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속신앙은 과학이 발달하기 전 사람들에게 불가사의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주던 역할을 했을 뿐 현재는 그 명맥이 유지되고 있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가 않다. 우리나라에서 종교를 믿는 사람의 반은 불교를 믿고 반은 카톨릭(개신교, 천주교)을 믿는다고 통계는 얘기하지만, 대부분 토속신앙을 믿는다고 보는게 맞다. 우리나라는 옛부터 조상신을 모셨다. 조선시대에 전쟁이 났을때 제일먼저 챙긴 것이 종묘에 모신 신주였다는 일화는 의무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들어봤을 것이다. 종묘는 선대 왕들을 모시는 곳이다. 2024년임에도 여전히 제사 문제로 집안 싸움이 일어난다. 제사는 우리집의 선대 왕을 모시는 거다. 왕이든 양반이든 평민이든 노비든 모두 조상신을 모셨다. 카톨릭이 전세계에 퍼질 수 있었던 이유는 토속신앙과 결합하는 것에 매우 유연했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명절에 제사를 지내면서 제사 예배를 보고, 성당을 다니는 사람들은 제사 미사를 드린다. 아프리카 대륙의 예배나 미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매우 거리가 먼데, 유튜브에서 한번 찾아보기 바란다. 저게 과연 내가 아는 가톨릭이 맞나 싶을거다. 성가복을 입고 신도들과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카톨릭의 외형만 갖추었을 뿐 그 나라의 토속신앙이라는 것을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는다. 토속신앙은 여전히 명맥을 유지하고 있고, 아마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조상을 섬기는 것 말고도 우리나라에는 강력한 토속신앙이 있는데 바로 무교이다. 무당은 여전히 우리나라에서 하나의 직업으로 기능하고 있다. 주변에서 신점을 보는 사람을 찾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것이 아닌데, 그 신점을 보는 사람이 바로 무당이다. 최순실 이후로 무당이라는 말에 거부감이 생겼고, 그래서 무당에게 점을 보러 간다는 것을 창피하게 생각해서인지 요즘은 그냥 '용한 분'에게 신점을 보러 간다고 하는데, 신점 이코르 무당이다. 무당을 안 믿을거면 신점도 믿지 마시라. 교회를 다니고 절에 다니면서도 신점을 보러 다니는 걸 보면 역시 종교에 대한 통교는 믿을게 못 된다. 토속신앙은 매우 강력하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논리적인 설명을 찾는건 인간의 본성이다. 도저히 논리를 찾지 못하면 불가사의한 힘이 존재할 거라는 논리를 만들어낸다. 그래서 아이들이 미스테리에 환장하는 것이다. 나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어렸을때 꿈을 신기해했고, 꿈이 현실과 연결되어 있을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해몽을 믿었고, 예지몽을 믿었다. 사주팔자는 신앙이 아니라 명리학이라는 잘못된 믿음으로 사주를 보기도 했다. 많이 믿지는 않아서 사주카페에 가서 천원을 주고 재미삼아 보는 정도였다. 해몽, 사주, 궁합, 관상, 손금, 타로 등 내가 한때 믿었던 것들은 절대적 믿음이 아니라 아주 조금의 신빙성은 있을 것이라는 기대에 가까웠다. 그러다 2016년이 되었고, 거리에 나가 추운 겨울 광화문에서 삼청동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으며 결심했다. 이제 무속은 끝이다. 그 어떤 것도 믿지 않겠다. 재미로도 보지 않겠다.
토속신앙이 무서운 이유는, 종교가 무서운 이유와 같은데, 지능이 높고 낮음과 학력과 상관없이 믿는다는 것이다. 내 주변인들은 모두 명문대 출신의 고지능자 들인데 사주를 보는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많다. 그게 정말 무서운 지점이다. 돈을 잘 벌기 때문에 거기에 쓰는 돈의 액수도 장난 아니다. 난 그 돈이 너무 아까워서 내가 봐줄테니 나에게 달라고 얘기해보지만 그들이 들을 리가 없다. 그래서 진짜 명리학을 공부할까 고민한 적도 있다. 주변인들에게 그런 것 좀 믿지 말라고 무속 처단자가 되어 활동하다가, 누군가 나에게 툭 던져준 무료 신년운세 사이트의 유혹을 참지 못하고 클릭하고 말았다. 공교롭게도 2024년 또한번 무속으로 나라가 난리가 난 이 때, 2016년이 오버랩되면 무속에 대한 분노가 더 커져야 할텐데, 난 그것을 클릭했다. 공교롭게도.
내 생년월일을 기입한 것 만으로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다. 하지만 난 그것 뿐만이 아니고 결과지를 열심히 읽었다. 내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새로운 일을 하면 대성한다'는 말을 보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직장, 가정, 애정, 월별 운세가 모두 '하던 일이 대성한다'로 나왔다. 오랫동안 했던 일이 드디어 결실을 본다고. 나는 오랫동안 했던 일을 접으려고 하는데 이딴걸 운세라고. 지금 한국 영화시장은 없어지는 수순인데 하던 일을 계속 하라는 얘기냐. 굶어죽으라고 아주 저주를 하지 그러냐. 내 성별과 생년월일과 태어난 시간을 직접 입력한 주제에 결과지를 보면서 분노를 터뜨렸다. 신점을 보러 갔다가 듣고 싶은 말을 듣지 못해서 화가 난 사람들이 하는 말을 내가 하고 있었다. 역시 사주는 믿을게 못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