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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가까이 하라

by Renaissance

스스로 실존주의자라 생각하지만 죽음을 언제나 직시하면서 살지는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나는 실존주의자가 아니다. 실존주의자 호소인에 가깝다. 영화를 해보겠다고 버티는것에 익숙하다 보니 돈을 안 쓰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고, 1년 정도 돈을 벌지 않아도 버틸 여력을 항상 남겨두려 하는데 이미 거기서부터 틀려먹었다. 내일 당장 죽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1년어치 여유자금을 남겨두고 살 리가 없지 않은가. 어차피 죽으면 영원한 암흑이 날 기다리고 있을텐데 우울해하고 불안해하는 것도 그렇다. 실존주의자라면 내 주변에 언제나 도사리고 있는 죽음을 생각하면서 우울해 할 틈이 없을 것이고, 내가 느끼는 불안감은 죽음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할 것이다. 실존주의에서 멀어져서 살다가, 어머니의 폐에서 무언가 발견되었다.


어머니는 원래 투병중이셨다. 워낙 건강하고 강한 분잉시라 그정도 따위는 이겨내고 살아가시리라 생각했다. 7년째 투병중이시지만 누구보다 강하게 버텨내신다고 생각했다. 검사하기 곤란한 곳에 무언가 보인다고 하니, 열어서 확인해보자는데 덜컥 겁이 난다. 어머니가 못 일어나시면 어떡하지. 투병중이시니 큰 수술을 결정하기가 쉽지 않다. 수술을 안 해도 불안하고 해도 불안하다. 어머니의 죽음이 가까이 있다고 생각하니 영화가 뭔 대수냐 싶다. 내가 무엇을 이루고 말고가 뭐가 중요하냐 싶다. 큰 병 없이 살아있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낀다. 어머니가 아프시고부터 내 우울함 따위 신경쓸 시간이 없다. 실존주의가 왜 죽음을 직시하라고 하는지, 그게 무슨 의미인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영화하는 사람은 어차피 모두가 놀고 있다. 내가 직접적으로 아는 감독 중에 상업으로 입봉한 사람은 단 한 명이고, 다른 한 명은 유명 OTT 드라마를 찍었다. 그 둘이 나와 동시대에 단편영화를 찍었던 감독 중에 가장 성공한 이들이다. 둘 다 드라마를 준비중이다. 상업영화를 준비하고 있는 사람은 내 주변에 단 한 명도 없다. 어차피 아무도 못하고 있는 것을 내가 못하고 있다고 스트레스 받을 필요가 없다. 롯데와 메가박스가 합병을 왜 하겠나. 둘다 최대한 영화에서 손 떼고 싶은데 손해는 최소화 하고 싶으니 합병을 하는 거다. 모두가 손 뗄 생각만 하고 있다. 완전히 주저않고 나야 새 판이 짜질 것이다. 망하고 다시 시장이 생기려면 꽤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이다. 영화시장의 끝물에 시장에 뛰어들어 장편에 입봉하자 마자 내리막이 시작된 나 같은 케이스는 아마도 새로 시장이 생겨날때 까지 버티지 못할 것이다. 앞으로 10년을 버틸 수 있는 사람이거나, 10년 후에 영화를 시작할 사람들이 새로운 시장에서 플레이어로 활약할 것이다. 10년 후면 50이고 그때까지 버틸 힘도 돈도 없다. 평생 부모님께 인정받으려 애썼는데, 그때가 되면 어머니가 없을 수도 있다. 그래서 더더욱 버티고 싶지 않다.


하루하루를 휴가라 생각하고 보내고 있다. 동료 감독들과 준비중인 프로젝트를 마칠때까지는 영화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프로젝트가 끝나면 올해가 가 있을 것이다. 고로 내가 지금처럼 자유롭게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운동을 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취직을 하게 되면 일주일만이라도 마음껏 쉬고 싶어질 것이다. 마지막 휴가를 즐기자. 인생은 길지 않다. 죽음은 가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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