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쓰
인생은 살아가면서 탐구하는 것!
시장에서 내복을 팔고 있는 억척스러운 어머니와 행방불명 상태로 떠돌다 가끔씩 귀가하는 아버지, 조폭의 보스가 인생의 꿈인 남동생을 가족으로 둔 안진진. 어머니와 일란성쌍둥이인 이모는 부유하지만 지루한 삶에 지쳐 있고, 가난한 어머니는 처리해야 할 불행들이 많아 지루할 틈이 없다. 안진진은 사뭇 다른 어머니와 이모의 삶을 바라보며 모순투성이인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 고민하기 시작하는데….
필연적인 반대
행복과 불행, 삶과 죽음, 정신과 육체, 풍요와 빈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소설. 안진진이라는 스물다섯의 여성과 그 주변 인물들의 삶과 그 속의 모순에 대해 그리고 있다. (소설을 매우 흥미롭게 읽었기에, 결말을 보지 않고 소설을 즐겼으면 하는 마음에서 자세한 줄거리는 생략한다.) 안진진은 가난하다. 술만 먹으면 폭력을 행사하고 걸핏하면 집을 나가는 아버지, 매번 아버지에게 맞으면서도 굴하지 않고 장사를 하며 생계를 이어나가는 어머니, 그리고 조폭이 되고 싶은 동생. 상상만 해도 눈살이 절로 찌푸려질 테다. 그 가정 속에서 안진진은 불행하다. 스스로 자신을 불행하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소설의 말미에는 그 불행이 자신의 인생의 부피를 늘려주었으며 더 다채로운 행복을 약속한다고 말한다. 단조로운 삶은 단조로운 행복만을 의미한다면서 말이다. 게다가 아들은 교도소에, 남편은 중풍에 치매까지 앓게 되었음에도 안진진의 어머니는 행복하고, 부유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고 있으며 다정한 남편과 똑똑한 아이들을 가진 안진진의 이모는 스스로가 불행하다 여기며 언니의 삶을 동경한다. 누군가의 지옥이 다른 누구에게는 천국이 되는 것이다. 삶이 얼마나 연속적인 모순인
지. 소설이 끝날 때까지 어느 하나 빼놓을 이야기가 없다.
사실 모순이라는 말은 어쩌면 모든 언어에 필연적으로 존재할테다. 결핍은 만족에서 만들어지지만 동시에 만족도 결핍에서 만들어진다. 반대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만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안진진의 이모는 언니의 삶-빈곤하고 나약하지만 자유롭고 낙천적인-이 있었기에 부유하고 평안한 자신을 지옥에 가둘 수 있었다. 안진진은 유복하고 평탄한 주리의 삶이 있었기에 불행할 수 있었으며, 가난하고 어려운 가정환경이었기에 부유한 이모의 삶을 동경할 수 있었다. 필연적인 반대가 있었기에 그 모든 것들이 가능했던 것이다.
늦봄에 지는 벚꽃을 보면 영원은 없다는 걸 새삼 떠올리게 된다. 영원은 반대어가 없다. 그래서 영원히 존재하는 것도,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것도 아직은 없다. 영원하지 않다고 우리가 불행하거나 슬퍼할 필요는 없다. 벚꽃은 일 년에 이주 남짓, 끝내주게 좋은 날씨도 일 년에 두어 달 남짓, 야구도 우리 팀이 이기는 날 보다 지는 날이 훨씬 많다. 1
그런데도 우리는 그 순간을 다 기억한다. 긴 기다림도 마다하지 않고. 결국 무가 있기에 유가 의미 있어지고 유가 있기에 무를 견딜 수 있게 되는 무한의 모순 속에서 우리는 죽을 때까지 삶을 견뎌가는 것이다. 더 어렸을 때는 영원한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게 조금 많이 슬펐지만, 요즈음엔 그래서 더 낭만적이고 행복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뭐든지 영원할 거라는 믿음이 있으면 무뎌지고 시시해지기 마련이니까.
비슷한 맥락에서 ‘애증’이란 단어에 대해 생각한 적 있다. 사랑은 너무나 당연하게 증오를 동반하는데, 그럼 애증이란 단어는 이중적 표현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었달까. 지금 생각해 보면 사랑해라는 말이 증오해라는 말과 동일하진 않으니까 애증은 이중적 표현이 아니다. 그렇지만 너무 신기하지 않은가? 사랑하지만 증오하고, 안주를 지향하지만 일탈을 동경하고, 외로움을 사랑 하지만 누군가와 결합되어 있고 싶은. 인간이라는 동물의 이중성.
작가는 마지막 작가의 글에서 삶은 모순으로 짜여있으며, 그 모순을 이해할 때 조금 더 삶의 본질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인간의 삶은 모순과 역설로 점철된 일들이다. 그 모순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의해 내가 사는 세상이 천국일 수도 지옥일 수도 있겠다.
1 예쓰 7월 26일 - 기아는 이기는 날이 더 많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