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이 이끄는 곳으로 - 백희성

채쓰

by Poison After Feeling

건축가가 쓴 소설. 나는 건축을 잘 모른다. 건축과 관련된 적도 없었고 건축에 관심을 가졌던 적도 없다. 언젠가 한 번은 건축 전시를 보러 갔는데 열심히 옆에서 설명을 해주는데도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그래서 이 소설을 읽을 때도 작가가 의도한 건축학적인 경외심을 느끼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올해의 책으로는 이 소설을 꼽고 싶다.


기억을 담은 건축


소설의 주인공 뤼미에르는 파리에 사는 건축가다. 자신을 위한 건축을 하기 위해 부동산을 전전하다 시테섬에서 웅장하고 아름답지만 오래된 집 하나를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집을 계약하기 위해선 집주인인 피터를 만나야 했고 피터를 만나러 병원에 갔을 때는 피터가 제시한 문제를 풀어야 했다. 반전인 점이 하나 있다면, 이 모든 문제는 피터 본인이 아닌 피터의 아버지 프랑스와가 피터에게 낸 것이었다. 하지만 피터는 병약하고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자신을 대신해 문제를 풀 사람을 찾았고 네 번의 시도 끝에 뤼미에르와 인연이 닿게 된 것이다. 프랑스와는 병원 곳곳에 힌트를 숨겨놓았다. 자신의 아들인 피터가 문제를 풀어내고 자신이 남겨놓은 이야기들을 찾고 이해해 주길 바랐던 것이다.


뤼미에르가 퀴즈를 풀어내는 방식은 건축물을 이해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건축물 내의 한 지점에서 바깥을 바라보거나 벽을 두드려보거나 바람이 이동하는 방향 같은 것들을 이용한다. 건축에 문외한인 나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친절하게 설명해 주어서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프랑스와가 병원에 남긴 수수께끼보다 프랑스와와 아나톨이 시테섬의 집에 남긴 삶의 흔적들이 훨씬 재미있게 느껴졌다. 왜 그런가 생각을 해보니 아마도 건축물을 하나의 미적 공간이 아닌 기억, 추억과 같은 것들이 담긴 곳으로 만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나톨과 아이들의 기억, 아나톨과 프랑스와의 기억이 집 곳곳에 담겨 있어서.


세월이 지나 집은 낡았지만, 그 추억들은 여전히 푸르러서. 집 안 곳곳에 남겨져 있는 사랑이 여전히 따뜻해서. 앞서 묘사되었던 병원이나 수도원 같은 건물들과는 달리 ‘집‘은 완전하게 사적인 공간이다. 그만큼 집에 머무는 이의 사적인 이야기가 많이 담겨있다. 그래서 프랑스와가 사랑했던 아나톨과 피터에 대한 사랑이 집에 남겨진 흔적 덕분에 더욱 깊이 느껴졌나 보다.


프랑스와가 쓴 일기에는 아나톨과의 추억이 가득하지만 그가 아나톨을 위해 집을 어떻게 개조했는지 왜 그런 방식을 택했는지는 적혀있지 않다. 이 부분도 좋았던 것이, 물론 뤼미에르가 나름의 해석을 붙여 독자에게 설명을 해주지만, 프랑스와는 아마도 피터가 직접 느끼면서 자신의 추억과 애정을 상기시켜 주길 바랐던 것 같았기 때문이다. 말보다 더 깊은 방식으로 아들에 대한 사랑을 전달한 게 아닐까. 프랑스와의 낡은 집은 아빠가 아들에게 남긴 오래된 편지 같다.


집은 자신의 생을 사는 동안 빌려 쓰는 공간이다. 누구의 것도 아니지만 동시에 모두의 것이기도 하다. 그 공간에 수백 년에 걸쳐 여러 사람의 흔적이 남는다. 그 흔적이 차곡차곡 쌓여 그 집의 역사가 된다. 집은, 우리의 모든 것을 기억해 준다.


붉은빛과 사랑


책을 읽는 내내 들었던 생각이 ’이 책은 종이로 읽는 맛이 있는 책이다.‘라는 생각이었다. 책장은 한 장 한 장이 모두 붉게 물들어있다. 처음에는 단순히 미학적인 의도인 줄 알았는데, 책 내용 전반에 붉은빛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을 보고 의도한 거구나 하고 깨달았다. 제일 놀랐던 부분은 편지 초반의 내용이 마치 잉크가 닳은 것처럼 희미하게 되어있던 것이었다. 섬세하고 다정한 내용만큼 따뜻한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앞서 말했듯, 이 책은 책 내용 전반에 붉은색과 빛이 강조된다. 붉은 계단, 빛과 거울 반사, 붉은 전등… 왜 붉은색일까? 이 문장으로 미루어보았을 때 작가는 붉은빛을 따뜻한 위로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따뜻하고 붉은빛이 나를 위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주저앉은 나를 다시 일어나게끔 위로하는 이 기묘하고 붉은 계단은, 아나톨을 위한 것이 아니라 프랑스와 자신 혹은 그의 아들 피터를 위한 것은 아니었을까? “


소설 내에 태양에서 오는 빛을 이용한 건물이 많고 또 그 빛으로 해결하는 문제들이 많기 때문에 위에 말한 붉은빛이 일출이나 일몰 때 나타는 석양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나도 뜨고 지는 햇빛을 쬐고 있으면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새해에 뜨는 해를 보는 것도 같은 이치가 아닐까. 올해는 다 괜찮을 거라고,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는 붉은빛의 위로를 받기 위해서 눈도 채 뜨지 못한 얼굴로 해를 바라보는 것은 아닐까.


건축가가 조금 부족한 공간을 만들면 그곳에 사는 사람이 나머지를 추억과 사랑으로 채운다는 겁니다. 그때 비로소 건축이 완성됩니다.


아나톨은 화재 사고로 손가락이 붙어있고 허리가 굽었으며 나중에는 시력까지 잃게 되었다. 그런 아나톨을 위해 프랑스와는 낮은 난간을 만들고 손을 쥐어오르는 난간 아래쪽에 홈을 파서 보이지 않아도 다치지 않게끔 그녀만의 지도를 만들어줬다. 또, 아이를 잃은 상실감에 슬퍼하는 그녀를 보고 아이를 기억할 수 있게끔 집을 개조해 나갔다. 나는 곰곰이 생각했다. 우리가 여러 집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의 편의를 위해 집을 바꿔나간 적이 있나? (물론 이건 ‘내 집’이 없기 때문에 불가능한 걸 수도 있다. 한국 집값 미쳤습니까?) 장애인들을 위한 경사로도 법으로 정해지고 나서야 만들기 시작했고, 엘리베이터의 점자들도 비교적 최근에 도입되기 시작했으며 아이들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를 수 있게끔 도와주는 발판도 이제는 보기 어려워졌다. 심지어 얼마 전에 인스타를 보다가 점자 블록을 노란색이 아닌 회색으로 바꾸는 시공을 계획하는 지자체들을 보고서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건축이건 조경이건 오로지 미관만을 위해서 만들어지는 것들이 어떤 따뜻함과 다정함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일반 사업자도 아니고 국가를 위해서 일한다는 사람들의 머리에서 나온 게 고작 그따위라는 게 무지하게 화가 났다. 아마도 작가는 건축이 오로지 미학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려주고 싶었던 것 같다. 건축물 곳곳에 숨겨진 배려와 섬세함, 다정함이 건축물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고도.


가볍게 읽기 시작했다가 뭉근한 마음으로 내려놓은 책이다. 백희성이 자신이 가장 잘하고 좋아하는 건축을 이용해서 써 내려간 사랑이 어째서인지 아주 오랫동안 마음에 맴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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