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성격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 게임에서 본인의 아바타를 꾸밀 수 있도록 해주는 경우 보통 어떤 캐릭터를 만드시는지? 이성 캐릭터만 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본인과 같은 성의 캐릭터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인종을 다양하게 바꾸는 사람이 있는 반면 본인과 같은 인종의 캐릭터만 만드는 사람이 있다. 나는 후자다. 나는 나와 유사한 캐릭터만 만든다. 단 한 번도 예외는 없었다. 그래서 온라인 게임을 싫어하는 것 같다. 게임 속 나와 실제의 나를 잘 분리하지 못하니 게임에서의 모욕을 실제 모욕으로 받아들인다. 온라인 게임의 시작과도 같은 스타크래프트를 그만 둔 이유도 언어 폭력 때문이었고, 디아블로를 그만 둔 이유도 트롤 때문이었다. 대학교 학부 시절은 바야흐로 온라인 게임의 전성기였는데, 대형 온라인 게임 신작이 나올때마다 피씨방이 가득차고 시험보다 공성전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런 시절이었음에도 나는 리니지나 월드오브워크래프트에 접속해본 적도 없고 계정을 만들어본 적도 없다. 그래서 주변에서 게임을 안 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한창 시간이 흘러 LOL이 엄청난 인기 게임이 되자 같이 해보자는 권유가 많이 왔다. 얼마나 재밌길래 라는 생각에 시도해보았지만 역시나 두뇌가 흔들릴 정도의 욕설과 패드립에 게임을 할 수가 없더라. 어딜가든 트롤은 있으니 무시하고 해라, 특정 상대만 채팅이 안 보이게 설정할 수 있다, 정 싫으면 아예 채팅 기능을 비활성화 해버려라 등 많은 조언이 있었지만 난 그냥 계정을 지웠다.
합리적인 쇼핑만 하려고 한다. 사치품을 사는 건 도저히 용납이 되지 않는다. 내가 지불하는 가격에 합당한 기능과 성능을 제공하는 제품만 산다. 그러니 럭셔리 브랜드는 사본 적이 없고, 구스 다운이 생필품이 된 지금에도 구스 다운 패딩이 없다.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했을때 주변에서 명품 지갑이나 구두, 가방 등을 스스로에게 선물해 줄 때에도 나는 대학교때 쓰던 브랜드 없는 지갑을 썼고, 금강제화 구두를 샀다. 스스로에게 주는 선물은 백화점에서 산 리바이스 청바지였다. 맨날 온라인에서 직구 제품만 샀으니까, 백화점에서 한번 오프라인으로 사보고 싶었다. 내가 다니던 대학교는 백화점이 굉장히 가까이 있었는데, 대학 다니는 내내 거기서 옷을 한 번 사본 적이 없었고, 취직을 했으니 돈 걱정 없이 한번 쇼핑을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고작 산 것이 10만원짜리 청바지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사치는 그 정도가 맥시멈이다.
논리적으로 납득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으려 한다. 결혼을 해야 한다, 애를 낳아야 한다, 종교를 가져야 한다, 수많은 논쟁들을 해왔다. 그 누구도 나를 납득시키지 못했다. 만약 내가 논리적으로 납득을 했다면 결혼을 하고, 애를 낳고, 종교를 가졌을 것이다. 논거가 늙어서 후회한다, 남들이 다 하는건 해야한다, 정서적으로 도움이 된다 정도라면 그 누구도 설득시킬 수 없다. 합당한 이유를 대지 못할거면 남들에게 강요하면 안 된다. 안 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을 하려면 지옥의 존재를 증명을 해야한다. 결혼에 관련된 논쟁 중에 가장 기억에 남았던 건 직장 상사와의 대화였다. 나는 광고대행사에서 AE를 했던 사람이라, 하는 일이 허구헌날 논리짜는 거였다. 이 브랜드가 이 캠페인을 해야하는 시장이 이러이러해서 이고 경쟁자는 이런걸 하고 있는데 소비자는 이러이러하게 변하고 있으니 이런 메시지를 줘야하고 그러려면 이런 광고를 만들어야 한다 는 식의 논리 구조 쌓는걸 업으로 하는 사람들이니 그런 논쟁이 벌어지면 마치 기획 회의하듯이 논거가 미사일처럼 왔다갔다 한다. 이게 회의인지 회식인지 분간을 못할 정도로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을때 내가 이랬다. '결혼과 육아가 그렇게 행복한 거라면 왜 집에 안 가시고 여기 계시는 거냐.' 말을 싸가지 없게 한다고 한소리 듣기는 했지만 그 이후로 회사 다니는 내내 다시는 나에게 결혼 하라는 말은 하지 않으시더라.
몇 가지 내 특징에 대해 기술했는데, 당신이 보기에 장점인 것 같나 단점인 것 같나? 내가 보기엔 단점으로 보인다. 이유는 내 현재 상황 때문이다. 내가 만약 커리어적으로 큰 성공을 거뒀다면 내 성격은 장점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영화를 그만두자니 하고 싶은 건 없고 취직을 하자니 취직도 안 되는 개떡같은 상황이니 내 모든 성격이 단점처럼 느껴진다.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회사를 갔을 때만 해도 이러한 특징들이 다 장점처럼 느껴졌었다. 이제는 정 반대다.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새로운 것에 인색한, 고집스러운 인간처럼 느껴진다. 성격의 좋고 나쁨은 결국 결과론 적인 것 아닌가. 스티브 잡스가 성공을 했으니 천재 소리를 듣는거니 백수였으면 1호선 노인네 취급 받았을 것이다. 일론 머스크도 마찬가지고. 내가 만난 영화감독들도 다 마찬가지다. 성공한 영화감독이니 성공의 조건처럼 받아들여 지는거지, 아니었으면 고집불통의 성격파탄자 소릴 들었을 것이다. 근데 자기 고집이 없고 주장이 강하지 않은 사람이 애초에 영화감독을 하려고 할까.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싶다는 강력한 드라이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자기 주장이 강한 사람일 수 밖에 없지 않나. 근데 그런 사람에게 그 고집 좀 꺾으라고 하면, 성격 좀 고치라고 하면, 안 되는 거 아닐까?
내가 정말 크게 양보한 프로젝트가 있는데, 양보를 하는 대신에 나에게 프로젝트의 진행사항에 대해 더이상 연락을 하지 말아달라고 했다. 꼴도 보기 싫으니까. 근데 관계자 중에 내가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은 것에 대해서 잘 알아 보지도 않고 연락을 해서는 기분을 풀라거나, 미래를 생각했을때 그렇게 행동하면 안 된다는 둥 쌉소리를 하길래 속이 뒤집어졌다. 하란대로 다 해줬더니 이제 나보고 웃으라는 거네. 쌍욕을 박을까 하다가 최대치의 인내심을 발휘해 내 입장을 설명하고 전화를 끊었다. 나도 내 성격이 싫다. 근데 애초에 이런 성격이 아니었으면 회사도 그만두지 않았을 거고 영화도 안 찍었을 것이다. 내 성격이 마음에 안 들면 유감이다. 나도 마음에 안 든다. 근데 안 바뀌는거 알지 않나. 그러니 웃으라 마라 하지 말아라. 뺨을 때렸으면 미안해 할 줄 아는게 인간의 미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