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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Dec 23. 2023

영화 선진국을 만드는 극장 문화

프랑스 영화산업

프랑스는 모두가 아는 영화 선진국이다. 최초의 영화를 만든 르미에르가 프랑스인이고, SF영화의 시초인 조르쥬 멜리아스도 프랑스인이고, 가장 영향력있는 영화제 칸도 프랑스에 있다. 할리우드가 전세계 영화 시장을 먹어가는 와중에 자국시장을 지킨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자국 영화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유지한 것은 아니다. 전 유럽의 영화 시장이 할리우드에 먹히는 와중에 자국 시장을 지킨건 영화의 힘이 아니라 정책이었다.


프랑스는 영화에 대한 규제가 살벌한 나라다. 우선 가장 큰 특징은 홀드백 기간이다. 프랑스는 영화가 극장에 걸린 후 OTT 등의 온라인 플랫폼으로 가기까지 홀드백 기간이 무려 2년이다. 실로 어마어마한 규제가 아닐 수 없다. 우리나라는 홀드백 기간에 대한 규제가 아예 없고, IPTV 동시개봉이나 OTT와 동시개봉하는 일이 잦다. 영화가 첫주에 스코어가 좋지 않으면 일주일만에 IPTV로 직행하기도 한다. 코로나 시절 극장 개봉작의 평균 홀드백 기간은 단 2주였다. 2주만 기다리면 집에서 편하게 볼 수 있으니 사람들은 극장에서 볼 영화와 집에서 볼 영화를 철저히 구분하기 시작했다. 그럼 프랑스에서는 극장에서 보지 않으면 2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말일까? 그건 아니다. 프랑스에서는 여전히 DVD가 많이 팔린다. DVD. 용어조차 생소하게 느껴지지 않나. 블루레이도 아닌 DVD. 물론 블루레이 시장도 활발하지만 DVD 시장이 여전히 호황이라는게 충격적이었다. 우리나레엔 없는 2차시장이 존재하고, 2차 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에 저예산 영화가 많이 만들어질 수 있다. 2차 시장이 활발한 대표적인 나라는 사실 미국이다. 미국은 2차 시장만으로도 충분히 수익이 나기 때문에 극장 개봉을 노리는 것이 아닌 2차 시장만을 노리는 제작사가 많고, 그 중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제작사는 샤크네이도로 유명한 Asylum이다. 한국은 나라가 작고 전선 지중화가 더뎌 인터넷 선이 빠르게 깔렸고, 그 덕에 온라인으로 영화를 보는 문화가 너무 빨리 정착해버렸다. 2차 시장이 정착하기 전에 인터넷이 더 빨리 깔려버린 케이스랄까. 그래서 한국은 저예산 영화가 없고, 신인은 발탁 기회를 얻기가 너무 힘들다. 프랑스의 홀드백 기간이 부러울 따름이다. 


두번째로 큰 특징은 상영횟수 제한이다. 이건 법이 아니라 사회적 합의로 이루어진다. 8개 이상 스크린을 가진 멀틱플렉스에서 한 영화가 일일 상영횟수의 30%를 넘지 못한다는 합의다. 어벤져스나 아바타 같은 틀기만 하면 노다지인, 흥행이 보장된 영화의 상영횟수도 일일 상영횟수의 30% 이상을 틀 수 없다. 초대형 블락버스터가 90% 스크린 점유율을 보이는 우리나라에서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다. 너무 극장에 손해인 것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고, 관객 입장에서도 맨날 매진사례이라 보고싶은 영화를 못 보는 것이 피해일 수 있지만, 특정 영화 이외의 영화를 보고 싶은 관객에겐 꿈같은 정책이다. 우리나라에서 어벤져스 엔드게임이 개봉할 때 다른 어떤 영화도 개봉하지 않아서 거의 한달간 극장을 가지 못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독과점을 금지하는 이유가 따로 있나. 그만큼 폐해가 많으니까 금지하는 것인데 스크린이라고 다를건 없다. 독과점은 소비자의 선택권을 제한하고 시장의 다양성을 말살한다. 어떤 영화라도 일일 상영회수의 30%를 넘지 못한다면, 아무리 대형 블락버스터가 개봉을 해도 배급사 입장에서는 마음 편하게 자신의 영화를 개봉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에선 상영관을 찾아보기 힘든 리들리 스콧 감독의 나폴레옹이 프랑스에서는 한달 먼저 개봉해서 큰 인기를 끌었다. 우리나라로 치면 이순신 장군을 헐리우드에서 만든 것인데 당연히 프랑스인에겐 궁금한 영화일 것이다. 극장 앞에 줄을 서서 티켓팅을 하는 모습을 보고 신기했다. 스크린 독과점이 안 되니 영화 상영횟수보다 보고싶은 관객이 많아서 줄을 서는 것이다. 부러운 광경이었다. 


세번째 특징은 독립 상영관이 많다는 것이다. CGV와 롯데시네마, 메가박스 3개의 프랜차이즈가 대부분의 극장을 잠식한 한국과 다르게 프랑스는 여전히 독립상영관이 많다. 대형 멀티플렉스 체인도 당연히 있지만 상위 멀티플렉스 체인의 스크린 수는 전체의 30%대다. 나머지는 소형 멀틱플렉스나 독립 상영관이다. 파리를 돌아다니다보면 극장이 있을거라 상상도 하지 못할 골목에 갑자기 극장이 있는 경우를 많이 봤다. 한국도 멀티플렉스 체인이 들어서기 전에 그랬던 것을 기억할 것이다. 독점 시장인 한국의 극장 산업은 독점 산업이 갖는 단점을 모두 가지고 있다. 


자국 영화가 스크린 점유율이 높은 나라는 많았다. 그 중 대부분은 완전히 할리우드에 잠식당해 자국 영화 시장이 없어지다시피 했다. 프랑스가 자국 영화시장을 지킬 수 있었던 이유는 법과 사회적 합의 덕이다. 이제 우리나라 영화시장도 다른 나라들처럼 할리우드에 잠식당하고 있다. 제도를 정비하지 않으면 시간문제다. 홍콩영화시장이 망할 거라고 누가 생각했나. 일본영화시장이 망할 거라고 누가 예상했나. 먹고 사는게 시급하니 예술은 뒷전일 수 밖에 없다는데, 고칠게 너무 많아 예술은 신경쓸 수 없다는데, 세계 경제 10위까지 가놓고 그런 소리를 하면 신경 안 쓰겠다는 말밖에 안 되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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