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을 견디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제주에서 맞는 첫겨울은
생각보다 조용했다.
눈이 쌓이지도 않았고
세상이 갑자기 달라 보이지도 않았다.
다만, 바람이 조금 더 낮게 불었고
빛의 각도가 조금 더 느리게 움직였다.
섬에서의 겨울은 환영받는 계절도
경계되는 계절도 아니었다.
그저 제자리에 머무르며
“이제 너도 여기의 계절을 살게 되었다”라고
담담하게 알려주는 시간 같았다.
육지의 겨울은 늘 이동 중이었다.
어디로 갈지 정하고
무엇을 볼지 미리 계획하고
정해진 일정 안에서 계절을 소비했다.
하지만 제주에서의 첫겨울은
어디에도 서두르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이 겨울의 중심에는
화려한 풍경보다
한 송이 꽃이 있었다.
동백이었다.
제주 겨울에 동백을 본다는 건
특별한 이벤트라기보다
계절을 이해하는 방식에 가깝다.
이 꽃은 봄처럼 들뜨지도 않고
여름처럼 요란하지도 않다.
그저 겨울 한복판에서
자기 색을 낮추지 않은 채 피어난다.
붉다는 말로는 부족한 색.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온도.
동백은 제주 겨울의 태도를 닮아 있었다.
숲을 걷는 동안 아이들은 몇 걸음 앞서 있었고
나는 그 뒤를 천천히 따랐다.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배경처럼 흩어졌고
내 시선은 자연스럽게 꽃에 머물렀다.
나무 위에 매달린 붉은 꽃보다
더 오래 시선을 붙잡은 건
이미 떨어져 땅에 닿은 동백들이었다.
부서지지 않고 흩어지지 않은 채
온전히 내려앉아 있는 모습이
이상하게도 마음을 오래 흔들었다.
제주살이를 시작하며
나는 많은 것들을 내려놓겠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내려놓는 일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속도, 기준, 불안, 그리고
잘 살아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들.
동백은 그런 나에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자기 방식으로 떨어져 있었다.
그 장면 앞에서
나는 오래 서 있었다.
제주에서의 첫겨울은
나를 시험하지 않았다.
버텨보라고도 견뎌보라고도 하지 않았다.
다만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여기서는 조금 덜 애써도 된다”라고.
아이들은 동백을 보며 예쁘다고 말했지만
나는 그 말 뒤에 숨은 계절의 깊이를
조용히 받아들이고 있었다.
아이의 감상은 짧았고
나의 생각은 길어졌다.
어른이 된 이후로
겨울은 늘 넘어야 할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곳의 겨울은
머무는 법을 먼저 알려주었다.
그 중심에 동백이 있었다.
이 꽃은 겨울을 견디기 위해 피어난 게 아니라
겨울이기 때문에 피어난 것처럼 보였다.
그 사실이 지금의 나에게는 이상한 위로가 되었다.
제주에서 보내는 첫 번째 겨울.
아직 이 계절에 대해 다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하나는 분명해졌다.
이 겨울을 기억하게 만드는 건
날씨도 풍경도 아니라
그 계절을 대하는 나의 태도라는 것.
동백은 제주 겨울을 설명하는 꽃이 아니라
제주 겨울을 닮은 꽃이었다.
그리고 나는 이 섬에서의 첫겨울을
이 꽃과 함께 기억하게 될 것 같다.
화려하지 않아도 충분했던 계절,
조용했기에 더 깊이 남은 시간.
제주에서 맞은 첫겨울은
이렇게, 붉은 동백처럼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