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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Dec 26. 2023

음식과 식문화, 프랑스를 곁들인

어렸을때 외국에 살았던 걸 글에서 언급했었다. 교환학생도 반년간 유럽으로 갔다. 장기 여행도 4개월 간 적이 있는 등 한국을 떠나 산 경험이 이래저래 많다. 외국에 살면 음식때문에 힘들다는데, 나는 음식으로 고생한 적이 없었다. 음식은 그저 배만 채우면 되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프랑스 방문도 별 걱정을 하지 않았는데, 위기는 3일만에 찾아온다. 


현지인들도 예약을 어려워하는 역사와 전통이 깊은 유명 레스토랑에 갔다. 나 혼자 가는 여행이었으면 죽어도 가지 못할 그런 곳이다. 설레는 마음보다 걱정되는 마음이 컸다. 지난 3일간 프랑스 식을 먹으면서 이미 느끼함 한도치를 아득히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어렸을때 외국에 살면서 느꼈던 것 중 하나가 식당 예절을 철저하게 지키자 였다. 인종을 떠나서 식예절을 지키지 않는 사람은 사람 취급 안 하는 문화니까. 고급 레스토랑일수록 더 심한 것을 잘 알고 있으니 최대한 예절을 지키고 싶었다. 그래서 음식을 남기고 싶지 않았다. 조금 남기더라도 적당히 식사를 즐겼다는 티를 낼 정도까지는 먹고 싶었다. 개같이 실패했다. 메인 디쉬를 반도 먹지 못하고 남겼다. 뭔가 비참하게 패배한 기분이었다. 


외국 음식만 먹고 살아도 별 문제가 없었는데 뭐가 바뀐걸까. 성격상 이걸 분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요리가 맛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조금 먹으면 배가 차서 더이상 먹고 싶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 배가 불러서가 아니라 물려서 못 먹는 느낌. 보통 기름지거나 느끼한 음식을 먹을 때 그런 것을 경험적으로 알 것이다. 버터가 들어가지 않은 음식을 찾아보기 힘든 버터의 나라에서 김치는 커녕 마늘 향조차 맡을 수 없으니 느끼함을 해소할 수가 없었다.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는 기름진 음식을 제공하는 곳일수록 느끼함을 해결할 수 있는 많은 옵션을 제공한다. 가장 대표적인 삼겹살을 보자. 김치, 파채, 양파절임, 편마늘, 고추, 쌈채소, 쌈장, 된장찌개를 곁들여 먹는다. 느끼함을 해소할 수 있는 옵션이 무려 몇 가지냐. 우리가 삼겹살을 인당 2인분 이상을 먹을 수 있는 이유는 곁들임 음식의 수혜다. 못 믿겠으면 삼겹살 한근을 사서 고기만 먹어보시라. 다른 걸 먹지 않고 고기만 먹어야 한다. 장담하건데 몇 점 먹지 못할 것이다. 배불러서? 아니, 느끼해서. 한국은 젖을 떼고 밥을 먹기 시작하면서부터 김치를 접한다. 느끼함을 김치로 해소하는 것이 당연한 식문화에서 자라난다. 그러니 해외에서도 김치를 그렇게 찾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외국에 살 때 김치를 못 먹는 상황에서 양파와 마늘을 그렇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알게 모르게 한국식으로 느끼함을 해결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요리를 해먹지 못하고 나가서만 사먹어야 하는 환경이 되니 마늘은 커녕 양파도 접하기 힘들었고, 그러니 3일만에 질려버렸다. 그럼 프랑스인들은 느끼함을 못 느끼나? 


동료 프랑스 감독들에게 물어보니 놀랍게도 프랑스인들도 느끼함에 대해 알고 있더라. 실제로 젊은 프랑스인들은 요리할때 버터를 점점 덜 쓰는 추세라고 한다. 전통 프랑스식에는 버터가 너무 많이 들어가서 본인들도 느끼하다고. 느끼하면 마늘까진 바라지 않으니 뭐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미국에는 피클이 있고 독일에는 자우어크라우트가 있다. 나름의 느끼함 해소를 위한 곁들임 음식이 있는데 프랑스엔 전무했다. 그럼 이사람들은 느끼함을 뭘로 해결하나 봤더니, 오호라, 식당의 모든 테이블에 공통적으로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바로 와인이다. 느끼한 음식을 제공하는 식당일수록 산미가 높은 와인을 제공했다. 와인의 산미로 느끼함을 쓸어내리고 음식을 먹는 것이다. 아니 김치를 먹을 것이지 굳이 술로 느끼함을 해결해야 하나, 라고 생각하기엔 각 나라는 고유의 식문화를 가지고 있으니 존중해야지. 그런 문화 덕에 엄청나게 다양한 와인이 개발되었고, 문화유산이 되었다. 술을 잘 모르는 사람도 프랑스에서 비롯된 고유명사를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보르도 라던가, 꼬냑이라던가, 샴페인 이라던가. 모두 프랑스 지역 이름이다. 프랑스는 음식과 함께 술을 먹는 식문화를 가졌고, 식 중에만 먹는게 아니라 식 전에도 마시고 식 후에도 마신다. 식전주, 식중주, 식후주 라고 하는데 식전에는 칵테일을, 식중에는 와인을, 식후에는 위스키를 마신다고 보면 이해가 편하다. 그냥 편하게 저렇게 쓴 것이지 사실 종류가 어마무시하다. 우리가 와인을 먹을때 많이 사용하는 '마리아주'라는 단어도 불어이고, 원래 뜻은 영어의 marriage와 같은 결혼이다. 음식과 술의 결혼, 궁합을 마리아주라고 하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술을 좋아하는 민족이라고 하면 주구장창 소주만 먹는 한국이 아니라 프랑스가 아닐까 싶다.


피곤하고 몸도 좋지 않아서 술을 마시지 않은지 꽤 됐음에도 느끼함을 와인으로 해소함을 깨닫고 식중주로 한두잔 마셨다. 확실히 음식이 더 많이 들어갔다. 하지만 와인도 술은 술인지라, 피곤함이 배가 되는건 말해 뭐하나. 한국으로 들어와 다시 금주 생활을 하고 있고, 느끼함을 김치와 마늘로 마음껏 해소하고 있지만, 가끔 음식과 곁들어 마시던 와인의 산미가 생각난다. 술 말고 다른 옵션을 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지금까지 생각나는 것 보면 그 매력은 확실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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