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끼숲 - 천선란

채쓰

by Poison After Feeling

영화 <소방관>을 봤다. 공교롭게도 내가 그 영화를 본 날은 무안공항에서 사고가 일어난 날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지 못했고 그래서인지 영화가 더 아프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을 때 그날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요구조자를 살리고자 했던 소방관의 죽음이, 여행의 끝에서 허무하게 맞이해 버린 사람들의 죽음이, 학교폭력으로 스스로를 놓아버린 피해자들의 죽음이.


작가는 구하는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고 했다. 하지만 구한다는 것은 일이 일어나기 전에 그것을 막는 것인데 우리는 언제나 일이 일어난 뒤에야 그곳이 위험했음을, 우리가 위태로웠음을, 세상이 엉망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고 했다. 항상 먼저 간 이들이 남은 자들을 구한다. 상실은 구원을 동반하고 슬픔은 힘을 안겨준다. 아픈

사실은 고통은 남겨진 자의 몫이라는 것이다.


첫사랑: 모험의 시작


마르코는 지하 세계에서 연구소 ‘빅터’의 경비 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우연히 만난 노랫소리를 따라간 좁은 공간(세탁실)에서 은희를 처음 만났다. 마르코는 은희에게 모순적인 감정을 느꼈다. 후련함과 단단해짐이 그것이다. 마르코는 은희에 대해 이야기하면 할수록 마음에 있던 은희가 빠져나감과 동시에 그 자리에 더 단단한

은희가 들어차는 느낌을 받았다. 마르코는 조명이 은희의 얼굴에 내려앉았을 뿐인데 은희가 밤하늘의 은하수만큼이나 반짝인다고 생각했다. 은희가 노래를 부를 때에는 은희의 목소리가 꼭 잘게 부서진, 빛나는 별 같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도망친 지하 세계에서도 언제든 하늘을 날고 바다를 헤엄칠 수 있을 것 같았다. 마르코가

도망이 아니라 모험을 택할 수 있었던 용기는 은희에게서부터 비롯됐다.


임금 협상 문제로 파업에 참여 중인 자신의 선배 커커스를 우연히 만나 파업에 힘을 실어 달라는 요청을 들었을 때 마르코는 선뜻 서명하지 못했다. 마르코는 일한 지 일 년도 채 되지 않았고, 당장 굶지 않기 위한 것보다 큰 것이 무엇인지, 그런 게 있기나 한 건지 의문이었다. 별일 일어나지 않고 있으니 잘 해결되고 있는 것이라고 믿고 싶었다. 그러나 은희가 마르코가 비상계단에서 만나 모험했던 날, 마르코는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파업에 동의한다는 서명을 했다. 마음을 외면하는 것이 도망이라는 걸, 은희와 함께하는 한 자신은 도망이 아니라 모험을 하고 싶다는 걸 깨달았던 것일까. 아니면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 은희에게 함께 모험을 하자고 힘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을까.


마르코의 응원이 무색하게 은희는 사라졌다. 파업을 끝내고 돌아온 자신의 선배 커커스도 함께. 은희는 밝고 명랑했지만, 치매를 앓고 있는 엄마를 모시고 살았다. 그래서 은희는 늘 돈이 필요했다. 은희의 엄마가 사라져 버린 폭포를 찾아 떠난 날, 은희도 함께 사라졌다. 은희와 커커스가 사라지고 회사는 약속했던 임금 인상을

뒤로하고 부도를 냈다. 새로운 이름으로 재설립된 회사는 그들을 기꺼이 전부 고용하겠지만, 이전회사와 약속했던 임금 인상은 없을 것이라 못 박았다. 새 이사장과 이전 이사장이 가족이나 친척이 라,는 소문이 돌았지만 진실은 알 수가 없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고 믿고 싶었던 마르코는 일이 모두 일어난 뒤에도 여전히 믿는 것밖엔 할 수 없었다. 그렇게 며칠이나 지났을까. 마르코는 우연히 은희의 목소리를 들었다. 친구 톨가의 패드에서. 은희의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는 아바타를 봤다.


“목소리를 아바타한테 파는 거야? 도대체 그런 짓들을 왜 해? 왜 팔고, 왜 사는 거야?” (32쪽)
“돈이 필요해. 이제는 정말.” (87쪽)


은희의 목소리를 가진 아바타의 노래가 끝나고도 마르코는 한참을 울었다. 현실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커커스가 겪었던 문제를 마르코도 똑같이 겪게 될 것이다. 치매를 앓는 부모를 가진 아이들은 모두 은희와 비슷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은희와 커커스의 실종이, 그로 인해 마르코가 겪게 될 슬픔이

모두 의미 없는 것은 아니다. 일련의 주장이 쌓여 폭발할 때 세상은 조금씩 움직인다. 그것이 옳은 방향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지만 말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커커스의 주장은 마침내 이루어질 것이다. 은희와 같은 상황에 처한 자들도 구원받을 방법이 생길 것이다. 그리고 그 결말에는 커커스와 은희의 몫이 분명히 존재한다. 마르코 또한 이전과는 다른 태도로 삶을 살아나가지 않을까. 적어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으니 괜찮을 거라는 안일한 태도에서는 벗어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슬픔은 나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가 되어주기도 한다.


첫울음: 늪에서 삶으로


의조는 태어나지 못한 아이다. 정확히는 존재해서는 안 되는 아이. 지하세계는 모든 것을 철저히 계획하고 통제한다. 이곳에서 모든 부부는 출산 계획과 자산 규모를 보고하고 그렇게 태어날 아이의 숫자가 정해진다. 의조는 유난히 작은 쌍둥이 형제 중 하나였다. 형편이 어려웠던 의조의 부모님은 아이를 낳기 전, 검사를 받지 못해 유난히 작은 둘을 유난히 큰 하나로 착각해 낳았다. 의조와 의주의생과 사는 가위바위보로 결정됐다. 엄마가 이기면 의조가, 아빠가 이기면 의주가. 그렇게 의주는 살았고 의조는 죽었다.


닫힌 세계에서 등록되지 못한 자가 이동하는 방법은 단 하나였다. 배관. 지하 세계는 긴 배관으로 모두 연결되어 있는데 그곳에는 칩을 인식하는 장치도, 감시하는 카메라도 없다. 의조의 하루는 배관에 올라타는 것으로 시작해 배관에서 내려오는 것으로 끝났으니까. 평소처럼 배관을 기어 다니던 어느 날, 의조는 치유키를 만났다. 의주를 사랑하는, 의주의 친구, 치유키. 의조는 치유키를 만나 글을 배웠다.


“글을 알면 뭐가 생기는지 알아? 싸우는 힘” (124쪽)
“내 생각이 글자로 옮겨지다니. 엄청난 일이야. 이건 어떤 세상을 옮기는 일이라고.” (107쪽)


이 세계의 블랙홀인 환풍구 속에서 웜홀 같은 배관 통로를 기어가다 냉동창고에 떨어져 죽을 뻔한 경험을 가진 의조는 치유키에게 글을 배우자마자 웜홀의 이정표를 만들었다. 자신을 위한 이정표를 쓰면서 의조는 행복했다. 그리고 자신이 쓴 이정표에 누군가 적은 ‘고마워요.’를 발견했을 때 첫울음을 터트렸다. 그토록 답답하고 억울해도 나오지 않던 울음을 몸을 부르르 떨며 토해냈다. 그 울음은 의조의 삶의 시작을 알리는 울음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울음을 터트리듯 말이다. 어쩌면 그 ‘고마워요.‘는 의조의 삶 전체를 위로하는 문장이 아니었을까. 드라마 <또오해영>의 대사처럼 어딘가 나와 같은 상처를 가진 사람이 있다는 건 든든한 위로가 되어주기도 하니까. 내가 못나서, 모자라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게 아니라고.


의조는 이제 싸울 수 있다고 했다.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최선을 다해 나아갈 거라고 했다. 배관 통로는 더 이상 의조에게 벗어날 수 있는 늪이 아니었다. 삶이었다. 그리고 의조는 배관 속 세상이 자신의 세상의 전부라고 해도, 그 삶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한 것이다.


(의조언니 개 멋있어요 화이팅)


첫 모험: 죽음의 구원


유오가 죽은 건 사고였다. 다만, 막을 수 있었다는 점이 소마를 더욱 아프게 했다. 통신국에서 일하는 소마는 유오가 일하는 건설 회사의 무전을 훔쳐 들었다. 유오에게 무슨 일이 생길까 늘 불안했기 때문이다. 그날 소마는 붕괴 조짐을 목격했다는 통화를 엿들었다. 그렇지만 그게 유오에게 일어나지는 않을 거라고 믿었다. 신고를 할까 고민하다 끝끝내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 펑, 하는 굉음이 소마의 귀에 들렸고 유오가 깔렸다. 유오가 죽고 소마는 계속 무기력과 우울 속으로 침전했다. 소마를 짓누르는 것은 비단 유오를 잃은 슬픔뿐만이 아니었다. 자신이 유오를 죽게 만들었다는 죄책감도 함께였다. 소마는 자꾸만 그날로 돌아간다. 그때 신고를 했더라면, 불길함의 징조를 무시하지 않았다면.


계속해서 가라앉는 소마를 끄집어 올린 것은 친구들이었다. 마르코, 치유키, 의주, 톨가 그리고 소마와 유오. 그들은 유대감이 증발된 지하세계에서도 서로를 연대했다. 유오는 건설 현장에서 일하면서 클론 제작 동의서에 서명했다. 사고를 예방할 수 없으니 사후대책에 힘을 쓰겠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들은 곧 폐기될 유오

의 클론을 구하자고 말했다. 그것은 유오의 기억을 가지고 있지도, 유오처럼 웃지도 못했지만 유오의 클론을 구해 유오가 가고 싶어 했던 온실에 데려가자고 말했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소마도 그렇게 해야만 비로소 유오를 향한 자신들의 미련이 정리될 수 있다는 것에 동의했을 것이다. 그건 소마를 구하는 일이기도 했다.


소마가 유오를 데리고 일 층의 온실로 향하는 동안 친구들은 하나 둘 사라졌다. 마지막까지 함께하던 치유키와도 빨간 레이저가 가득한 모습으로 마지막 인사를 해야 했다. 그리고 마침내 온실로 도착했을 때 둘을 맞이한 것은 허무하게도 전부 죽어있는 식물, 그리고 고사목처럼 마른 지하도시의 위원장이었다. 그녀는 유별난 게 싫다고 했다. 소마처럼 죽음에 유별나게 슬퍼하는 것도, 커커스처럼 일에 유별나게 힘들어하는 것도.


“다 유별나게 억울하고 슬프면 도대체 일은 누가 해? 언제 일을 하느냐고!” (231쪽)
“이곳은 내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나는 여전히 그 애를 잃은 슬픔이 유별나다. 분하고 억울하다. 슬픔이 유별나도 되는 곳으로 가고 싶다.” (233쪽)


결국 소마와 유오의 클론이 갈 수 있는 곳은 지상밖엔 없었다. 뭐가 있을지 모르는 그곳. 소마의 모험이 비로소 시작되었다. 온실까지 도착하자 지상으로 가는 것은 쉬웠다. 지상에는 소문처럼 사람을 노리는 짐승도, 마시면 죽는 가스도, 모든 걸 쓸어가는 폭풍도 없었다. 축 처진 유오의 클론을 업고 숲에 가는 동안 소마는 쏟아지는 졸음을 내쫓느라 버거워하면서도 꾸역꾸역 숲으로 향한다.


기어코 숲에 도착해 죽은 듯이 잠을 자던 소마는 자신을 부르는 유오의 클론의 목소리에 깬다. 그리고 유오의 클론 - 유오의 껍데기만 가진 그것을 - 유오로 부르지 못하던 소마는 불쑥 나온 유오와의 기억에 소리친다. “유오!” 이끼가 그들의 몸을 덮고 악취가 코를 찌르는 그곳에서 유오와 소마는 서로를 품에 안은 채 깊은

잠에 빠질 준비를 한다.


“식물은 죽지 않아, 소마. 끊임없이 순환하며 새 모습으로 계속 재탄생해. 하지만 그건 식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이 행성의 시스템이야. 모든 생명은 탄생과 죽음을 반복하고 그 과정에서 자신의 삶을 씨앗처럼 뿌린다는 걸, 비록 나는 없더라고 내 삶은 이 행성 전체에 퍼져 다른 생명을 꽃피우게 한다는 걸 잊지 마.”(239쪽)


소마와 유오, 그리고 그들의 친구들 모두 죽었을 것이다. 몇몇은 신체적 죽음을 갖지 못하고 ‘정신재활원’이라는 곳에 끌려가 영혼을 죽임 당했을 수도 있다. 통제되지 않는 인간을 없었던 존재로 만드는 것은 닫힌 세계에서 아주 흔하고 쉬운 일일 테니까. 유오의 말은, 그러니까 소마가 들은 유오의 환청은 소마가 모두에게 말하고 싶은 유언이다. 우리의 죽음이 절대 헛된 것은 아닐 것이라고. 이 죽음들이 쌓여 분명 이 세계는 변화할 거라고. 그건 소마의 예언일 수도, 믿고 싶은 환상일 수도 있겠다.


열린 세계와 닫힌 세계


소설 속 배경은 지하 세계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관찰되는 닫힌세계. 나는 지상 세계에 살고 있다. 규칙과 규범이 존재하지만 나의 모든 것이 통제되고 관찰되진 않는 세계에서 살고 있다. 그런데도 나는 책을 읽는 내내 소설 속 인물들에 상당히 이입할 수밖에 없었다. 분명히 그들과 나 사이에 공유할 수 있는 환경이 존재하는 것

이다. 닫힌 세계에서는 도시의 유지를 위해 모두가 삶의 반을 노동에 쏟는다. 삶을 위해, 삶을 버리는 것이다. 노동이라는 쳇바퀴를 멈출 수 있는 수단은 죽음뿐이다. 죽음이 비로소 자유를 이끌어 내준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살기 위해 일을 하는 것인지 일하기 위해 사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로 일과 삶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태어나지 않았다면 이렇게 치열하게 살지 않아도 되었을 텐데라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억울할 것이 아니다. 태어나버린 이상 노동은 누구에게나 필수적이다. 인간뿐만 아니라 개미나 호랑이 같은 것들로 태어났어도 마찬가지다. 살기 위해 먹고 먹기 위해 사냥을 하고 내일을 위해 잠을 잔다. 슬픔과 기쁨과 아픔이 곧이곧대로 존중받거나 당연하게 여겨지지 못하고 늘 이유를 설명해야 하며, 열심히 이유를 설명해도 돌아오는 대답이 따뜻하지만은 않다. 하늘이 흙으로 덮이지 않았다고 해서 숲이 있다고 해서 지상의 공기를 머금으며 산다고 해서 ‘열린 세계’라고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노동은 이성으로 한다. 삶은 노동하기 위해 존재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성뿐만 아니라 감정의 영역도 분명히 존재한다. 우리는 그걸 자주 잊는다. 그 망각 때문에 키커스는 파업을 했고 은희는 엄마를 보살피기 위해 목소리를 팔았으며 의조는 세상에 태어나지 못했고 유오는 붕괴에 휘말려 목숨을 잃었다. 슬픔이 유별나도 되

는 곳으로 가고 싶다는 소마의 말은 그들의 세상이 자신들의 감정을 조금만 들여다 봐주었으면 좋겠다는 말이었을 거다. 파업을 하는 이유를, 목소리를 파는 이들의 이야기를, 태어나지 못한 아이의 울음을, 사고의 전조 현상을 보고하는 목소리를 들어달라는 말. 여기에서도 비슷한 일들이 한국을 비롯한 세계 곳곳에서 여전히 일

어나고 있다. 그런 생각을 하다 문득 이 책은 구원이 아니라 응원 같다는 생각을 했다. 닫힌 세계에서도 묵묵히 투항하던 그들을 그리고 여기에서도 열렬히 투쟁하고 있을 누군가를 응원하는 이야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귀하고 특별하진 않아도 어디에서나 멸종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이끼가 숲 전체를 복원시키기도 하듯, 별

거 아닌 발악처럼 보일 수도 있는 그들의 연대와 투항이 세계를 구할 수도 있다고 말이다.


종현이 세상을 떠나고 아이유가 어느 시상식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슬픈 감정을 충분히 느끼고 보내주지 못하는 상황이 안타깝고 더 슬픕니다. 기쁠 때 기쁘고 슬플 때 울고 배고프면 먹고 아프면 눈물 떨어지고 그런 자연스러운 일들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말이 떠올랐다. 당연한 것들을 너무나도 까맣게 잊고 산 건 아닐까? 아파도 슬퍼도 내색하지 않는 것이 사회적인 사람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그런 자연스러운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여겨질 만큼 말이다. 아프면 쉬고 슬프면 울고 기쁘면 웃고 위험하면 조심하고. 그런 당연한 것들이 더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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