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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Dec 25. 2023

조만장자가 되면 뭐하고 살까

세상에서 가장 인기있는 컨텐츠 중 하나는 부자가 되는 법이다. 서점에는 부자가 되기 위한 방법을 다룬 수백권이 책이 있고, 유튜브에도 부자가 되는 법에 대한 동영상이 셀 수 없을 만큼 많다. 사람들은 모두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지인 중에 이 욕망이 유달리 센 사람이 있는데, 모든 욕망의 맨 앞에 돈이 온다. 식욕, 성욕, 수면욕보다 돈에 대한 욕망이 앞서있는 사람은 흔치 않다. 생존과 직결된 인간의 원초적 본능보다 돈을 중시하는 것이니까. 물질에 대한 욕망도 아니다. 돈 그 자체이다. 1년에 1억을 넘게 벌지만 10년된 컴퓨터를 쓰고 있다. 차가 필요해 중고로 경차를 샀다. 물질에 대한 욕망이었다면 돈을 번 만큼 쓰는게 있어야 할텐데 그 분이 돈을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다. 1년에 억단위 돈을 번 지도 10년 가까이 되는 것 같은데 반지하에 산다. 내가 첫 영화를 개봉했을때 그 분이 했던 첫 질문은 돈을 얼마나 벌었냐는 거였다. 내가 첫 각색 계약을 맺었다는 소식을 알렸을때 첫 질문은 얼마에 계약했냐는 거였다. 이성과 데이트를 했다고 하면 데이트에 얼마를 썼냐고 물어본다. 상대는 어떤 사람이고, 어딜 갔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지에 대한 질문은 돈 이야기가 끝나야 나온다. 밥은 먹지 않고 단백질 쉐이크만 먹는다.  데이트는 집에서만 한다. 원초적 본능보다 돈을 우선시한다는 이야기를 믿지 않을까봐 예시가 길어졌는데 이 정도면 충분했으리라 본다. 


대학을 졸업하고 각자 다른 산업에서, 다른 직종으로 커리어를 시작하면서 공통점이 점점 줄어들기도 하고, 학교라는 같은 공간에 있지 않다보니 친구들과의 관계는 점점 멀어진다. 특히나 나는 출근한 날 퇴근하지 못하는 광고산업에 들어갔고, 겨우겨우 사적인 만남을 할 수 있는 상태였으니 친구를 더욱 가려만나게 되었다. 가리는 기준 중에 하나가 공통 관심사가 있느냐 없느냐였다. 어느 순간 어떤 모임에 가더라도 돈 얘기만 하더라. 아파트를 사야되네 말아야되네, 이 주식에 얼마를 넣었네, 차를 이걸 뽑았네, 돈 얘기만 하니 그 주제에 별 관심이 없는 나는 지루할 수 밖에. 카톡 단체방에서 돈 얘기만 하는 단체방부터 먼저 나가기 시작했고, 곧 인간관계는 순식간에 쪼그라들었다. 그들에게 던졌던 공통질문은 '부자가 되면 뭐하고 살건데?'였고, 돌아오는 대답은 천편일률적이었다. 


가장 많이 돌아오는 대답은 세계를 여행하면서 자유롭게 살 거라는 거다. 나는 그리 친절한 성격이 아니고, 호기심이 해결될 때까지 질문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회성이 결여된 인간이다. 어디를 갈 거냐, 거기서 뭘 하고 싶냐, 얼마나 있을거냐 등 후속 질문이 들어오면 슬슬 짜증을 내기 시작한다. 거기까지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 정말 막연하게 나에게 죽을때까지 다 쓰지 못할 정도로 돈이 많다면 여행을 다녀야지, 라고 생각하는 거다. 가고 싶은 나라도 없고, 살고 싶은 나라도 없으며, 어디에 가서 무엇을 할 거라는 계획은 더더욱 없다. 놀라운 사실은 위에서 언급한 욕망 1순위가 돈인 분도 여행이라고 대답했다는 것이다. 참고로 그 분은 지난 10년간 여행을 간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국내 여행 포함이다. 


가족과 함께 취미생활을 하면서 편하게 산다는 대답도 많이 한다. 그럼 나는 물어본다. 어떤 취미생활을 하면서 살 거냐고. 게임, 낚시, 서핑, 골프 등 다양한 답변이 돌아온다. 지금까지 벌어놓은 돈으로 적어도 향후 몇 년은 그 취미를 하면서 살 수 있지 않느냐, 취미가 가끔씩 하니까 재밌는 거지 계속 하면 재밌을 것 같냐, 후속 질문이 들어가면 대부분 이 질문으로 회피한다. 그렇게 쉬고 나면 커리어가 끊겨서 돈을 못 벌게 되는거 아니냐고. 그럼 나는 또 항상 하는 질문을 한다. 얼마까지 벌어야 당신이 그렇게 원하는 취미생활을 하며 가족과 편하게 사는게 가능하냐고. 어떤 대답이 돌아올까? 당신이라면 그 액수가 얼마라고 생각하나? 나는 지금껏 이 액수를 구체적으로 대답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보지 못했다. 대부분은 대답은 강남에 빌딩 한채 정도 살 수 있는 돈이라고 한다. 평생 직장인 하는 사람이 어떻게 강남에 빌딩을 사나. 허황된 목표에 웃음이 나온다. 목표는 구체적이고 달성 가능한 것을 잡아야 한다고 초등학교때부터 배우지만, 돈에 관해서는 모두가 허항된 목표를 세운다. 아니, 목표라고 부를 수가 없다. 정확한 액수도 없고, 언제까지 달성할 것인지 기한도 설정되어 있지 않다. 허항된 가정을 삶의 목표라며 살아가고 있다. 당연히 위에 언급한 그 분의 부자 기준도 빌딩 한 채였다. 돈이 목표인 사람들은 놀랍도록 같은 답변이 나온다. 


나는 일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난 이재용 만큼 재산이 많아도 영화를 찍을거다. 확신할 수 있다. 영화가 아니더라도 무언가 일을 찾아서 할 것이다. 이재용과 워렌 버핏이 매일 아침 같은 시간에 출근하면서 내 가설을 증명해주고 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돈이 있건 없건 일을 한다. 영화만 보고 살아오고 있는데 내가 영화를 못하게 되면 무엇을 하고 살아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다른 글에서 밝혔다. 40년된 구옥에서 살던 때와 다르게 지금은 좋은 집에서 살고 있고, 당분간 알바를 하지 않아도 될 만큼 통장도 채워졌다. 지금 내가 무얼하고 살아가느냐 와 내가 부자가 되어 사는 게 그렇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영화로 성공을 했든 안 했든,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압박이나 무언가로 성공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벗어난 상황이 된다면, 난 무엇을 하고 살까? 역도는 두시간이면 끝난다. 요리하고 집안일 하고나면 남는 시간이 너무 많다. 대부분의 시간을 책을 읽는다. 은퇴한 우리 부모님보다 삶을 제대로 영유하지 못하고 있다. 남들에겐 부자가 되고나면 뭘 하고 살 거냐고 그렇게 캐묻던 내가, 막상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니 심심해하고 있다는게 미치도록 부끄럽다. 상업 영화를 해야한다는 높은 목표가 내 삶을 지탱해주고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돈이라는 막연한 목표를 좇는 그들과 내가 뭐가 다르단 말인가. 목표가 없어지면 아무것도 하고 싶은게 없는 비루한 삶인 건 똑같은데. '난 일을 좋아하니까 부자가 되어도 일을 하고 살 거야'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뭘 하고 살아야 할까. 그대 어떻게 살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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