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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Jan 04. 2024

거절에 익숙해지자

거절 당하는걸 기분 좋게 받아들일 사람이 있을까 싶다. 난 어려서부터 거절을 참지 못했다. 여리고 예민한 성격으로 태어났다. 소아비만이었지만 사춘기가 오기 전까진 괜찮았고, 사춘기가 질풍을 넘어 쓰나미노도로 와버리자 문제가 커졌다. 사랑은 언제나 일방향이었고, 거절을 당할때마다 못난 외모를 탓했다. 그래서 살을 빼고 외모를 가꿔 고등학교에 가서야 첫 연애를 할 수 있었다. 거절당하는게 너무나 두려워 그 후의 연애도 소극적이었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오기 전에 내가 다가간 적은 손에 꼽는다. 나를 좋아한다고 밝힌 상대와 연애를 하거나, 서로에게 호감이 있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상태에서만 연애를 했다. 그래서 ‘고백’이라는걸 딱히 해본 적이 없다. 첫 연애 이후 대학교 1학년때 한번 했던 것 같은데, 거절을 당했고, 내가 거절을 얼마나 참지 못하는 지 또다시 증명되었다. 고기를 끊고 운동만 해서 완전히 체질을 바꾸어버렸으니 말이다. 군대에 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계속 고기를 먹지 않았을 것이다. 군대에서는 고기만 먹지 않는 라이트한 채식조차 불가능하니까. 고기를 왜 끊었는지 이유는 기억나지 않는다. 뭔가 ‘나’라는 사람을 완전히 바꾸고 싶어했고, 여러가지를 시도했던 것 같다. 거절 한 번 당했다고 스스로를 개조하려고 했던 것이다.


좋은 대학에 갔고, 좋은 회사에 취직했고, 좋은 영화학교에 갔다. 장편 입봉도 빨리 했다. 하지만 장편이 기대만큼의 성과를 이루지 못했다. 대중에게 거절당한 느낌이었다. 영화계에서 내 입지는 바닥이었다. 이름을 말하면 들어본 적이 있는 영화를 찍었고 감독 취급도 받는 주제에 그런 생각을 했다. 입봉을 해놓고도 이런저런 프로그램에 지원해 당선된 것도 내가 정말 바닥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남이 봤을때는 입봉도 한 사람이 왜 이 프로그램을 하고 있냐, 참 부지런도 하다 라는 인상을 받았던 것 같다. 부지런히 뛰어다닌덕에 상업 각색도 했지만 여전히 난 상업장편을 찍지 못했고, 여전히 영화계에서 거절당하고 있다고 느낀다. 그러다 생각했다. 거절 당하면 안 되나?


내가 상대방을 좋아한다고 해서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야 하는 건 아니다. 상대방이 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내가 못난 사람인 것도 아니다. 거절당했다고 세상이 끝나지도 않는다. 그러니 거절을 너무 마음에 두는 건 내 손해다. 생각해보면 거절이 두려워 날려보낸 기회가 너무 많다. 그 기회가 어렸을 때는 이성관계였지만, 이제는 커리어다. 거절에 익숙해질 수만 있다면 날려버릴 기회 따위 없을 것이다. 그래서 거절에 익숙해지기로 했다. 예전엔 연락했다가 씹힐까봐 두려워 연락하지 못했던 업계 관계자들에게 문자를 보내고 메일을 보냈다. 당연히 씹힌 것들이 많았지만, 답장이 오기도 했다. 그래서 미팅을 했다. 거절이 두려워 연락하지 않았으면 생기지 않았을 미팅 기회다. 오늘은 직접 제작사 사무실로 찾아가봤다. 도저히 해당 제작사에 연이 닿지 않았고, 대표번호는 전화하니 없는 번호였다. 주소지가 명확했기에 그냥 찾아갔다. 문전박대는 당하지 않았지만 시나리오를 받아주진 않았고, 미팅은 했지만 상대방 명함은 받지 못했다. 괜찮다. 어차피 가만히 있었으면 하지도 않았을 미팅이다. 상대방이 날 무시한거라고, 내 진면목을 몰라봐준다고, 화내고 기분 나빠할 필요 없다. 그냥 연이 아닌거다. 이유없이 날 좋아하는 사람도 있듯이, 이유없이 날 싫어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하나에 다 연연하지 말자. 내가 예수도 아니고 모두의 사랑을 받을 필요 없다. 모두의 인정을 받을 필요 없다.


거절에 익숙해지자. 나이를 먹을수록 움츠러들고 소극적이 되지 말자. 차라리 더 뻔뻔해지자. 세상 무너지나. 그냥 한 사람 스쳐가는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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