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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Jan 15. 2024

불균형

영화계 불공정 이슈가 하루가 다르게 터져나오고 있다. 작년엔 내가 같이 일했던 적이 있는 제작사가 감독과 각본+연출을 한데 묶은 해괴한 계약서로 계약을 체결한 후 감독 의사와 상관없이 다른 감독을 선임해 영화 촬영을 강행한 사건이 회자된 적이 있다. 올해는 해가 바뀌자마자 1인 제작사 대표이자 작가 감독이 다른 작가가 쓴 작품을 본인이 단독 저작권으로 등록하고 대형 제작사와 계약을 맺어 이슈가 되고 있다. 이 1인 대표가 이슈인 이유는 작년에 대형 사이즈의 영화를 본인의 각본으로 찍었는데 이번 이슈 때문에 파고들어가 보니 그 각본도 원안자가 따로 있더라는 거다. 한마디로 본인이 처음부터 쓴 시나리오는 하나도 없고 남이 쓴 것을 윤색만 했으면서 본인이 각본을 썼다고 착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1인 대표 얘기를 들어보면 처음부터 공동창작이었고, 마지막은 본인이 다 고쳤으므로 본인이 공동저작권을 갖는 것이 맞고 최종적으로는 본인의 아이템이라는 주장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영화계에서 많이 만났다. 대략 이런 방식으로 흘러간다. 첫째, 본인에게 이런 아이템이 있는데 한번 써볼 생각이 있느냐고 한다. 이야기의 핵심이 아무것도 없어서 그 핵심을 질문하면 말이 점점 많아지면서 질문에 대한 답을 하지 못한다. 결국에는 화를 내면서 그걸 작가가 써야하는거 아니냐고 한다. 둘째, 그렇게해서 내가 이야기의 핵심을 모두 써서 가져다주면 이게 본인이 하고자 했던 얘기라면서 잘 써왔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어떻게 다듬어야 할 지에 대해 이야기해준다. 미팅이 거듭되면 내가 처음 써줬던 초안을 이 사람은 자기가 쓴 것으로 단단히 착각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게 자기 머리에서 나온 거라고 생각하는 거다. 이런 일이 반복되자 기획개발 일을 그만 두었다. 내가 접했던 모든 기획개발 일은 페이퍼 한 장 없이 구두로, 혹은 페이퍼가 있더라도 이야기의 핵심이 아무것도 없는 상태의 아이템을 작가에게 써오라고 일임하는 형식이다. 그런 일은 내가 아무리 열심히 써봤자 저작권을 주장하지 못한다. 제작사가 자기들 아이템이라고 우기니까. 이게 얼마나 어처구니 없는 일인지 설명을 해주겠다. 제작사 A가 '1212사태를 가지고 영화를 만들자'라는 아이디어가 있다고 하자. 이 아이디어로 파생될 수 있는 이야기의 수는 무한대에 가깝다. 최규하가 주인공일 수도 있고, 일반 병사가 주인공일 수도 있고, 기자가 주인공일 수도 있고, 합참사령관이 주인공일 수도 있다. 이야기의 시작이 박정희 서거 일수도 있고, 3선 개헌일수도 있고, 최규하가 당선되는 통일주체국민회의 표결일수도 있다. 안타고니스트가 누가 되는지, 이야기의 엔딩은 어떻게 되는지 등 이야기는 말 그대로 무한하다. 제작사 A 는 이야기를 쓸 능력이 없다. 그래서 작가 B를 섭외한다. 작가 B는 '서울의 봄' 구조를 짜온다. A는 B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어서 이걸 이렇게 수정하고 저렇게 수정해보자고 한다. B는 A가 시키는대로 이것저것 수정한다. 그러다가 A는 B가 더이상 글을 쓸 능력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다른 작가나 감독인 C를 섭외해 시나리오를 쓰게 한다. 그리고 저작권자는 A와 C가 공동으로 갖게 된다. 서울의 봄 영화의 전체구조는 B가 짰지만, 저작권도 없고 받은 돈은 기획개발비 100만원이 전부다. 이런 일이 비일비재로 벌어진다. ('서울의 봄'이 천만을 넘고 현재까지도 큰 사랑을 받고 있기 때문에 예시로 든 것일 뿐, 서울의 봄이 이렇게 쓰여졌다는 뜻이 아니다.) 다시 1인 대표의 저작권 유용으로 돌아가보자. 그 대표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었으면 애초에 왜 작가를 섭외했을까? 해명을 보면 본인을 작가라고 하시던데, 작가가 이야기를 쓰지 못해서 다른 작가를 섭외하나? 그리고 본인이 손을 댔기로 소니, 그것을 본인의 창작물로 착각하면 안 된다. 본인이 '말'로 한 '설명'에서 이야기가 시작되었다는 착각 좀 하지마라. 당신의 '말'은 이야기 창작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창작은 작가가 한 거다. 정말로 당신이 창작한 이야기라면, 당신이 썼겠지. 작가라며. 


아직 수면위로 올라오진 않았지만 영화계에서 유명한 제작사가 기성 감독의 시나리오를 탈취해 다른 감독에게 연출을 맡겨 제작이 들어가고 있다고 한다. 이 문제도 그놈의 계약서 때문에 발생했다. 이 시나리오의 원작은 희곡으로 기성 감독이 이걸 영화 시나리오로 발전시켰다. 제작사는 희곡 원작자와 기성 감독 두 명 모두에게 영화화 권리계약을 체결해야 옳지만, 코로나로 자금 사정이 녹록치 않다는 핑계로 희곡 원작자와만 영화화 권리계약을 체결하고, 감독과는 소액으로 연출 계약만 체결한 후 나중에 투자가 되면 각색 연출 계약을 따로 하기로 했단다. 그리고 투자가 되고나니 기성 감독을 잘라버리고 동의도 구하지 않은 채 다른 감독과 연출 계약을 체결해버린 것이다. 제작사 사정 봐줘서 개떡같이 계약을 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감독, 작가에게 돌아온다. 그렇다면 개떡같은 계약에 서명한 사람의 잘못일까? 사기 범죄의 잘못은 피해자가에게 있나? 사기꾼이 잘못한 거다. 모든 원인은 제작자 VS 감독, 작가 의 힘의 불균형에서 나온다. 우리나라는 개인에게 힘이 너무 없다. 영화화 권리계약, 각본 계약, 연출 계약 모두 영화의 저작권을 제작사에게 넘기는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 수많은 인력이 투입되는 영화의 경우 저작권 관계가 복잡하면 일이 진행이 되지 않기에 관행적으로 이렇게 해온 것인데, 이 법의 틈새를 악용하는 제작자가 너무 많다. 헐리우드처럼 파업을 해버리면 좋겠지만, 우리나라는 작가, 감독을 노동자로 보지 않는다. 따라서 작가조합이나 영화감독조합은 노동조합이 아니고, 파업이 불법이다. 노동조합만 파업을 할 수 있다. 미국은 그럼 왜 파업하냐고? 미국은 작가조합도 노동조합이고, 배우조합, 감독조합 모두 노동조합이다. 블루컬러만 노동조합에 가입이 자유롭고 화이트컬러는 노동조합 가입을 눈치를 봐야하는 한국에서 예술인도 노동자로 인정해달라고 하는건 사치다. 게다가 우리나라 영화감독은 이런 불합리한 판을 너무 잘 알기 때문에 첫 영화를 성공하면 가장 먼저 하는 것이 본인의 제작사를 차리는 것이다. 그래서 성공한 영화감독들은 모두 자기 제작사가 있다. 영화감독이면서 제작사 대표다. 따라서 영화감독조합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조합원들은 모두 제작사 대표이다. 그래서인지 영화감독조합은 철저하게 제작사 편이다. 내가 제작사에게 돈을 떼이고 개고생하고 있는데 영화감독조합에서 해준 일은 0이다. 정말로 아무것도 해주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한 피해자 감독들도 마찬가지로 영화감독조합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이럴거면 조합이 왜 필요한지 의문이다. 내가 상업영화로 성공하게 되면 두 개의 선택지를 두고 고민하게 될 것이다. 영화감독조합의 불합리함을 폭로하고 제작사를 가지지 않은 감독만 가입이 가능한 새로운 영화감독조합을 만들 것이냐, 나도 내 제작사를 만들 것이냐. 아직 성공의 길은 요원하니 나중에 생각하자. 


역도를 하는데 고질병인 왼쪽 어깨가 아프다. 어깨에 관련된 모든 재활운동을 해봤지만 또 재발했다. 그리고 오늘 스쿼트를 하면서 내 골반이 앉을때 회전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앉을 때 골반이 시계방향으로 회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왼쪽 어깨가 앞으로 나간다. 그러니 역기를 머리 위로 드는 동작을 했을때 머리 뒤로 보내야할 역기가 왼쪽만 앞으로 나가게 되고, 그 부하가 왼쪽 어깨 앞에 걸리면서 데미지가 쌓이는 것이다. 아무리 어깨 재활을 해봤자 근원적인 문제인 골반 불균형을 해결하지 않으면 계속 아플 것이다. 원인을 고쳐야 한다. 영화계 힘의 불균형을 잡는 것이 가능이나 할까. 나도 빨리 힘을 얻어서 불균형에서 이득을 보는 포지션으로 이동해야 할까. 그래서 이 불균형을 와인을 마시면서 방관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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