 하물며 어떤 번호엔 이름도 적혀 있지 않고 만났던 장소, 미팅명만 적혀 있기도 했다.

그다음은 술자리에서 제정신이 아닐 때 주고받은 연락처들, 그다음은 해가 넘어가도 서로 안부조차 묻지 않은 연락처들의 순서로 이름을 지워나갔다.

시도가 실패로 끝나는 횟수가 많아졌고 몇 천 개가 넘던 전화번호는 백 단위 이제는 50개도 채 되지 않는 단출한 정도가 되었다.


존재를 없애고자 한 시도 후 전화번호를 바꾸고 정리하는 일에 집착한 건 다른 이유는 아니었다.

만에 하나 나의 시도가 성공에 이르고 가족(아마 부모가 되겠지)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내 휴대폰의 전화번호부를 뒤져 지인들이었던 사람들에게 나의 소식을 알리는 것일 테다.

가족(부모)은 전화번호부의 이름만 보고는 알 수 없지 않을까. 이 사람과는 어떤 관계를 맺었고 어떤 사연이 있었으며 얼마큼의 친밀함을 유지하고 있었는지 말이다.

최소한 나의 소식을 전해 듣고 ‘아, 부담스러운데.. 어쩌다 그랬대?’ 같은 위로 아닌 위로를 남길 사람에게 조금의 부담도 주고 싶지 않은 오만함이기도 하고

나라는 사람이 더 이상 함께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깊이 슬퍼할 사람들의 배웅만 받고 싶다는 이기적인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마음만 받고 가고 싶다는 겁먹은 나.


지금 내 전화번호는 3년쯤 유지 중이다.

그 시간 동안 존재를 없애고자 하는 시도는 하지 않았고(생각은 했지만) 그럭저럭 잘 꾸려 나가고 있다.

깊은 우울과 무력이 나를 통째로 집어삼키고 내가 도저히 빠져나오지 못해 나의 소식이 당신들에게 전해진다면, 그거 하나만은 확실한 것이다.

‘내가 당신을 진짜로 마음 깊이 아끼고 사랑했단 뜻이에요.’



am 9:49

맞아요.

내가 당신을 진짜로 아끼고 사랑했단 뜻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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