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이 개천절과 맞물려 장기 연휴가 되었다. 직장인들에겐 온누리의 평화일 것이다. 나같은 프리랜서에겐 별 감흥이 없다. 오히려 마음에 안 드는 것이 부산국제영화제가 연휴 끝나자마자 열린다는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말하기 전에 부국제와의 연에 대해 먼저 말해볼까 한다.
대학교 와서야 예술영화와 독립영화를 보기 시작했다고 쓴 적이 있다. 씨네필이 아니기에 영화제를 찾아다니지 않았다. 이미 학교 도서관에도 안 본 고전 영화가 넘쳐났다. 스탠리 큐브릭과 히치콕도 대학교에 와서야 보기 시작했으니 대학교 내내 고전만 봐도 다 못볼 정도로 볼 영화가 차고 넘쳤다. 회사에 들어가고 나서는 시간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일화중에 하나가 설인가 추석인가에 이번 추석처럼 장기 연휴가 있었다. 한번도 연휴에 제대로 쉬어보지 못했기에 연휴 전체를 쉬지는 못할 거라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전무님이 회의실에 들어와 아무렇지 않게 한마디 하셨다. '당일은 쉴거지?' 정말 무서운 말이다. 당일'만' 쉴거지가 아니라, 당일'은' 쉴거지 라고 물어보다니. 설과 추석은 명절 당일 앞뒤가 연휴인 3일짜리 명절이다. 명절 하루만 쉬었다 오라는 거다. 실제로 그렇게 했다. 그 일이 있은 후부터는 아무리 장기 연휴가 있어도 어차피 못 쉴 명절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활을 했기 때문에 영화제는 꿈도 꾸지 못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나서 마음껏 놀 때, 새로 사귄 여자친구가 부국제에 가자고 했다. 자신은 매년 부국제에 간다면서. 내가 영화를 엄청 좋아하고 고전을 많이 봤다는 점을 높게 샀던 여자친구가 내가 영화제에 간 적이 없다고 하자 놀라던 모습이 기억난다. 그래서 처음으로 영화제에 갔고, 첫 영화제가 부국제였다. 재밌었다. 2박 3일로 부산에 가서 해운대에 숙소를 잡고 하루 종일 영화를 보고 저녁엔 술을 마시는 여행을 하고 서울로 돌아왔다. 그렇게 2년 연속 부산에 가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다가 내가 영화를 하겠다고 영화학교에 들어가며 부국제로의 발길이 끊겼다. 동기는 자신의 단편 영화가 부국제에 초청되어 감독 자격으로 가는데 관광객으로 가는 것이 껄끄러웠다. 맞다. 내 열등감 때문이다. 감독놈들의 열등감은 말도 못하게 높아서 초청되지 않은 영화제는 가지 않겠다는 감독들은 길거리 담배꽁초만큼 많다. 이제 영화를 안 해도 된다는 마인드셋으로 바꾸고, 영화와 한 걸음 떨어지고 나니 부국제도 관광객으로 마음으로 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런 기회가 왔다.
국토균형발전의 일환으로 영진위가 부산으로 내려갔다. 부국제가 구축한 영화도시 이미지의 수혜를 부산시가 받은 것이다. 서울 집중화에 반대하고 합계출산률 0.5인 서울이 한국의 미래를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서 국토균형발전에 적극 찬성한다. 하지만 하려면 제대로 좀 해라. 영진위를 부산으로 옮긴다고 남양주 종합촬영소를 폐쇄할거면 부산에 그만한 세트장을 만들어야 할 것 아닌가. 그런거 없다. 그리고 종합촬영소를 부영에 매각해버렸다. 부산에 종합촬영세트장을 짓는다는 계획은 요원하고, 부영이 자기땅을 어떻게 쓰든 상관없게 되었지만 여튼 당분간 부영은 세트장을 헐지 않고 세트장을 활용하기로 했다고 한다. 이게 뭔 짓거리인가 싶다. 매각해놓고 나라에서 돈을 주고 세트장을 운영하다니. 자산어보 같은 저예산 사극이 나올 수 있는 이유는 남양주 종합촬영소 때문이다. 조선시대 민가와 대궐을 영화 찍을때마다 지으려면 미술비가 상상을 초월한다. 국토균형발전의 일환으로 부산을 영화의 거점 도시로 만드려면 헐리우드 처럼 대형 스튜디오를 지어라. 부산의 땅값때문에 무리라고 한다면 영화 거점 도시를 옮겨라. 영화 도시가 꼭 대도시일 필요는 없지 않나. 사막에도 지을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 놀고먹는 땅이 얼마나 많은데.
영진위가 부산으로 내려갔기 때문에 영진위 지원사업에 합격하면 무조건 부산에 가야한다. 오랜만에 영진위 사업에 지원을 했는데 1차에 붙어서 부산에 내려가야하고, 그 시기가 하필 연휴가 끝난 직후이다. 연휴가 길기 때문에 각자 연차를 앞뒤로 어떻게 붙이느냐에 따라 각양각색의 이동이 이루어질 것이다. 따라서 KTX 예매 눈치보기가 진행중이다. 원래 부산국제영화제 기간에 KTX표 눈치게임이 벌어지는데 이번엔 추석연휴가 겹친 것이다. 연휴를 피해서 열었어야 함이 맞는 것 같은데 부산국제영화제는 오히려 연휴가 끝나마자 개막하는 것으로 날짜를 정했다. 과연 옳은 결정일까. 여튼 내려간김에 부산국제영화제를 즐겨보려 한다. 마지막으로 부산을 갔던 것이 찍던 영화 관련 미팅 때문이었다. 그게 벌써 6년 전이다. 너무 오랜만에 내려가는 거라 숙박도, 예매도 잘 모르겠다. 누구를 만나야 할 지 동선을 어떻게 짤 지도 모르겠다. 이런 걸 너무 안 하며 지내온 지난날의 나를 반성한다. 오랜만이다 부국제. 간만에 만나는데 잘 부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