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인까지 마치고 집에 돌아와서도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게 잘 실감이 나지 않는다. 십여년전 친할머니가 돌아가셨을때는 슬픈 마음이라도 들었지만, 이번엔 그런 느낌도 별로 없다. 친할머니보다 외할아버지와 공유한 추억이 더 많은데 왜 그러는 것일까.
외할아버지는 오형제를 낳았다. 그래서 가시는길 외롭진 않으셨던 것 같다. 오형제는 모두 술을 잘 마신다. 건강 때문에 마시지 못하는 딸들도 원래는 술을 잘 했다. 아들들은 건강이 안 좋지만 여전히 술을 많이 마신다. 그래서 온가족이 술한잔 마시지 않았던 친할머니 장례식과 다르게 외할아버지 장례식은 술로 시작해서 술로 끝났다. 나는 엄마를 닮았고, 외가쪽 취급을 받았다. 성씨보다 중요한건 성향이란걸 깨달았다.
아버지를 여읜 고통을 술로 달래는 아들들이 외할아버지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나에겐 그저 고지식, 가부장, 구두쇠 정도로 기억되는 그를 사람으로서 이해하게 된 것은 죽은 이후였다. 친할머니도 그런 식으로 알게 되었는데, 외할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고, 친구가 별로 없었다. 주량이 엄청 셌지만 일로 마셔야하는 상황이 아니면 마시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가 없었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았고, 올라갈 수 있는 곳까지 올라갔으며, 주변에 항상 사람이 많았지만, 딱히 가까운 친구를 만들지 않으셨다. 그래서 장례도 생각보다 많은 음식이 남았다. 사람보다 화환이 많이왔다. 당신은 참 나와 비슷한 사람이었군요 할아버지.
친구가 많지 않아도 가족이 많아 썰렁하지 않았던 장례식을 생각해보면, 비혼주의에 애는 더욱 낳을 생각이 없는 나의 장례는 어떠할지 상상이 간다. 장례를 치르지 않는 것이 나을 것 같은데, 어차피 장기기증도 신청해놓은 터, 시체를 기증하는 것도 생각해봐야겠다. 의대를 다니던 전여친이 시체 기증은 절대 하지 말라고해서 신청하지 않았는데, 죽은 후에 조롱 당하는게 무슨 상관인가. 내가 알 것도 아니고.
친할머니가 죽은 뒤에 실존주의를 다시한번 되새기며 회사를 그만둘 결심을 했던 것처럼, 외할아버지의 죽음도 나의 인생에 분기점이 될 듯 하다. 삶은 유한하다는 사실을, 죽음은 매우 가까이 있다는 사실을, 나는 오늘도 죽음과 한 걸음 가까워졌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죽어가고 있음을 또한번 느끼고 있다. 손자라는 놈이 장례식에서 울어주지도 않고 슬퍼하지도 않으며 자신의 삶에 영감으로나 쓰고 있다는 사실을 외할아버지는 모르시겠지. 하지만 그게 내가 하려고 하는거 아닌가. 누군가에게 영감을 주고 떠나는 것. 영화를 만들어 불특정 다수에게 영감을 주는 것. 그러니 서운해마시길. 제가 그 영감을 잘 활용해서 더 나은 무언가를 만들어 볼 터이니.
안녕히 가세요.
더 많은 대화 나누지 못해서 아쉬워요.
할아버지가 그랬듯, 저도 살가운 성격이 아니라서요.
우린 매우 닮았네요.
서로가 그것을 몰랐을뿐.
아쉬움은 살아남은 자의 몫이니,
고통없는 암흑에서 평안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