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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예 Apr 29. 2020

7. 만유인력-5

암사자


"오빠."


내가 맥주 한 잔을 앞에 두고 그를 불렀다. 나에게는 아주 촌스러운 습성이 있었는데, 그건 좋아하는 사람의 이름을 부르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 나는 그저 오빠,라고 부르는 것은 아무렇지 않은데 그 앞에 이름을 붙여 말하는 것은 너무나도 부끄러워서 도저히 입이 떨어지질 않았다. 반대로 상대방에 내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면, 나는 그것 또한 쑥스러워서 몸을 비비 꼬았다. 


"오빠."


그가 대답 없이 나를 쳐다보기만 해서 나는 다시 한번 그를 불렀다. 그가 조심스럽게 내 손가락 마디의 튀어나온 부분들을 톡톡 건드리고 있었다. 그는 나를 보았다가 내 손을 보았다가 하더니, 고개를 수그리고는 조그마한 목소리로 말했다.


"...로 불러줘."

"네?"

"...로.. 불러봐 봐."

"뭐라고요?"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뭐야. 지금 부끄러워하는 거야? 나는 그 모습이 퍽이나 사랑스럽게 느껴져서 웃음이 나왔다. 그때 그저 이름을 붙여 그를 불렀더라면, 지금은 조금을 달랐을까. 그가 어떤 생각이었는지 내가 알았다면, 그가 심술을 부리지 않았더라면, 우리 둘 다 조금은 성숙했더라면 달랐을까. 나는 이름을 불러보려다가, 얼굴이 확 달아오르는 게 느껴져서 괜스레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아, 싫어요."


그는 갑자기 말이 없었다. 그리고는 만지작거리던 내 손가락 마디 부분을 꾹 누르더니, 갑자기 무서운 눈으로 나를 거의 쏘아보며 말했다.


"이름을 안 부르면, 네 그 수많은 오빠들 중에 내가 누군지 모르겠잖아."


뭐?


"너에 대해서 말을 좀 해봐. 그렇게 웃지만 말고."


뭐라고요?


"무슨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어. 불안해."


불안해.. 그건 내가 느끼는 마음이었다. 그가 불안을 느낄 리가 없었다. 나는 그 당시만 해도 서른 살, 이라는 것의 무게에 대해 거의 신화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나 서른 살이 넘으면 어른이 된다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가 어린아이처럼 이야기하는 것이 믿기지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지금껏 그 숱한 소문들로 알아온 그는, 여자관계에서 절대로 불안을 느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적어도 내가 아는 그는 그랬다. 


한편으로 나는 그가 말한 '네 그 수많은 오빠들'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몰라서 어리벙벙해졌다. 그리고 그 의미에 대해 생각할수록 기분이 급속도로 나빠지기 시작했다. 나를 무슨 창녀 취급을 하는 거야? 나는 정말로 화가 났다. 


"무슨 소리예요, 진짜. 오빠들이라니."


나는 화를 꾹꾹 눌러 담으면서 말했다. 


"... 아니야, 농담이야."


그가 한 동안 나를 보고 있다가 내 머리를 쓰다듬고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는 말이 없었다. 나는 더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화난 표정으로 계속 그를 쳐다봤다. 뭐야 진짜? 사람 우습게 만들어 놓고? 그가 내게 어떤 해명을 원하는 건지, 아니면 장난을 치는 건지,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진심인지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이제는 같이 있어도 불안했다. 전에는 그가 떠나고 난 뒤에 다시 그를 볼 수 없을까 봐 불안했는데, 이제는 그와 같이 있어도 불안했다. 나는 구역감이 났다. 이제 이런 모든 불분명한 것, 감추는 것, 미적지근한 것들에 모두 화가 났다. 


그는 다음 날 6시까지 출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집에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집에 가는 택시에서 그는 골아떨어졌고, 나는 그가 한 말들의 의미를 여러 번 곱씹어 생각해보았다.


'분명히 나를 속이고 있는 거야.'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사실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상처 받기가 싫어서 나 자신을 속였다. 그때도 나는 분명 그가 나를 좋아하고 있다고, 어쩌면 조금은 사랑에 가까운 그런 감정을 느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기대하기가 무서웠다. 기대했다가 땅 깊은 곳으로 꺼져버릴까 봐.


그가 그런 알쏭달쏭한 말들로 나를 잔뜩 혼란스럽게 하고 내게서 일순간 떠나버릴 것을 상상하니 나는 못 견디게 괴로워졌다. 그런 불안들은 점점 걷잡을 수 없이 커져서 나를 에워싸고는 놔주지 않았다. 어느덧 우리 집 앞에 택시가 섰고 그는 잔뜩 졸린 눈을 비비면서 따라 내리려 했다. 나는 그를 막고는 문을 닫으며 말했다.


"다시는 연락하지 말아 주세요. 제발요."


그때 나는 내가 진심을 가득 담아 그렇게 말했다고 믿었지만, 이제와 보면 나는 그를 시험했던 것이다. 진짜, 진짜로 내가 좋아? 그러면 내가 이렇게 말해도 연락을 해야지. 그래도 나를 만나러 와야지. 나를 좋아한다며. 그러면 그쪽 자존심쯤은 중요한 게 아니잖아. 나는 상처 받을까 봐 무섭단 말이야. 나는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징징거리는 것 밖에 못했다.


나는 우리가 다시 만나게 됐을 때처럼 그가 다시 나를 찾을지도 모른다고, 아주 약간은 기대를 했다. 그러나 연락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메신저 차단을 풀었다가 다시 했다가 반복하기도 하고, SNS 프로필 사진을 뒤적거리기도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그렇게 그와 마지막으로 만난 지 2주 뒤에도 연락이 없자 나는 실감했다.


'아, 진짜.. 끝났어.'


나는 그 날 저녁 병원문을 나선 뒤 정신없이 지하철을 잡아 타고 아파트 계단을 뛰어올라 다급하게 내 방 문을 닫고 이불속으로 들어갔다. 무거운 이불 안에서 숨을 몰아 쉬면서 나는 포기라는 것을 해버렸다.


완전한 패배. 나는 내 알량한 자존심과 실낱같은 이성에 두 손을 들었다. 나는 그 그늘 밑에서 사냥에 실패한 암사자처럼 늘어졌다.


만유인력


거의 그로부터 5년 정도나 지난 뒤에야, 나는 사건의 전말을 조금은 알게 되었다. 전공의 1년차였나, 2년차였나, 그것도 아니면 1년차에서 2년차로 넘어가는 겨울이었나. 나는 오랜만에 동아리 술자리에 나갔다. 그런데 그와 친하다고 알려진 고학번 선배가 참석해 있었다. 나는 그와 그렇게 친한 사이가 아니었지만 남은 자리가 얼마 없어 우연찮게 그 앞에 앉게 되었다. 


그는 내게 이런저런 근황에 대해 묻더니 갑자기 미안하다,라고 했다. 내가 어리둥절해서 무슨 소리냐고 물었더니, 자신이 나에 대해 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 나는 도통 무슨 말인지를 몰라서 재차 물었다. 선배가 말하기를, 내가 한참 그와 만나고 있을 적에 선배에게 고민상담을 한 적이 있다고 한다. 한참 어린 후배랑 만나고 있는데,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고. 그 애는 아직 어려서, 자기가 얼마나 앞서 나가도 될지 모르겠다고.


당시 그 선배는 나와 같은 학번 동기 여자아이와 교제하던 중이었다. 나는 그 여자아이와 친하다면 친하고, 또 안 친하다면 안 친한 사이라고도 볼 수 있었는데, 왜냐하면 그 아이가 나를 싫어하는 것이 노골적으로 드러날 때가 많았기 때문이다. 어찌 됐건 선배는 당시 여자 친구로부터 나에 대한 험담을 많이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내가 남자관계가 아주 복잡하다는 것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나와 만났던 그가 자신에게 나에 대해 털어놓았을 때,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순진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오히려 네가 휘둘리고 있는 것일 수도 있으니 조심하라고, 그렇게 이야기를 해주었다고 한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는 선배 앞에서는 그저 웃어넘겼다. 아유, 뭐, 기억도 안 나요. 결혼 준비하고 있는 사람한테 할 얘기는 아닌 것 같네요. 


그러나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에서 나는 생각이 많아졌다. 나는 사람의 인연이라는 것이, 의지만으로는 이어지기 참으로 어렵다는 점에 대해서 생각했다. 


결국 그는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던 걸까? 그저 남들에게 들은 말들, 주워들은 소문들, 선입견, 이런 것들로 범벅이 되어서 우리는 관계를 망친 걸까? 우리는 처음 서로에게 겉모습으로 끌렸던 것처럼, 그 겉모습에 대한 편견 때문에 그리도 괴로워했던 걸까?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좋아하고 증오하고 원망하고 탐닉한다. 그리고 결국에는 포기한다.


포기한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았지만, 결국에는 그저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내가 계속 만났어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오해들로 인해 결국에는 서로를 잡아먹었을 것이다. 차라리 이렇게 아련한 기억의 편린으로 남아있는 편이, 서로에게 더 좋았다. 재미있게 시작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한 이야기처럼. 


어쩌면 나는 그때부터 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는, 그가 절대로 가질 수 없는 여자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 미완성으로 남아 있어야만 나는 아름다울 수 있었다.


<Vicky Cristina Barcelona>에서 하비에르 바르뎀이 한 말처럼.

'Only unfulfilled love can be romantic. 미완성의 사랑만이 로맨스로 남는대.'



정신과 전공의가 되고 나서, 나는 전이 Transference와 역전이 Counter-transference라는 말을 배우게 되었다. 환자는 치료자를 보면서 치료자의 성별이나 생김새, 말투, 표정 같은 것을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 익숙한, 자신의 인생에 이미 뿌리 깊게 박혀있던 누군가를 연상한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 누군가와 맺었던 관계 양상을 치료자와 반복하려 한다. 이것이 바로 전이이다. 치료자는 바로 그 점을 정신치료에서 다룬다. 한편 치료자 역시 환자에게 어떤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어떤 환자는 치료 시간이 기다려지기도 하고, 어떤 환자는 치료 시간이 가까워져 오면 머리가 아파온다. 이런 것은 역전이라고 한다. 예전에는 역전이가 정신치료의 장애물로 여겨졌지만, 요즘에는 역전이 역시 치료에 이용되기도 한다. 환자가 다른 대인관계에서도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비칠지 예상해볼 있기 때문이다.


때로 어떤 사람들은 이유 없이 끌리고, 어떤 사람들은 아무 잘못도 없는데 미울 때가 있다. 이런 점을 정신과에서는 전이, 역전이로 설명하기도 한다. 내가 정신과 용어들에 대해 전혀 모르던 시절부터, 나는 그런 것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만유인력이라고 믿었다.


늘 내가 주장하는 바지만, 사람의 무의식이란 정말 놀라운 녀석이다. 아무리 의지가 강하든, 학력이 높든, 외모가 뛰어나든 상관없이, 우리의 정신과 마음은 항상 같은 길을 따라가려고 한다. 그 길로 가면 아주 괴롭다는 것을 알면서도.


정신과 의사들끼리 농담 삼아하는 이야기가 있다. 소개팅 때 이상하다 싶을 정도로 너무 끌리는 느낌이 들면, 일단 연락을 한 템포 쉬고 가라고. 상대방은 분명 인격장애가 있거나, 너무 강렬한 전이가 형성된 것이라고. 분명히 집에서 되짚어 보면 가까운 누군가와 닮아 있을 것이니, 그 사람과 만나면 정말 행복할 것인지 생각해보라고. 예를 들어 항상 강압적이고 자신을 조종하려는 엄마 밑에서 큰 아들은, 아주 순종적인 여자와 만나겠다고 다짐하지만, 결국에는 엄마처럼 자신을 통제하는 여성과 사랑에 빠진다. 괴로워하면서. 마찬가지로 독선적이고 가부장적인 아빠 밑에서 큰 딸은, 다정하고 젠더 감수성이 충만한 남자와 결혼하리라고 결심하지만, 만나게 되는 것은 아빠와 닮은 남자이다. 이런 것을 '반복 강박 repetition compulsion'이라고 한다.


나 역시 아주 미성숙한 여자라, 불행하게도 이러한 과정을 또 겪고야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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