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화는 어렵다. 해도 해도 너무 어렵다. 생각하는 능력을 가진 영장류 인간은 지능과 상관없이 주관적으로만 사고할 수 있게 되어있다. 4차원으로 가는 것에 성공한 한 단계 높은 차원에서 3차원 세계를 내려다볼 수 있겠지만, 그것조차 주관적으로 생각할 것이다. 히어로가 난무하는 시대에 진짜 초능력은 자기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일 것이다.
역도를 하는 김에 더 이상 연출 기회에 연연하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써보자 했다. 복싱에 올인하던 시절과 그렇게 다를 바가 있나 싶을 정도로 역도에 올인하는 스케줄이다. 미팅이 있어도 가급적 오전으로 잡고 오후엔 역도에 간다. 한 시간을 가야 하니 오후에 미팅을 잡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예전 같으면 가급적 상대방의 시간에 맞추겠지만, 연출 안 해도 된다는 입장이 되니 내가 더 이상 맞출 필요가 없다. 삶이 편해졌다.
그런 식으로 2주를 보내니 영화판이 달리 보인다. 상업영화 연출 지망생이 아닌 관객의 입장에서 바라보니 개봉 영화들이 기대가 안 된다. 영화판 내에 들어와 있는 관계자로서 영화 시장의 위기는 심각하지만, 관객의 입장이 되니 더 심각하다. 더 이상 한국 영화가 기대가 안 된다. 가장 문제는 뭔가 새로울 것이라는 기대가 아예 없다는 것이다. 이번 추석에 무려 네 편의 한국영화가 개봉하는데 기대되는 작품이 하나도 없다. 영화관계자로서 시사회 초대는 모두 수락하고 개봉하는 상업영화를 전부 챙겨보다가, 관객의 입장에서 볼 영화를 고르려고 하니 보고 싶은 영화가 하나도 없다. 여름 텐트폴 영화들도 내가 만약 일반 관객이었다면 볼 영화가 하나라도 있었을까.
객관화가 조금 되고 나니 내 영화도 재미가 없다. 내가 쓴 시나리오도 마찬가지다. 뻔했다. 이런 걸 만들면 상업에 갈 수 있겠지, 가 아니라 세상에 없던 영화를 만들어주겠어, 였어야 했다. 이런 걸 써야 투자를 받을 수 있을 거야, 가 아니고, 기존에 없던 새로운 걸 써주겠어, 였어야 했다. 영화판에 들어온 지 7년 만에 그걸 깨달았다. 물론 역도를 한다는 이유만으로 이게 된 것은 아니고, 조금이나마 객관적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기까지 7년이 걸렸다는 표현이 더 맞을 것이다. 재밌는 영화를 만들고 싶어서 영화판에 들어와 놓고, 마치 승진을 바라는 직장인처럼 일을 하고 있었다.
영화에 의연하게 살아보려고 한다. 7년 동안 최선을 다했지만 안 됐지 않나. 노력이 부족했다고 하기엔 동기간 나보다 스크립트 많이 쓴 연출가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 열심히 해서 되는 바닥이 아니니 잠시 내려놓고 만들고 싶은 영화 스크립트를 쓰자. 오래도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