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상의 시대가 저물다

by Renaissance

인간은 오감 중 시각을 절대적으로 선호한다. 다른 감각에서 받아들이는 정보는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시각 정보로 모든 것을 판단하려 한다. 그래서인지, 영상매체는 언제나 경외의 대상이었다. 무빙픽쳐스, 움직이는 그림이 처음으로 만들어지고, 대형 화면에서 그것을 처음 틀었던 것이 130년 전이다. 사람들은 열차가 자신들에게 질주하는 거라 착각해 혼비백산했다. 시각정보는 그토록 강력한 것이다. 영상은 처음 등장부터 와우 이펙트를 가지고 있었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무생물이든, 움직이는 사진은 '신기해' 보인다. 영상이 너무 흔해져서 동의가 잘 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13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에 열광하고, SF 영화 대작을 기다리는 이유는 영상이 주는 이 '신기함'이 유효하기 때문이다. 130년이 지난 지금, 그것이 사라지고 있다.


자신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서 처음 보는 순간을 기억하는가? 나는 그것이 초등학교 때였다. 가정용 캠코더라는 것이 개발된 지는 꽤 되었지만, 정말로 살 수 있는 가격이 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것이 한국에서는 1990년대였다. 나는 나라는 존재가 TV에서 나오던 그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무언가 특별한 것을 한 것도 아니고, 아주 짧은 영상이었지만, 하루 종일 그것이 신기해서 돌리고 또 돌려봤다. 하지만 캠코더라는 놈의 가격은 내가 대학생이 될때까지 떨어질 기미가 없어서, 내 주변에서 캠코더를 들고 뭔가를 찍고 다니는 놈은 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별의별 행사나 모임에 다 불려다녔다. 캠코더 좀 가지고 와 달라고. 나라는 미친놈은 영상이 좋아 기록을 해보겠다고 한달 알바비를 쏟아부어 옥션에서 중고 캠코더를 샀고, 왜 남들은 사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다들 이렇게 좋아하면서 왜 사지 않지? 그러다 대학교를 졸업할 무렵 스마트폰이 나았다. 바야흐로 전국민 영상매체 기록의 시대가 열린 것이다. 캠코더가 열지 못했던 그 시대.


스마트폰이 나왔다고 해서, 영상을 찍는 것이 훨씬 쉬워졌다고 해서 영상에 대한 경외감이 줄어들지 않았다. 오히려 사람들은 더욱 영상을 물고 뜯고 맛보고 즐기게 되었다. 유튜브가 지금의 유튜브가 된 데에는 스마트폰이 영향이 가장 크다. 내가 대학교때 까지만 해도 유튜브에 계정이 있는 사람은 내 주변에 나밖에 없었다. 아무도 영상을 찍지 않았으니까. 인스타그램이 나오고도 마찬가지다. 짧은 영상이 유행을 하고 나서도 여전히 '신기한' 영상에 사람들은 열광했다. 착시를 불러일으키는 촬영이나, 교묘한 편집으로 시각 정보를 교란시키는 영상은 여전히 사람들에게 경외감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찍은거냐, 이런 영상 어떻게 만드는거냐, 댓글들은 마치 마술쇼 후기와 다를바 없었다. 그랬던 영상이 이제 더이상 신기하지 않게 되었다. AI때문에. 이제 그런 신기한 영상에 사람들은 하나같이 다음과 같은 댓글을 단다. 'AI로 만든 거에요?'


내가 이걸 가장 크게 느낀 사건이 있었으니 바로 길예르모 델 토로 감독의 프랑켄스타인을 보러 가서이다. 천재이자 비쥬얼 아티스트 거장의 영화를 보면서, 붉은 천사의 모습을 보면서 내가 가졌던 생각은 아름답다거나, 이걸 어떻게 찍었을까 가 아니었다. AI로 만든걸까? 였다. 전 세계적인 비쥬얼 거장 감독의 영화를 보면서 나는 그의 작품에 AI가 쓰였을까를 궁금해했다. 그건 꽤나 충격적인 반응이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충격적이서 영화에 집중이 안 될 정도였다. 내가 이정도라면, 일반 대중은 얼마나 더 심할까? 이제 그 어떤 시각적 충격을 주는 영상이 나와도 사람들은 놀라지 않을 것이다. AI네. 그게 반응이 끝일 것이다. 경외감은 사라졌다. 신기해하지 않는다. 더이상 영상이 신기하지 않는 시대, 사람들은 어떤 영화를 기다리게 될까? 어떤 영화를 보게 될까? 아마 비쥬얼적인 충격과 경외감을 주요 무기로 삼는 장르부터 몰락을 맞게 되지 않을까 싶다. 스페이스 오딧세이, 판타지, 히어로물 등이다. 로저 디킨스나 에마누엘 루베즈키 촬영감독이 찍는 빛의 예술이 오히려 각광받을 확률이 크다. 레버넌트 나,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같은, 촬영의 질감이 느껴지는 영화들. 아이언맨과 타노스가 셔플 댄스를 추는 영상을 1초 만에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히어로물이 대중에게 어필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오우거와 엘프가 부대찌개를 끓여먹는 영상을 1초 만에 만들 수 있는 세상에서 판타지 물이 경외감을 불러일으킬 확률은 낮다. 마틴 스코세지 감독이 히어로 장르를 놀이공원 어트랙션에 비유해서 격렬한 찬반 논란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놀이공원 어트랙션 비유가 정확했다. 영화는, 영상은, 일정 부분의 경외감을 불러 일으키는 매체이고, 그 신기함을 최대로 이용한 것이 히어로물이었다. 그 시대가 끝난 것이다.


AI 덕에 영상이 경외감을 잃어가는 중인데 할리우드와 우리나라 대형 배급사들은 AI를 적극 활용하겠다고 선언을 했다. 얼마나 더 바보같은 결정을 해서 극장을 망쳐야 정신을 차릴지 모르겠다. 자신들이 해야할 것의 정 반대 행보를 해나가는 중이다. 지금도 비싸다고 극장을 안 가는데 리클라이너 관을 만들어 한 푼이라도 더 비싸게 받겠다고 하는 행보와 일맥상통한다. 아니, 지금 사람들이 좌석이 불편해서 극장을 안 가나? 접이식 의자관을 만들어서 만원을 받는게 더 낫지 않을까? 리클라이너관 주말 17,000원, 접이식 의자관 주말 10,000원 하면 사람들이 어딜 선택할까? 나는 아무리 봐도 접이식 의자관일 것 같은데. 초토화된 영화계를 끝내러, 막타를 치러 AI가 등장한 느낌이다. 목숨을 끊어놓기 위해서. 아예 죽고 나면 새 판이 짜질 것이다. 자국 영화 시장이 사라진 후에 다시 등장한 사례가 없긴 하지만, 어차피 지금 상태는 혼수상태니 빨리 죽는게 더 낫다. 그리고 새로운 판이 생겨나길, 새로운 플레이어가 등장하길 기다리는게 더 나을 것 같다. AI 화이팅해라. 궁극기 쓰고 시원하게 끝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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