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과 예술은 함께 발전해왔다. 카메라 옵스큐라와 함께 르네상스가 열렸고 사진이 발명된 이후엔 인상주의가 대두됐다. 발전된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사조(르네상스나 팝아트)가 있는 반면, 기술을 경쟁관계로 보고 차별화를 시키기 위해 나온 사조(인상주의나 입체주의도)도 있다. 공생하는 관계라고 보면 될 것이다. 입체주의와 함께 막을 연 모더니즘 시대부터 현재까지 미술의 발전 속도를 기술이 따라잡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일반인의 시선에서 현대 미술은 난해하기만 하다. 다음 사조를 가져올 원인이 무엇이 될 것인지 예측해보려 했는데, 아마도 AI가 될 것 같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예술에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새로운 사조,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의 도래다. 그 얘기를 조금 해볼까 한다.
영화계가 망했고, 일이 없으니 창작욕을 풀 데가 없어서, 단편 소설을 썼다. 시나리오라면 자신있게 쓸 수 있지만, 소설은 언제나 어렵다. 오리지널 장편영화 시나리오를 장편 소설로 바꾸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했는데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시나리오는 영상을 위한 기본 작업이라 글 자체로 평가를 받지 않는다. 복선이나 메타포가 글에 직접적으로 나올 필요가 없다. 영화 연출을 할 때 집어넣으면 되는 거니까. 하지만 글 자체만으로 평가받는 소설은 직접적으로 복선과 메타포가 글에 나타나야 한다. 시나리오만 써오던 사람이라 이게 잘 안 되더라. 그래서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는 생각에 완성도 있는 글을 써보자는 심보로 단편 소설을 썼다. 어디 발표한 것도 아니고 평가를 받은 적은 없지만 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 나왔다. 단편 소설을 몇 편 더 써서 출판사 관계자나 친한 작가님에게 평가를 받아볼까 생각을 하던 찰나, 신춘문예가 떠올랐다. 어차피 안 될 거지만 넣어나 볼까 하고 공고를 보는데 단어 하나가 툭 하고 걸렸다. 'AI'. 생성형 언어모델을 사용한 것이 적발되면 탈락이고 당선 이후에라도 법적 조치를 받을 수 있다고. 당선 이후에라도? AI로 쓴 글이 당선 될 수 있다고 가정을 한다고? AI가 그 정도로 발달했다고?
퍼플렉시티에 내가 정한 소재와 캐릭터 설정을 집어넣어 200자 원고지 70매 분량의 단편 소설을 써보라고 했다. 내가 소설을 통해 비판하고자 하는 사회 현상과 어떤 것을 메타포 하고 싶은 지도 적었다. 그랬더니 꽤나 그럴싸한 소설이 튀어나왔다. 내가 한 달간 끙끙대며 쓴 단편 소설 분량을 AI는 1분만에 썼다. 물론 글의 구조가 매끄럽지 않고 완성도가 높다고 볼 수 없지만, 그럴싸한 소설이 나왔다. 이걸 소설이냐 아니냐 이분법적으로 판단해보라고 한다면, 소설이라고 부를 수 밖에 없다. 객관적으로 내가 쓴 소설과 비교를 해보라고 한다면, 어떤 것이 더 재밌느냐, 문학적 완성도가 있느냐, 고 묻는다면 내 소설이 낫다고 말할 수 있다. 근데, 그게, 일반 독자도 똑같이 느낄까? 그 생각을 하니 모골이 송연해졌다. 예술의 주체가 바뀌겠는데?
문체로만 따지면 내가 쓴 소설이 훨씬 개성이 강하지만, 읽힘성으로만 따지면 AI가 쓴 것이 나았다. 어느 쪽이 문장력이 더 좋느냐 하면 내가 더 좋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쉽게 읽히는 글이 잘 쓴 글이라고 배웠기 때문이다. 대중에겐 개성있지만 난해한 예술영화보다 많이 본 것 같아도 재밌는 장르영화가 훨씬 인기가 많다. 장편 영화나 장편 소설까진 무리겠지만, 현재 AI의 성능으로도 단편 소설과 웹툰 스토리는 대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긴 글과 복잡한 문맥에 관심이 없는 대중에게 인간 작가가 필요할까? 통근 열차를 타면 만원 지하철에 몸을 부대낀 사람들이 각자의 핸드폰을 보면서 그 지옥을 견딘다. 저마다의 방법으로 지옥을 버티는데 웹툰이나 웹소설 처럼 호흡이 짧거나 단순한 스토리를 보는 사람이 많지 소설을 읽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AI를 활용한 맞춤형 단편 소설, 맞춤형 웹툰을 만들어주는 서비스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상상해보자. 출근길에 지하철 플랫폼에서 열차를 기다리는 직장인이 앱을 켠다. 다음과 같은 프롬프트를 넣는다. [주인공은 20대 여성, 흑발의 한국인, 키는 158에 마른 체형, 챗바퀴처럼 굴러가는 사회에 염증을 느끼는 사회 초년생, 출근길에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 소설을 만들어줘.] AI는 1분만에 열 편의 소설을 제시한다. 지하철에 타고 다른 사람들과 몸을 부대끼면서 하나씩 읽어나간다. 그 중 한 편이 특히 마음에 든다. 버스로 환승하기 전 앱에다가 이 소설의 후속작을 써달라고 한다. 10초만에 후속작이 나온다. 버스에 타면서 후속작을 읽는다. 회사에 도착한다. 이 직장인은 예술을 향유하고 있는걸까 AI서비스를 이용하고 있는걸까? 누가봐도 예술을 향유하고 있는 거 아닌가? 단지 그 예술을 만든 주체가 인간이 아닐 뿐.
맞춤형 예술에 대해 자료조사를 하다가 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미 성인업계에는 NSFW 라는 카테고리가 존재한다. Not Safe For Work의 앞글자를 딴 용어로 직장에서 볼 수 없는 생성형 AI 서비스, 즉 성인용 AI를 뜻한다. 사용자가 원하는대로 야한 영상을 만들어주는 생성형 서비스다. 출근길 직장인이 앱에 넣은 프롬프트의 매체를 '로맨틱 코미디 소설'에서 '포르노'로 바꾸기만 하면 된다. 생성형 컨텐츠가 이미 성인업계에서는 서비스 되고 있는 것이다.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닥친 현실이다. 비디오테이프, 캠코더, VR 등 영상업계에서 가장 발 빠르게 기술을 채용한 업계가 성인업계임을 감안하면, 이제 곧 다른 예술의 영역에서도 이런 맞춤형 서비스가 제공된다고 봐도 무리한 전망이 아니다. 단편 소설, 웹툰부터 시작했다가 숏폼, 단편영화로 확장될 것이다. 종국에는 영화와 장편 소설도 서비스 될 것인데 그때쯤 되면 사람들이 긴 호흡을 원하게 될 지 모르겠다. 내가 상황만 설정해주면, 문장 하나만 넣으면 무한하게 컨텐츠를 생산해주는 서비스가 있는데, 거기다가 120분짜리를 만들어달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600페이지 장편 소설을 써달라고 할 사람이 있을까? 생성형 예술에 익숙해질수록 새로운 매체에 걸맞는 호흡과 길이가 생길 것이다. 유튜브가 처음 나왔을때는 영상의 길이가 다양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획일화 되었던 것처럼. 그렇게 따지면 AI가 지금보다 비약적으로 발전할 필요도 없다. AI가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수준의 장편영화와 장편소설을 만들어낼 정도로 성능이 좋아지기 이전에 예술의 형태 자체가 바뀌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나는 이 사조를 포스트휴머니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더이상 예술의 주체가 인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이상 인간이 만든 예술작품을 사람들이 원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점도 내포하고있다. 포스트휴머니즘 시대에 예술가는 왜 존재해야 하는가. 대형 프린트 기술이 도입된 이후에 극장 간판 화가의 존재이유가 사라진 것처럼, 무인택시가 도입되면 택시기사의 존재이유가 사라질 것처럼 예술가도 없어져야 하지 않을까? 영화감독, 작가, 화가, 작곡가가 존재해야 할 이유가 있을까? 사진이 담지 못하는, 인간의 눈에만 보이는 주관적 아름다움을 담겠다고 인상주의가 나타났듯이, 생성형 AI가 하지 못하는 예술을 하겠다는 사조가 생겨날까? 그런 사조가 생겨난다고 해도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의 현대미술 전시처럼 되지는 않을까? 새로운 예술을 하겠다고 호기롭게 작품을 만들었지만 전시회를 하면 파리만 날리고, 인상주의나 팝아트 전시회에는 사람들이 바글거리는 것처럼? 공중화장실의 변소를 뜯어내 미술관에 전시한 후 이게 예술이야 해봤자 사람들은 거들떠보지도 않게 되지 않을까? 이게 진정한 영화라고 장편을 만들어봤자 어쩌라고 라는 소리만 듣게 되진 않을까?
난 이 판국에 단편소설을 쓰고있다. 동료 감독이 아는 작가 중에 소설 300권을 썼는데도 생활고에 시달리는 분이 있다면서 단편을 아무리 잘 써봤자 돈을 벌기 힘들다고 했다. 그러니 어차피 뭘 하든 돈이 안 될거면 그냥 좋아하는 영화 시나리오를 쓰시라고 조언해주었다. 기술로 인해 일대변혁이 일어나기 전에도 예술로 먹고살고 있지 못하는데, 차라리 변혁이 일어나는게 나은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