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을 가는 것에 대하여

by Renaissance

칼날이 무뎌지면 어떻게 해야 하지? 갑작스럽게 집을 나와 친한 동생 집에서 얹혀살게 되면서 그야말로 우연히 하게 된 생각이다. 아마 그런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까지 칼을 가는 것에 대해 생각하지 않고 살았을 수도 있다. 어머니가 자주 들락날락하던 집에는 항상 칼이 잘 들었고, 칼은 한번 사면 잃어버리기 전까지 그렇게 날카로운 거라 생각했다. 친한 동생의 집에서 처음 요리를 한 날, 칼이 잘 들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받았다. 예전 집에는 항상 헹켈 식칼이 종류별로 있었는데, 친한 동생의 집에는 다이소 칼이 딱 하나 있었을 뿐이다. 칼을 갈아주는 곳을 수소문했지만 모든 것이 다 있는 서울에서 칼을 갈아주는 곳은 노량진 밖에 없었다. 그때부터 칼에 대한 탐구가 시작되었다.


야스리라고 칭하는 연마봉을 본 사람은 많을 것이다. 대부분의 어머니들은 칼이 잘 들지 않으면 야스리를 사용해 날을 세우고 사용하고, 그 외 연마 제품을 따로 사용하지 않는다. 예전엔 칼을 판매하면서 갈아주는 서비스도 같이 하는 포터 트럭이 동네를 돌아다녔고, 그런 트럭이 들어올 때마다 모든 주부들이 나와 칼을 맡기곤 했다는데 나는 직접 본 적은 없다. 이러한 사실도 모두 검색을 통해 알았을 뿐. 연마봉은 칼날을 일시적으로 세우는 것일 뿐 날이 완전 죽어버린 칼은 살리지 못한다. 날이 죽어버린다는 말은 칼날의 끝 각이 둥그렇게 되어 더 이상 요리 재료를 파고들지 못하게 된 다는 것이다. 연마봉을 사용하여 날을 세우며 사용해도 결국 각은 둥글게 변한다. 칼날의 윗부분을 깎아서 날을 더 크게 만들어줘야 한다. 그 역할을 하는 것이 숫돌이다. 그래서 칼은 연마를 할수록 점점 너비가 작아진다. 칼 면을 점점 깎아서 새로 날을 만들기 때문에.


숫돌은 거친 것이 있고 부드러운 것이 있다. 이를 표현하는 단위는 사포와 같은 '방'이다. 다이소에서 파는 저렴한 양면숫돌은 한쪽이 180방이고 다른 한쪽이 300방이다. 이는 매우 거친 방 수로 거친 숫돌일수록 싸다. 날이 무뎌질 때마다 300방 숫돌로 갈면 칼은 금방 없어질 것이다. 너무 많이 갈아내 버리기 때문이다. 대다수 셰프들이 일반적인 채소 써는 용도의 칼을 가는 방수는 1000방이다. 방수가 올라갈수록 숫돌의 가격은 지수함수처럼 커진다. 하지만 일반적인 용도의 스테인리스 칼은 1000방이면 충분하다. 그럼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는 뭐길래 자꾸 일반적이라고 하느냐. 생선회를 써는 칼의 경우 1000방으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생선도 종류에 따라서 기름기가 많거나 육질이 단단한 생선은 날을 매우 날카롭게 갈아야 한다. 날을 날카롭게 갈려면 그만큼 높은 방수의 숫돌이 필요하고, 그만큼 날이 날카로우려면 칼의 경도가 높아야 한다. 경도가 높지 않은 칼은 높은 방수의 칼로 갈아도 날이 날카로워지지 않는다. 그래서 회칼은 탄소강을 섞어서 경도를 높인 특수강 소재의 칼이 많고, 3000방이 넘는 숫돌로 연마한다. 이 수준의 숫돌부터는 숫돌 재료도 달라지는데 낮은 방수의 숫돌은 탄화규쇼 재질인데 반해 높은 방수의 숫돌은 세라믹이나 유리, 다이아몬드 재질이다. 이 정도 수준의 칼과 숫돌을 사용하시는 분들은 인조숫돌에 만족하지 못하고 천연석을 사용하시는데 천연석의 세계는 깊고 오묘하여 나 같은 범인은 알 필요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일자면도기를 사용하게 되면서 한번 경험해 보긴 했다. 일자면도기를 사용해보고 싶어서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추천받은 면도기를 샀고, 집에 있는 가장 고방수 숫돌인 3000방 숫돌로 갈아보았으나 면도가 잘 되지 않았다. 선배님들에게 물어보니 면도기는 6000방 이상의 숫돌로 마무리를 해줘야 면도가 제대로 된다고 하는데 그 정도 숫돌의 가격은 어마무시하다. 한 선배님이 뉴비가 귀여웠는지 자신에게 천연석 숫돌이 많다며 한번 사용해 보겠느냐 하며 빌려주셨다. 그래서 천연석을 처음 접했고, 면도를 잘할 수 있었다. 당연하게 일자면도기는 모두 탄소강이다.


처음 칼을 갈기 위해 자료조사를 하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가 방대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뭔가 경외감과 희열을 느꼈다. 칼의 강재만 해도 수백 가지가 넘는 방대한 세계고, 숫돌 또한 마찬가지다. 이 글에는 최대한 간략하게 적어본 것이다. 나는 35년 가까이 그것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고, 알아야 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칼은 스테인리스가 최고인즐 알았고, 날이 무뎌지는 칼은 싸구려인 줄 알았다. 내가 안타까운 이유로 친한 동생의 집에서 얹혀살게 되지 않았다면, 날이 무뎌진 칼로 요리를 해보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몰랐을 세계다. 새로운 환경에 가야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 40년 된 구옥에 살았기 때문에 얻게 된 새로운 지식도 셀 수 없다. 잘 갈려진 칼을 보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이 잘 풀려 지금 아파트에 살게 되면서 잘 나가지도 않고 똑같은 생활 패턴으로 살고 있는데, 이게 맞는 건지. 이사 온 지 1년 정도 됐는데 내가 새로 깨달은 것이, 새로 접한 세상이 있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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