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걸리지도 않았네. AI의 습격.

by Renaissance

작년 중순에 ChatGPT에 충격을 먹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https://brunch.co.kr/@renaissance/115

이 속도로 AI가 발전하면 많은 직업이 빠른 속도로 기계에 대체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담은 글이다. 댓글들이 참 재밌다. '기본소득'이라는 단어를 키워드로 지정해놓고 알림을 받는 사람들인지, 평소에 전혀 내 브런치에 오지 않은 사람들이 갑자기 풀악셀을 밟고 달려와 놀랐다. 애초에 AI의 발전에 따라 인간에게 기본소득이 필요하다고 말 한 사람이 chatgpt의 샘 올트먼과 테슬라의 일런 머스크인 건 알고는 있을까.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라서, 세상에 어떤 일이 벌어지든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인 손해를 끼치지 않는 일에 대해선 무심할 수 있다. 아는 사람의 죽음은 가슴이 저리도록 애통하지만 모르는 사람의 죽음은 그다지 영향이 없지 않나. 애초에 직업이 없는 사람들에게는 AI가 불러올 변혁이 별 감흥이 없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동떨어진 얘기가 아니라는 거. 깨닫지 못하고 있을 뿐.


댓글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서도 반응은 비슷했다. 나는 항상 암울한 전망을 하는 사람이니, 내가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취지였다. 그로부터 1년 반이 지났다. 당시에 나보고 부정적인 전망이라고 했던 사람 들은 전부 부정적이 되었다. 무엇이 그들의 생각을 변화게 했을까. 아마도 AI가 그들의 밥그릇 까지 위협하는 수준이 되었으리라. 자기 자신이 직접적인 손해를 보아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감평사를 하는 친구는 본인의 일이 전문직이고, 전문가, 즉 사람의 개입 없이 부동산의 감평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믿었다. 보수적인 분야일수록 대체가 어려울 것이라 믿었다. 지난 주에 그를 만났다. 자신의 일이 1년 내에 AI로 대체될 것으로 내다보더라. 불과 1년 반 만에 기계에게 대체될 수 없다고 했던 일이 완전히 대체될 것이라는 전망으로 바뀌었다. 실제로 클라이언트들은 AI가 하면 될 일을 왜 비싼 수수료를 줘가면서 감평법인에 맡겨야 하느냐고 불만을 가진다고 한다. 은행권에서는 AI를 활용해 본인들이 직접 감평을 하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한다. 현재는 법이 막아주고 있지만, 법이 바뀌는 건 시간 문제일 거라고 친구는 예상했다. 그래서 AI가 대체할 수 없는 직업을 찾는 중이다.


벤처기업을 설립해 잘 나가는 친구가 있다. 시리즈 C 투자 단계까지 회사를 성장시킨 친구다. 사업이 번창할수록 사업 분야도 넓어지고 따라서 채용하는 인력도 많아졌다. 현재는? 더이상 사람을 채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더이상 사람을 채용하지 않아도 되니까. 기존의 인력이 AI를 활용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으니까. 벤처기업마저 채용을 줄이는데 큰 기업들은 어떠할까. 과연 사람을 채용할까? 왜 그래야 할까? 1년 반 전의 기사에서 내가 예시로 들었던 것은 영어학원을 운영하는 친구였다. 2년도 되지 않아서 감평사와 테크기업까지 AI 변혁이 불어닥쳤다. 영화를 그만두고 프로덕션을 운영해볼까 하고 알아봤더니 영상 업계야 말로 초토화가 되어있더라. 최근에 대기업으로부터 광고 제의를 받았는데 예산이 얼마였는지 한번 맞춰보시라. 5분짜리 브랜디드 필름을 만드는 의뢰였다. 제시한 금액은 100만원이었다. 내가 광고업계를 오래 떠나있긴 했어도, 최소 5천만원을 받아야 할 사이즈였다. 100만원이라니. 영상의 가치가 이정도까지 떨어졌을 줄이야. 잡코리아나 사람인 같은 채용 사이트에서 영상 감독 관련 일을 찾아보면 우대사항이 죄다 AI 활용능력이다. 이젠 스토리보드 제작 능력이라던가, 인물 연출 노하우라던가, 커뮤니케이션 따위가 우대사항이 아니다. 예전엔 프로덕션도 광고 프로덕션, 유튜브 프로덕션, 뮤직비디오 프로덕션이 분리되어 있었는데 이젠 다 합쳐졌다. 하나의 시장 만으로 장사를 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더 적은 인력이 더 많은 일을 커버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광고, 뮤직비디오 시장은 앞으로 1년 내에 전부 AI로 대체될 것이다.


1년 반동안 이렇게 많이 변했다. 현재도 AI는 발전 중이다. 제미나이 3.0이 나오면서 AI의 최대 약점이던 일관성 유지도 해결이 되었다. 또다른 약점인 영상 길이도 곧 해결될 것이다. 이미 런웨이가 20초의 벽도 뚫었다. 그래서 써놓은 단편영화를 AI로 만들어볼까 하는 중이다. 근데 정말, 더럽게 재미가 없다. 제작과정이 즐거워야 하는데, AI 영상은 제작과정이 개발자와 별 다를 바가 없다. 프롬프트를 넣으면서 원하는 영상이 나오기까지 무한 반복하는 것 뿐이다. 배우와 함께 캐릭터에 대해 토론하지도 않고, 촬영감독과 함께 쇼트의 질감과 컬러에 대해 논의하지도 않는다. 미술감독과 함께 어떤 오브제가 왜 필요한지에 대해서 이야기하지 않고 음악 감독에게 영화의 철학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다. 그저 프롬프트 뿐이다. 이건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아니다. 결국 하나의 질문이 남는다. 먹고 살 걱정이 없어지면 무엇을 하고 살 것인가. AI로 인해 일할 필요가 없어진 인간은 뭘 하고 살아야 하는가. 부자가 되면 뭘하고 살 지에 대한 고민을 지금 해야한다. 나는 그게 예술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틀렸다. 무한대의 재산을 가지면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선택해 올인을 했는데 그 업이 사라졌다. 그러는 사이 돈도 없어졌다. 모든 것에 틀려버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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