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by Renaissance

모든 것이 얼어붙는 영하 12도의 겨울날. 나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집에 있었다. 이 집을 지키는 게 나의 사명이라도 되는 듯 비장한 표정과는 다르게 몸은 벌벌 떨렸다. 보일러의 온도를 아무리 높게 설정해 봐도 외풍이 심한 구옥은 온도가 올라가지 않았다. 일반적인 겨울 날씨에도 그러는데 한파라고 보일러가 갑자기 힘을 낼 리도 없고, 구옥이 힘을 내어 외풍을 밀어낼 일도 없다. 내복을 두 장 껴입고 후드와 패딩을 입었다. 방한 양말, 방한 슬리퍼, 장갑에 우샨카를 써도 추웠다. 장갑을 끼고 있으면 스마트폰을 할 수도, 키보드를 두드릴 수도 없다. 음악을 틀어 놓고 오늘 하루가 지나가기만을, 한파가 지나가기만을 빌었다. 발가락은 몇 해 전에 동상에 걸린 이후 툭하면 시리다. 마치 얼음물에 발가락을 담가놓은 것 같은 기분인데 단순히 신경 이상으로 그렇게 느껴지는 걸 아는데도 혹시나 발가락이 떨어져 나갈까 두려웠다. 사실 방한양말에 방한슬리퍼를 신고 있기에 발에는 땀이 나고 있었다. 그럼에도 발가락은 이토록 시린 것이다. 드라이기로 양말을 말리고 발가락을 녹인 후 다시 양말을 신고 방한슬리퍼를 신기를 반복했다. 수도가 얼지 않도록 싱크대에 물을 조금씩 흘리는 것 말고 딱히 집을 관리할 것은 없어 보였다. 보일러가 있기에 집안 온도가 영하로까지는 떨어지지 않았다. 문제는 화장실과 세탁실이었다. 이 집은 화장실이 바깥에 있을 정도로 오래된 구옥이다. 이 집은 서울 한복판, 서울의 중심을 점으로 찍으라고 하면 여기가 찍히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중앙에 위치했는데 서울이 무궁무진한 발전을 이룰 때 그것을 피해 갔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그 덕에 나처럼 돈이 없는 사람이 서울에 살 수 있는 것이라 내 입장에서는 고마울 따름이다. 웨이터, 청소부, 공사장 인부, 배관공, 용달, 보모 등 세계에서 가장 부동산이 비싼 도시도 이런 저임금 노동자가 필요하다. 부동산이 비싸다고 해서 저임금 노동자에게 고임금을 주진 않는다. 이렇게 개발의 사각지대에 삼삼오오 모여 산다. 하지만 이 집도 단군 이래 최대 재개발을 추진 중이다. 단위 면적당 인구가 워낙 많아서 수많은 욕망을 충족시켜야 하기에 재개발이 지지부진한 것뿐이다. 언젠가는 개발이 될 것이다. 나는 쫓겨날 것이고. 또 다른 구옥을 찾아 떠날 것이다. 그리고 그곳도 재개발이 될 것이고, 나는 다시 쫓겨날 것이다. 서울에서 모든 지역이 재개발되어 아파트가 들어서는 순간 서울의 수명이 끝날 거라 생각한다. 가진 자만 살 수 있는 도시에서는 그 누구도 대접받을 수 없다. 대접을 받을 사람만 존재하고 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화장실이 바깥에 있는 것은 겨울 이외엔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하루에 소변과 대변을 그렇게 많이 보는 것도 아니니까. 다행히 온수가 나오기에 샤워를 하는 것도 별로 문제 되지 않았다. 하지만 한파에는 수도가 얼고 변기가 얼었다. 물을 틀어놔도 얼 정도이니 계속 체크를 하는 수밖에 없었다. 남들은 캠핑용으로 생각하는 등유 난로를 나는 집 화장실에 틀었다. 한파가 지나가기 전까지 등유가 버티기만을 빌 수밖에 없다. 만원 정도면 등유 난로가 꽉 차지만 불을 때우면 24시간도 가지 않는다. 변기가 얼면 똥도 싸지 못한다. 가난한 인간에게도 존엄성은 있다. 인간의 존엄성은 의외로 사소한 것에서 금이 간다. 화장실이 아닌 곳에서 똥을 싸야 한다던가. 얼어붙은 변기에 똥을 싸고 똥의 열기로 얼음이 녹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던가. 존엄성을 잃지 않기 위해 기필코 화장실을 사수해야 한다. 등유 난로를 켜 놓으니 집보다 화장실이 더 따뜻했다. 어차피 등유 난로가 꺼지지 않는지 체크를 하기 위해 왔다 갔다 하느니 그냥 화장실에 있기로 했다. 한파로부터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화장실에서 잠을 포기하고 쪼그려 앉아서 생각했다. 내 인생이 어쩌다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내가 어떻게 살아왔기에 이런 형벌을 받는 것인가. 난방이 되지 않는 고시원 단칸방에 산다던가 서울역에서 노숙을 하는 분들에게는 이것이 형벌로 보이지 않겠지. 그래. 이것은 형벌이 아니다. 단지 인생이라는 것이 나에게 쥐어준 경품인 것이다. 경품 추천을 하면 누군가는 냉장고를 받고 누군가는 티비를 받지만 나는 열쇠고리라던가 수건 따위를 받았다. 경품 1등에 당첨된 적은 한 번도 없다. 그것과 마찬가지로 인생이 경품 추천을 했으리라. 누군가는 서울 강남에 자가를 가진 부모님이라는 경품을 주고, 누군가에겐 전라남도 고흥에 전셋집을 가진 부모님을 경품으로 주고. 시간이 갈수록 부모님은 더 가난해졌고, 서울에서 태어난 친구는 더 부유해졌다. 억울하면 서울에서 태어났으면 될 일이다. 부모님이 서울 부동산에 투자하지 않은 원죄는 너무 컸다. 그 결과로 가난이라는 십자가를 지고 평생을 살아야 한다. 속죄받을 방법은 없다. 그리스도가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희생하셨듯이, 재림하셔서 서울의 부동산을 무의 상태로 만든 후 승천하시지 않는다면 이것은 바뀌지 않을 것이다. 담배를 피우기 위해 2평 남짓한 마당으로 나가니 한기가 내복을 뚫고 들어왔다. 담배를 꺼내 불을 붙이기 위해 장갑을 잠깐 벗는 것 만으로 동상에 걸릴 것 같은 지릿지릿한 느낌이 들었다.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고 들이마시자 목구멍에 맺힌 침이 얼어붙는 느낌이다. 담배를 비벼 꺼버리고 다시 화장실에 들어가 등유 난로에 손을 뻗어 녹였다. 등유 난로의 지침을 보고 남은 연료를 확인하며 시계를 보니 새벽 두 시. 예보상 네시까지 온도가 더 떨어진다고 되어있다. 버텨보자고 생각하면서도 자꾸 눈이 감긴다. 캠핑을 다닌 적이 없기 때문에 등유난로를 켜놓을 때는 환기를 시켜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렇게 일산화탄소에 중독되어 가며 나른한 눈을 감는다. 이 또한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 위해서는 대단한 실행력이 필요하다. 베란다로 넘어가는 것이, 손목을 긋는 것이, 목에 줄을 걸고 의자를 발로 차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실행력이 필요한 일인지는 시도해 본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다. 수면제 따위로 사람이 죽을 거라는 착각은 게으른 작가들이 창조한 상상이다. 마지막으로 무슨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무언가 행복한 상상을 했던 것 같다. 만약 과거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바꿀까 따위의 실없는 생각. 돌아갈 수 있다고 해서 등유난로를 끄진 않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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