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색을 만드는 것이 답이었다

by Renaissance

도대체 무엇을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지 답답할 때가 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해 봐야 기회가 오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 문학 책을 보면 소설가나 화가가 주인공인 경우가 많고, 글쓰기와 회화를 같이 하는 것이 당연했던 시절이라 소설가이자 화가인 주인공도 많이 등장한다. 자신의 재능을 탓하면서 우울해하거나, 재능은 있지만 세상이 알아주지 않아 갑갑해하는 경우가 많이 등장한다. 어느 시절에나 예술을 하는 사람은 불안해했던 것 같다. 서양미술사를 보면 대중의 인정을 받지 못해 불안해하는 작가가 부지기수다. 끝없이 불안해하다가 우연한 계기로 큰 성공을 하게 되거나, 죽을때까지 인정받지 못하다가 사후에 유명해지는 사람도 많다. 인상파 작가들은 특히나 잘 알려져 있는데, 인상파 작품들이 여전히 현대에도 가장 인기가 있어서다. 시간을 더 거슬러 올라가 르네상스 시절로 가도 별반 다르지 않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자소서를 썼다니까!


카메라 옵스큐라의 발명으로 데셍의 비약적인 발전이 이루어진 것은 널리 알려졌다. 그림에 관심이 있거나, 카메라의 역사를 공부한 사람들은 잘 알텐데, 어두운 방 벽에 구멍을 뚫으면 벾 바깥 풍경이 상하 반전되어 맺히는 현상이다. 카메라의 원리인데 첫 기기는 15세기 정도에 고안되었을 거라 추정되고, 점차 장비가 발전되어 방 크기가 아닌 곳에 상을 맺히게 하는 기기가 17세기 정도에 나왔다. 그래서 17세기부터 그림이 완전히 달라진다. 17세기 이전 그림과 비교해보면 말도 안될 정도로 그림이 정교해진다. 우리가 르네상스라고 하면 떠오르는 생동감 넘치는 인물 묘사나 사진같은 풍경화는 모두 카메라 옵스큐라 이후의 그림들이다. 카메라 옵스큐라가 르네상스를 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렇게 너도나도 데셍을 잘하게 되자 더이상 대상을 세밀하고 정교하게 그리는 것이 그림 실력의 척도가 아닌게 되어버렸다. 그럼 무엇이 중요해졌을까? 바로 색이다.


유화는 고대 그리스부터 이미 그려지기 시작했는데, 역사가 길 뿐 색이 발전하는 데에는 한참 걸렸다. 유화로 표현할 수 있는 색이 한정적이었다. 어떤 안료를 어떤 비율로 섞어야 특정 색을 낼 수 있는지 연구를 해야했다. 르네상스는 새로운 색을 고안하기 위한 작가들의 격전장이었다. 괜히 그 시절 화가들이 수학자, 화학자, 물리학자가 많았던 것이 아니다. 그들은 화가이자 과학자였다. 나만 낼 수 있는 색을 만들면 나만 그릴 수 있는 그림이 탄생하는 것이다. 즉, 르네상스 시절 화가가 성공하기 위한 길은 새로운 색을 만드는 것이었다. 너무나 뛰어났지만 운은 더럽게 없던 세기의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다른 방면에 비해 회화에 별 관심이 없었던 걸로 추정되지만 그도 후원을 받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그래서 그림이 몇 개 없다. 그 중 자신만의 색을 고안했던 그림이 안료의 안정성이 떨어져 색이 다 바래버린 것도 있다. 이 나라 저 나라를 전전긍긍하며 노년에는 변방 프랑스에 가서 그림을 그렸던 세기의 천재도 자신만의 색을 내기 위해 노력했던 것이다.


상업영화 투자를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할까. 한동안 '겟아웃'같은걸 쓰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그 얘기는 '겟아웃'같은 영화의 시나리오를 쓰면 그 가치를 제작자들이 알아봐줄 거라는 소린데, 어림없는 소리다. 처음 개발한 색을 만들면 성공에 가까워졌던 것처럼, 지금 영화판에서 신인 감독이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일까? 좋은 시나리오를 쓰면 된다는 얘기는 반 고흐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에게 억울하면 더 좋은 그림을 그리라고 하는 것과 똑같다. 겟아웃이 그 정도의 성공을 거둘 거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그래서 초저예산으로 스타 캐스팅 한 명 없이 만들어졌다. 겟아웃 같은 시나리오를 쓰면 된다는 소리는 겟아웃에게도 통하지 않는다는 소리다. 시나리오 단계에서 위대한 영화임을 알아봤다면 마이클 B 조던 캐스팅하고 안타고니스트는 앤 해서웨이랑 메릴 스트립을 썼을테지. 무엇을 해야할까. 새로운 색을 만드는게 뭘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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