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쓰
이야기, 거짓말, 비밀, 그리고 성장
평범한 고등학교 2학년 아이들(지우, 소리, 채운)의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들여다보면 결코 평범하지만은 않은, 비밀을 간직한 아이들의 이야기다. 끝이 있어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지우는 시작이 있어서 이야기를 좋아하는 소리에게 자신의 유일한 가족, 도마뱀 용식을 맡긴다. 집에서 나오려면 돈이 있어야 하기에 돈을 벌고자 공사장으로 일하러 간다는 비밀을 감추고, 삼촌의 게스트 하우스를 도와주러 잠시 떠나야 한다는 거짓말을 하고서. 지우의 거짓말로 지우와 소리의 이야기는 시작된다. 지우는 공사장에서 틈틈이 자신이 실제로 목격한 <내가 본 것>이라는 웹툰을 그리는데, 사실 이는 채운의 이야기이다.
채운의 아버지는 가정폭력을 일삼았고, 이야기의 시작을 끝내고 싶었던 채운은 칼을 든 아버지를 저지하려다가 찌르고 만다. 이로 인해 채운의 엄마는 채운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교도소에 간다. 이야기의 시작을 끝내고 싶었던 채운의 생각과는 달리 전혀 다른 이야기가 시작되고 만 것이다. 이로 인해 아버지는 혼수상태에 빠지고, 채운은 아버지가 깨어나 진실을 밝힐까 봐 전전긍긍하며 지낸다. 소리는 누군가의 손을 잡으면 그 사람의 죽음을 볼 수가 있다는 비밀을 가지고 있는데 자신의 능력(?)을 안 이후에 누군가의 죽음을 보고 싶지 않아서 억지로라도 펜을 쥐고 계속 그림을 그린다. 그런데 우연히 같은 반 친구인 채운의 유일한 가족, 강아지 뭉치의 손을 잡아 뭉치의 죽음을 본다. 차마 채운에게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리며 잘해주라고만 한다. 그 뒤로 머지않아 뭉치가 죽고, 채운은 소리에게 뭉치의 죽음을 어떻게 알았냐고 묻는다. 소리는 자
신의 비밀ㅡ다른 사람의 죽음을 보는 것ㅡ을 처음으로 진지하게 채운에게 털어놓는다. 채운은 자신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비밀을 감춘 채 아버지가 죽을까 봐 겁이 난다고 거짓말을 하며 소리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봐달라고 부탁한다. 채운이 무서운 이야기 속에 갇혀있다고 생각한 소리는 채운을 구하기 위해 부탁을 들어준다.
소리는 채운 아버지의 죽음을 보았지만, 채운의 간절한 눈빛을 보고 과거 아픈 엄마를 간호하던 자신과 같은 마음일 거라는 생각에 아버지는 곧 괜찮아지실 거라는 선의의 거짓말을 한다. 채운을 더 크나큰 지옥 속에 살게 할 거짓말이라는 것은 모른 채로.
채운은 아버지가 깨어나지 않길 바랐는데, 소리 역시 아픈 엄마를 보며 잠깐 나쁜 마음을 먹은 적이 있다. 그걸로 너무나 큰 죄책감을 안고 살았는데, 채운 아버지의 장례식과 용식의 죽음을 경험하며 엄마의 산소에 가서 진실을 털어놓는다. 그때 소리에게 환한 볕이 드는데 마치 엄마는 다 이해한다는 느낌이라서 감동적이었다ㅠ 때때로 자신을 미워하고 원망하며, 어쩌면 채운과 비슷하게 무서운 이야기에 갇혀 지내던 소리는 진실을 털어놓고 이해를 받으며 스스로 무서운 이야기에서 빠져나온다.
사실, 지우가 정해놓은 <내가 본 것> 끝(결말)은 모두가 죽는 것이었다. 하지만 공사장에서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마음을 바꾼다. 다 죽이는 것보다 어려운 것은 결국 그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기에. 우연히 지우의 웹툰을 본 채운은 자신의 이야기인 것을 알고 지우에게 연락한다. 지우의 웹툰 속 이야기가 끝이 나자 지우와 채운의 이야기가 새롭게 시작된다.
소리는 용식을 돌보면서 지우에게 선물로 줄 달력에 직접 그림을 그린다. 누군가의 손과 닿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리던 소리는 오랜만에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한 그림을 그리며 다시 그림에 재미를 붙이기 시작한다. 채운은 아버지의 장례식장에서 소리에게 아버지의 죽음을 봐달라던 일을 사과하고, 더 이상 손으로 누군가의 죽음을 보지 말고 그림을 그리는 데에만 쓰면 좋겠다고 말한다. 친하지도 않았던 친구들의 부탁을 들어주며 소리는 옛날처럼 그림 그리는 행복을 깨닫는다. 각자의 어둠 속에 갇혀있던 아이들은 조금씩 서로를 도우며 빛을 향해 나아가기 시작한다.
"숱한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그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님을 깨닫는 이야기. 그래도 괜찮음을 알려주는 이야기에 더 마음이 기울었다. 떠나기, 변하기, 돌아오기, 그리고 그사이 벌어지는 여러 성장들... 아주 긴 시간이 지나서야 당시 자기 안의 무언가가 미세히 변했음을 깨닫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 개를 참 잘 그렸네. (<- 개가 아닌 새를 그림)
책 초반에 이 말에 대답을 하지 못했던 지우는,
- 그렇죠? 개가 참 잘생겼죠? 그러니 이리 와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 이 개가 얼마나 잘생겼는지.
책 후반에는 똑같은 말을 들었음에도 시무룩해하지 않고 능청스럽게 받아칠 만큼 성장했다. 누군가 다가와 뺨을 때린다고 해도, 종이가 찢어지고 연필을 빼앗는다고 해도, 묵묵히 당하고만 있지 않을 정도로 아이는 자랐다.
피는 물보다 진할까?
엄마의 실족사 이후,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은 선호가 자신과 같이 살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지우는 쪽지 한 장만 두고 집을 떠난다. 하지만 선호는 지우에게 잘 지내고 있는 것인지 계속 문자로 안부를 묻는다. 사랑하던 사람은 떠났지만 그 사람의 아들이라도 지키고 싶었기에.
"나를 떠나지 말고, 나를 버려라"
아버지에게 맞으며 자랐던 선호이지만, 그는 그의 아버지와 다르게 책임감 있는 어른으로 자랐다. 예기치 못한 사고로 떠나버린 지우의 엄마처럼 지우도 말없이 떠나버렸을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었을 그의 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다. 그렇다고 해서 어떻게 자신을 버리라는 말을 할 수가 있지... 이용할 만큼 이용하고 쓸모가 다했을 때 버려지는 거잖아요... 자신도 아버지에게 버림받았으면서 어떻게 본인을 버리라는 말을 해... 왜 저를 울리시나요 선호 씨...ㅠㅠ 지우는 엄마가 실족사가 아닌 자살이라고 생각했고,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해 원망했으니 아마도 지우는 절대 선호를 버리지 않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를 의지하며 잘 살아가겠지.
이 책 속의 주인공을 보며 JTBC ‘조립식 가족’이 생각났다. 주인공들이 조립식 가족의 주인공들과 비슷한 상황ㅡ엄마가 아파서 일찍 돌아가신 ‘소리’와 ‘주원(정채연)’, 이혼 가정인 ‘지우’와 ‘산하(황인엽)’, 엄마가 감옥에 있어 친척/지인의 집에서 살고 있는 ‘채운’과 ‘해준(배현성)’ㅡ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상황은 비슷하지만, 전개는 다르다. 서로 존재만 아는 책 속의 주인공들과 달리,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매일 같이 밥도 먹고, 학교도 가고, 집도 허물없이 드나들고, K-드라마에서는 빠질 수 없는 ♥︎러브라인♥︎도 있기 때문에! 아주 몹시 내 취향임^_^ 아무튼 책 속의 등장인물 지우&선호의 관계성을 보며 드라마 속의 등장인물 해준&정재가 생각났다. 정재와 해준의 엄마는 소개팅으로 딱 한번 만난 사이였는데, 해준 엄마에게 큰일이 생겨 해준이 엄마와 떨어져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해준을 딱하게 여긴 정재는 해준 엄마가 돌아올 때까지 함께 살기로 했는데 해준 엄마는 금방 돌아오지 못했고.. 그렇게 정재는 10년이란 시간 동안 해준을 친아들처럼 키웠다. 그런데 어이없게도 난데없이 해준 엄마가 아닌 해준의 친부가 등장한다. 자신이 돈은 많은데 핏줄이 없으니 데려가겠다고. 정재 아빠랑 살 테니까 돈만 주고 가십쇼!!!...는 내 마인드고, 해준은 돈도 친부도 필요 없으니까 가라고 한다. 근데 시청자들도 댓글로 돈은 받으라고 하는 게 웃겼음ㅋㅋ
"아빠는 안 갔으면 좋겠어. 너 아직 고등학생이고 적어도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는 너 밥도 해줄 수 있고 또, 네 교복도 다리고 또... 아빠가 조금 더 그거 하고 싶어서.."_ JTBC <조립식 가족>
해준은 정재가 친부에게 가라고 할까 봐 정재에게 친부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었는데 해준의 친부로부터 직접 이야기를 들은 정재는 해준에게 완전 반대의 이야기를 한다. 네가 친부에게 가고 싶으면 가도 되지만, 안 갔으면 좋겠다고...ㅠㅜㅠ (이 장면 눈물 줄 줄이니까 꼭 봐주세요.. 최원영 연기 너무 잘함ㅠㅠ) 낳은 정만큼 기른 정도 소중하지..! 엄마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고 사는 해준은 정재에게도 버림받을까 봐 떨었는데 정재의 말에 아이처럼 눈물을 흘린다. 핏줄이든 아니든 서로에게 너무나 깊은 존재로 자리 잡아서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된 두 사람. 나중에 정재는 해준 엄마와 결혼해서 호적으로 묶이는 찐 가족이 되긴 함. 역시나 너무나 드라마다~
하지만, 정반대의 가족도 있다. 핏줄이지만, 핏줄만도 못한. 책 속의 채운은 친아버지에게 하마터면 죽을 뻔했다. 드라마 속의 산하는 엄마에게 끊임없이 가스라이팅을 당한다. 네가 떠나면 엄마는 죽는다면서. 이혼하면서 산하에게 큰 상처를 주고, 떠나버렸으면서!! 동생처럼 엄마를 잃을 수 없어 다시 엄마의 곁으로 돌아갔지만, 아빠와 해동 식구들과 살 때와는 달리 엄마와 함께 살면서 산하는 점점 웃음을 잃어갔다. 아낌없이 사랑을 주어도 부족한 부모가 채운이와 산하의 행복을 가로막는 인물이었다. 아이들에게 부모가 가장 큰 가해자였다.
아직까지 대한민국은 혈연, 학연, 지연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중에 가장 끊기 힘든 건 바로 혈연이다. 말로는 연 끊고 살자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그것을 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래도 나를 낳아준 부모이기에 마지막 기회를 무수하게 주기도 하고, 부모와 연을 끊고 사는 사람을 보면 마치 크나큰 죄를 지은 사람처럼 안 좋은 시선을 보내기도 한다. 그 사람의 깊은 사정은 잘 알지도 못하면서. 대략적으로 안다고 하더라도 '그래도 엄마잖아~ 그래도 아빠잖아~'하며 그 사람에게 또 한 번의 상처를 입힌다.
"가족과 꼭 잘 지내지 않아도 돼. 너는 너의 삶을 살아. 나도 그럴게."
채운의 엄마가 채운에게 울며 건넨 간절한 소망. 채운의 엄마는 채운이 아버지를 죽였다는 죄책감에서 살아가지 않도록 자신의 부도덕한 행위까지 고백한다. 너는 나를 구하고, 나는 너를 구했으니 우린 서로를 구한 것이니 모두 다 괜찮다고. 가족이라고 하여 모두 품을 수는 없다.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가족이라면, 나의 행복을 가로막는 게 가족이라면, 아무리 핏줄로 엮였어도 끊어내는 게 맞다.
참 아이러니하다. 어떤 가족은 핏줄이 자신을 위협하고, 어떤 가족은 핏줄이 아닌데도 자신과 함께 살자고 하는 것이. 누군가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부모님의 사랑이 누군가에겐 한없이 갈망해야 하는 슬픔이라는 것이.
어쩌면, 어른들의 거짓말
소리는 아빠와 함께 엄마의 산소에 간다. 아빠에게 먼저 내려가 있으라고 한 후, 사실은 엄마의 손을 잡았을 때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바랄 때도 있었다고(죽었으면 좋겠다고) 고백한다. 다시 집으로 돌아가면서 소리의 아빠는 갑자기 소리에게 엄마가 조력사를 원한적이 있었다고 말한다. 당연히 엄마가 살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던 소리에게는 상당히 큰 충격이었다. 항암이 너무 힘들어서 본인도 삶을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었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지우는 엄마가 실족사가 아닌 자살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지우의 마음을 알았
는 지 선호는 지우에게 며칠 전 경찰에게서 실족사가 맞다고 연락이 왔다고 말한다. 지우 엄마가 ‘살려달라’고 말하는 걸 들은 목격자가 나타났다고.. 그 말을 들은 지우는 눈물을 흘리면서 안도감을 느낀다. 자신은 버림받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소리 아빠와 선호의 말이 진실일 수도 있지만, 어쩌면 아이들의 마음을 편하게 해 주기 위한 어른들의 선의의 거짓말일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리의 엄마와 지우의 엄마가 죽은 지 시간이 꽤 흐른 시점에 이 이야기를 털어놨기 때문에. 아이들이 본인들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했던 것처럼 어른들도 아이들을 지키기 위해 거짓말을 한 건 아닐지.. 어렸을 때부터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것이라고 배웠지만, 어른들보다 더 쉽게 흔들리는 아이들이기에 그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면 때론 거짓말이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여기서
거짓말은 선의의 거짓말임! 나쁜 거짓말 xx절대 안 됨xx) 그것이 그들에게 위로가 되어 살아갈 힘을 얻는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이야기는 계속된다
나는 열린 결말과 새드엔딩을 좋아하지 않는다. 살기 팍팍한 세상에 가상의 이야기라도 명확하고 행복하게 결론이 나면 기분이 좋으니까. 그런데 이 책을 다 읽고 난 뒤엔 물음표가 가득했다. 지우의 웹툰, <내가 본 것>이 자신의 이야기라는 것을 안 채운은 지우에게 연락을 하고, 소리 역시 지우에게 줄 것이 있다며 연락을 하는데, 지우가 이 두 사람의 문자를 확인하며 책은 끝이 난다. 당연히 이야기가 더 있어야 하는 상황에서 끝나버리고 만 것이다..!! 처음엔 ‘아니 그래서 채운이와 지우의 이야기는 앞으로 어떻게 되는 건데????
채운이는 대체 뭘 물어보고 지우는 뭐라고 답할 건데??? 다음 편이 나오려는 건가???’ 머릿속은 온통 물음표로 가득 찼다. 며칠 더 생각해 본 결과, 아이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므로 함부로 그들의 이야기를 끝내지 않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우리가 죽어야만 모든 이야기가 비로소 끝이 나는 것처럼 책 속의 아이들도 책 속에 아직 살아있으니 그들의 이야기는 계속될 것이라고..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계속 이어지기 때문에 이 이야기가 끝나더라도 그에 파생되는 사건은 또 발생하니 굳이 끝을 내지 않겠으니 상상에 맡기겠다, 정도? 열린 결말을 싫어하는 사람이지만, 작가의 의도가 이렇다면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들이 어떻게 또 그 이야기를 풀어나갈지 궁금하지만, 상상에 맡기는 걸로!
"너의 베스트 데이는 노멀 데이구나"
삶의 무게가 버거워 아이들은 또다시 무서운 이야기 속에 갇힐 수도 있겠지만, 지금처럼 잘 극복하고 성장해 나가기를. 그리하여 모두 노멀 데이로 살아가기를. 1
1 아 독후감 주제에 겁나 슬픈데요.... (움) 읽고보니 조립식가족 너무 생각나고요 ㅠㅠ 선호와
정재의 모습이 너무나도 겹쳐보이고... 또... 산하 엄마랑 채운이 아빠랑 겁나 겹쳐보이네유... 애
들은 잘못한게 없어... 다 어른들 잘못이야.....-채쓰 2024.11.28. 1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