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돌아가신다는 표현이 참 묘하다고 생각했다. 인간이 어디에서 왔길래 돌아간다고 표현하는 걸까? 소천, 서거, 별세, 영면, 입적 등 죽음을 가리키는 말은 정말 많지만 가장 흔하게 쓰는 말은 역시 돌아가셨다는 표현이다. 미지의 세계를 뜻하는 걸까 자연을 뜻하는 걸까.
할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돌아가셨으니 내가 처음 겪은 가족상은 할머니였다. 할머니는 치매로 요양병원에 계시다가 내가 취직하고 4개월만에 돌아가셨다. 취직했다고 인사를 하러 갔을때 할머니는 나를 알아보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나는 할머니의 죽음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할머니와의 막역한 사이도 아니었고 공유하는 추억도 많이 없다. 단지 인간 생명의 덧없음을 피부로 느끼게 되었던 것 같다. 광고대행사에 취직해서 첫 4개월 동안 출근한 날 퇴근한 적이 거의 없었다. 매일 택시를 타고 퇴근을 해야했고, 할머니가 돌아가셨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에도 나는 야근 중이었다. 집에 가는 택시 안에서 생각했다. 내가 만약 집에 도착하기 전에 교통사고가 나서 죽는다면 나는 어떤 생각을 할까. 지난 4개월간 친구도, 여자친구도 만나지 못하고 회사에만 붙어있다가 죽는다고 생각하니 헛구역질이 났다. 그래서 회사를 그만두겠다고 생각했다. 장례를 치르고 회사로 돌아와 그만두겠다고 얘기했고, 윗사람이 3년을 채우면 무슨 일을 하든 경력을 인정받을 수 있으니 그때 나가라, 그땐 말리지 않겠다고 하여 나는 3년을 채우자마자 그만뒀다.
외할아버지는 여든이 넘으셔서도 정정하시다가 암에 걸리신 후 갑자기 노화가 빨라졌다. 정정하던 분의 에너지를 암이 모두 뺏어가는 느낌이었다. 수술했다가 재발하기를 반복하니 한번 수술할때마다 기력이 약해지시더니 치매기를 보이셨다. 그렇게 2년이 흐른 후에 돌아가신거라 마음의 준비가 어느 정도 되었던 것 같다. 할머니때만큼 놀라지 않은 것은 한번 겪어봐서이기도 하고,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서이기도 하고, 내가 4개월간 야근을 하면서 살고 있지 않아서이기도 하다. 비록 성공적이진 못하지만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있고, 자다가 죽는다고 해도 마지막 순간에 기억할 만한 것들이 많다.
공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나는 바로 장례식장에 가지 못하고 미팅 일정을 조율하고 있다. 제작사의 갑질에 반항해보고 있지만 부질없는 짓이다. 어차피 내가 이길 수 있는 싸움이 아니다. 어차피 수명은 유한하고 죽고나면 끝없는 암흑인데 이런 자존심 싸움이 같잖다. 연출에 대한 미련만 없으면 갑질을 당할 일도 없다. 이딴식으로 하면 못한다고 때려치면 된다. 사실 때려치려고 마음을 먹었지만 주변 감독들의 만류로 때려치지 않은건데, 가까운 사람이 죽어 무의 세계로 간다고 하니 다 엎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나에게 실존주의를 강화시켜준다. 실존주의자에게 죽음 후의 이야기는 중요치 않다. 장례를 후하게 치뤄준다고 하여 죽은 사람이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울지 않았다는 이유로 죽게 된 뫼르소처럼, 장례는 살아남은 자들이 예의를 차리는 곳이다. 자, 예의를 차리러 가자. 죽음의 간접체험 장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