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가 되면 뭘 할거냐고 했을때 제대로 대답하는 사람을 본 적 없다고 언급한 바 있다. 가장 많이 하는 대답은 여행을 다니면서 살 거라고 한다. 구체적으로 어떤 나라를 얼마나 오래 갈 것이며 각 나라별 체류기간은 어떻게 되고 후보군에 있는 도시들을 말해보라고 하면 제대로 답하는 사람은 없다. 한마디로 제대로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뜻이다. 부자가 되면 뭘 할 건지에 대해 생각도 해본 적 없으면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비판했다. 그러다 최근 자기반성을 하게 되었는데, 그 얘기를 해볼까 한다.
영화를 그만둔 후의 삶에 대해 계획하는 중에 무라카미 하루키의 [달리기를 말할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읽었다. 전자도서관에 무료로 읽을 수 있는 문학책을 다 읽어버려서, 읽을 책을 찾다가 눈에 띄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40대일때 쓴 이야기인데, 노화에 대한 이야기가 매우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달리기 기록이 늘지 않는 때를 겪으면서 노화를 받아들이는 작가의 통찰과 슬픔이 담겨있다. 나 또한 에너지 총량이 줄어드는 신체적 노화를 겪고 있는 나이이기에 노화에 대해 기록하고 인사이트를 창작에 활용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러다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의 현재 나이를 검색해보게 되었고, 그 분이 벌써 76세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20대의 공허함을 섹스로 채우는 이야기를 기깔나게 쓰시는 양반이라 그렇게 나이가 많으신지 몰랐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나이를 먹은 거다. 그 분의 작품은 늙지 않았지만, 그 작품을 읽어오던 내가 나이가 들어버렸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 노년의 생활에 대해 생생하게 그려본 적이 없다. 대학이나 단체에서 후학을 양성하면서 책이나 읽지 않을까 라고 막연하게 생각했다. 부자가 되면 뭘 할거냐는 질문에 대한 답과 별 차이가 없다. 그 정도는 누구가 그냥 생각없이 대답할 수 있는 수준이다. 심지어 후학을 양성한다는 가정은 내가 성공적인 커리어를 이뤘을 때에만 가능하다. 나는 내가 원하는 커리어를 쌓지 못했을 때 어떤 노후를 보낼지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다는 뜻이다. 내가 만약 영화를 그만두고 에어컨 설치를 하거나 버스기사를 하게 되면 후학 양성이 말이 되냐는 거다. 에어컨 설치나 버스운전을 가르치는 대학은 없다. 지금보다 훨씬 더 에너지가 없어지고, 움직임이 불편해지고, 훨씬 더 자주 건강이 안 좋아졌을때 내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에 대해서 상상해본 적이 없다.
어디에 어떤 집에 누구와 살면서, 어떤 운동을 할 것이고, 누구를 벗으로 둘 것이며, 소일거리는 무엇이고, 하루를 어떻게 보낼 지에 대해 상상해보지 않았다. 내가 어렸을때 생생하게 상상해보려 했던 나의 미래는 딱 지금까지다. 그렇게 생생하게 상상을 해보았기에 거침없이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에 뛰어들 수 있었다. 원하는 대로 모든 것이 된게 아니라, 나는 지금이라는 미래에 대비가 되어 있었다. 이제 다른 미래를 대비할 차례다. 밥먹고 똥싸는 그런 당연한 얘기 말고, 내가 원하는 커리어를 이룩하지 못하고 60대가 되었을 때 어떤 노후를 맞이할 것인기 그려야한다. 막상 그걸 그려보려고 하니, 나는 여전히 내가 영화로 뭔가를 더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희망고문을 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올해까지만 단편을 찍고 각본을 쓰는 등 영화일을 한 후에 내년에 취직을 한다. 그게 사내 방송국 pd이거나 스타트업의 영상 담당자라고 해보자. 아마도 아무리 오래 일해봤자 50까지가 한계일 것이다. 그럼 그 후에 무엇을 할 거냐는 상상을 하다보면, 내가 그때까지 어떤 엄청난 시나리오를 썼거나 주변 동료가 영화계에서 어떤 성과를 이뤄서 나에게 영화 일이 주어진다는 상상이 급습한다. 그러면 노후를 생생하게 그려보려던 나는 다시금 영화를 하는 미래를 그리게 된다. 이 얼마나 멍청하고 바보같은 꼴인가. 나는 영원히 영화와 헤어질 수 없는 것인가.
예전에 그런 다큐를 본 적이 있다. 로스쿨이 도입된 후, 사법시험이 매해 합격자 수를 줄이다가 2017년을 마지막으로 없어질 거라고 발표되자 신림동 고시촌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은 다큐다. 10년 넘게 사법고시를 준비한 사람이 지천에 널려있었다. 매해 합격자 수가 반토막 날 거라고 발표를 했음에도 사법고시를 그만두겠다는 사람이 없었다. 지금까지 해놓은 것이 아깝기 때문도 있겠지만, 다들 합격자 수가 적어져도 '나는 합격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카메라는 그 모습을 매우 차갑게, 그래서 더 안타깝게 담았다. 그 장수생들의 모습과 지금의 내 모습이 겹쳐진다. 내가 뭐가 다른가.
꿈이 부자인 친구들에게 부자가 되면 뭘 할 거냐고 묻는 습관도 고쳐야겠다. 내가 누굴 질문할 자격이 되지 않는다. 커리어에서 성공하지 못한 미래를 그려본 적이 없는 내가 남의 상상력의 빈곤을 탓할 수 없다. 난 딱 그정도의 인간이다. 나의 허물보다 남의 허물을 더 잘 보는 인간. 아무리 노력해봤자 그 정도의 인간밖에 될 수 없었다. 초라한 41세다. 그 초라한 인생이 60대, 70대가 되었을 때 어떻게 이 버거운 인생을 감당하며 살아갈지 그려보려고 노력하자. 그려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