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인지 아주 오랜만에 아무 할 일 없는 일요일인 기분이었다. 아주 늦게까지 진짜 늘어지게 잠을 자고 그것도 모자라 침대밖으로 절대 안나가고 뒹굴거리다 해가 넘어갈 때쯤 몸을 일으켰다. 양쪽 베란다를 활짝 열고 며칠 전 세차게 내린 비에 아직 젖어있는 베란다큼을 꼼꼼하게 청소했다. 침대 이부자리를 털어내고 먼지를 걷어내고 계피를 칙칙 뿌려 놓았다. 거실, 옷방까지 모두 청소하고 나니 이제 주방일이 남았다. 아침마다 먹는 케일스무디 재료를 소분하고 이사올 때 엄마한테 받아온 양배추가 그대로 있어 한살림에서 사온 만두피로 영배추김치만두를 빚었다. 오늘은 단식하는 날이라 아직 맛은 보지 못했지만 냄새가 맛있음을 보장한다. 내일 도시락을 싸놓고 오랜만에 손톱에 모양도 내고 즐겨보던 드라마 마지막회까지 보고 나니 이제 자야 할 시간이 되었다. 그러고보니 오늘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입밖으로 내 목소리가 나오지 않은 것이다. 전화도 오지 않았고 아무도 만나지 않았으니 당연한 일인가. 이런 고요함을 원했었다. 완벽하게 고요하고 완벽하게 외로운 이런 상태를 원했고 원하던 대로 이루어졌다. 모두 잘 된 일인데 갑자기 들이닥치는 어쩔 수 없는 외로움에 적응은 아직 시간이걸릴 듯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