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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Dec 20. 2023

늙는 것의 이점

나이를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3인칭으로는. 


1인칭으로는 노화를 매우 잘 느끼고 있다. 전과 다르게 에너지가 급감한 것을 느낀다. 신체적으로 전성기가 지나갔음은 물론이요 건성과 지성 피부가 바뀌거나 침 분비량이 줄어드는 것도 느낄 수 있다. 모두 1인칭으로 느끼는 노화이지 3인칭으로 느끼는 노화가 아니다. 거울 속에 비치는 나, 혹은 사진으로 찍힌 나를 보면서 3인칭 시점이라고 착각하면 안 된다. 내가 봤을때 거지같은 나온 사진도 남이 봤을땐 잘 나왔다고 얘기하는 이유는, 남이 보는 나와 내가 보는 나가 같지 않아서이다. 인간은 객관화를 하지 못한다. 


내가 어느 정도의 나이로 보이는지 자각하지 못하고 살아간다. 이젠 늙었으니 싱글 시장에서 값어치가 떨어진 정도는 당연히 알고 있다. 나는 절대 잘생기지 않았고, 그것을 어렸을때부터 잘 알고 있었으며,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몸을 키우고 외모를 가꿨다. 그런 일련의 과정으로 남성 호르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20대에 곧잘 연애를 했다. 어떤 공간에 가더라도 내가 받는 시선의 양이 있었다. 이게 너무도 당연해서 그 시선이 줄어들 때까지 느끼지 못한다. 35살 즈음 처음 느꼈다. 뭔가 이상했다. 그리고 그 이상함은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 줄어든 것임을 깨닫는다. 한번 줄어들기 시작하자 속도가 붙었고, 곧 내가 받는 절대 시선량은 0이 되었다.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 그것 또한 금방 적응이 되니 어쩜 이리 다행일 수가. 늙어서 그러려니 했다. 그래도 내가 얼마나 늙었는지 자각하지 못했다. 


20년만에 찾은 프랑스에서 사람들이 친절해졌음을 느꼈다. 인종차별도 당하지 않았는데 한류의 영향인가 싶었다. 그런 소회를 다른 감독들과 나누다가 한 감독이 나에게 말했다. 그때부터 20년 나이를 먹었으니 그 영향도 있을 거라고. 돌려서 말했지만 내가 늙어서 존중받는다는 얘기였다. 망치가 뒷통수를 쾅하고 내리치는 느낌이었다. 너무 맞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순해빠진 외모때문에 어렸을때부터 시비가 많이 붙었다. 만만해보이니까. 길거리 으슥한 곳마다 삥을 뜯기고, 동대문에서 무서운 형에게 잡혀 강매를 당했다. 성인이 되고도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어깨를 치고 지나가는 사람,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사람 등 생전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 당하는 공격은 당해도 당해도 익숙해지지가 않았다. 몸을 키운 것은 단지 이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위협적인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실제로 외모를 탈바꿈하니 삶이 편해졌다. 길거리에서는 사람들이 알아서 피해갔고, 나에게 모욕적인 언사를 하는 사람은 줄어든 정도가 아니라 아예 없어졌다. 험상궂은 외모가 성격과 전혀 맞지 않으니 나와 깊은 관계를 나눈 이성친구들은 본연의 외모로 돌아오길 원했다. 막상 사귀고 보니 순둥순둥한 사람인데 왜 그런 외모를 하고 다니느냐며. 나이가 들고도 사람들이 나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이유가 나의 외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단단한 오산이었다. 나는 나이가 들어 사람들의 존중을 받게 된 것이다. 


모든 것이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내가 나이가 들었기 때문에 존중을 받는다는 낌새는 많이 있었다. 내가 알아채지 못한 것이다. 역도를 하면서 동시기에 같이 등록한 친구와 선의의 경쟁을 하는데 압도적으로 내가 밀렸다. 그에게 찬사를 보냈더니 나에게 이 나이 먹고도 역도를 하는 것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나는 내가 그렇게 나이들어 보이나 싶었는데, 그 생각 자체가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다. 내가 나이들어 보이는게 아니라, 나이가 든 거다!!! 어찌 이리 어리석은지. 


내가 이정도로 어리석었던 이유는 내가 모두에게 존댓말을 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나는 모두에게 존댓말을 한다. 예외는 없다. 유치원생에게도 존댓말을 한다. 비트겐슈타인주의자는 아니지만 언어가 내 행동에 영향을 준다는 것에는 전적으로 동의하기 때문이다. 내가 말을 놓으면 상대방을 하대하게 된다. 그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모두에게 존댓말을 한다. 존댓말을 사용하면서 상대방을 하대 하는 것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회사에서도 유명했다. 그 누구에게도 말을 놓지 않는 사람으로. 물론 단점도 존재한다. 상대방에게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나는 존중의 의미로 말을 놓지 않는 것이지만, 상대방은 내가 절대로 친해질 수 없는 사람처럼 느끼게 된다. 그래도 단점보다 장점이 훨씬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난 여전히 존댓말을 고수하고, 스크립터를 열살 넘게 어린 친구를 썼어도 문제없이 촬영을 했다. 나보다 한참 어린 상대에게 존댓말을 사용하고, 상대방도 나에게 존댓말을 사용하면, 같은 나이처럼 느껴진다. 나보다 나이가 많든 적든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면 나이가 인식되지 않고 오롯이 사람 대 사람처럼 느껴진다. 역도장에서 나에게 존중을 표현한 친구에게도 당연히 난 존댓말을 사용했고, 그래서 나와 그의 나이차이를 인식하지 못해서 그런 사단이 난 것이다. 난 나이 든 것이 맞다. 


단순히 나이를 먹었다는 이유로 존중을 받는 세상이라니. 존중받는게 이렇게 쉬운 거였나. 지금껏 막대먹은 사람으로 보이지 않기 위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 얼마나 애썼는데. 나이를 먹으면 자동으로 존중을 받는다. 물론 속으로는 꼰대라고 욕하거나 나이를 똥꼬로 처먹은 새끼라고 욕하고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앞에서는 존중하는 척이라도 해주지 않나. 이 얼마나 벼슬인가, 나이란. 피부는 얇아지고 모발도 가늘어지며 침 분비량도 줄어들고 몸에서 냄새가 나고 체력은 하루가 다르게 떨어지고 시차적응도 안 되고 불면증은 심해지고 잔병치레도 늘어나고 보험료도 올라가지만, 나이를 먹으면 사람들이 존중해준다. 늙는 것의 가장 큰 이점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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