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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enaissance Dec 13. 2023

결국 운

파리에 가는 비행기에 오르기 전 나는 건강이 가장 걱정되었다. 마지막으로 유럽에 갔던 것은 2019년. 여전히 연락하는 유일한 대학 인맥은 동아리 친구들이다. 취미라는 공통점으로 묶여있기 때문에, 여전히 그 취미를 하고 있든 말든 가슴 한 켠에 열정이 남아있기에, 서로 다른 직업을 가지고 살아가도 가치관이 비슷하기 때문일 거다. 관심없던 학부 전공 친구들은 내 곁에 한 명도 남아있지 않다. 운 좋게 대학 졸업 후에도 계속 연락하고 있는 동아리 친구들이 휴가를 맞춰서 네덜란드에 가자고 했다. 이유는 역시나 그 취미 때문이다. 굉장히 큰 대회가 열리는데 구경겸 가자는 거다. 남자 8명이 휴가를 맞추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데 이것이 일어났습니다. 나는 영화 후반작업이 길어져 생활비 대출을 받던 때라 가지 않겠다고 했는데, 경력이 아주 잘 풀린 동아리 친구들이 내 비행기표와 숙소비를 대주기로 했다. 내가 이런 대우를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 전혀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렇게까지 해준다는데 안 가는게 말이 안 되는 것 같아서 마지못한 척 신나게 갔다. 13시간 비행을 힘들다고 느끼지 못했다. 불과 4년 밖에 흐르지 않았지만, 인간의 노화는 세 번 오고, 그 첫 번째를 맞이한 나는 이제 장시간 비행이 부담스럽게 느껴졌다. 그리고, 전쟁이 비행이 영향을 줄 것이란 것을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었다.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으로 인해 비행기가 두 나라의 영공을 지날 수가 없다. 돌아서 가야하기 때문에 인천에서 파리까지 15시간이 걸렸다. 가뜩이나 건강이 염려된 차에 비행시간까지 늘어나니 미칠 지경이었다. 4년 전엔 불면증 때문에 잠을 거의 못 자고 비행기에 타서 술마시고 신나게 자면서 갔다. 이번엔 위가 아파서 술을 마시지 못했고, 불면증은 그때보다 심해져서 비행기에서 잠을 자지 못하는 몸이 되어버렸다. 영화 네 편을 보면서 겨우 버티고 파리에 도착했을 때는 온 몸이 녹초가 되어 있었다. 돌아올 때는 자전방향의 영향으로 13시간이 걸렸는데, 역시나 잠을 자지 못하고 영화를 네 편 때렸고, 한국에 오자마자 한 것은 병원에 가는 것이었다. 


브런치 글을 순서대로 읽은 분이라면 내가 영진위 프로그램의 면접을 보고 분노를 토로한 글을 보았을 것이다. 그 면접, 붙었다. 그래서 파리에 갔다. 면접 내내 무차별 폭격을 당하고 왜 붙었을까. 그 의문이 파리에 있는 내내 머릿속 한 켠에 자리잡았다. 여러 명의 한국 감독들이 같이 갔는데 내가 영어를 제일 잘 했다. 영어 잘한다고 하면 재수없게 생각하지만 그럴 필요 없다. 한국에서 영화 감독이 영어를 잘 한다고 메리트가 있는게 아니니까. 상업영화 찍은 감독이 잘난거지 영어 잘하는 독립장편 감독이 잘난게 아니다. 영어 잘 한다고 기회가 주어지지도 않는다. 우리나라는 북쪽으로 길이 막혀서 섬나라나 마찬가지고, 해외 로케로 영화를 찍으려면 제작비가 천정부지로 높아지기 때문에 해외 스태프와 일할 일이 없다. 독립은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영어를 잘할 필요가 어디 있겠나. 영어를 잘하는 내가 이상한 거고, 그래서 프로그램 내내 한국 대표로 말을 해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깨달았다. 면접에서 나보다 영어를 잘 하는 사람이 없었구나. 내용 면에서 그렇게 까이고도 내가 뽑힌 건 영어 때문이겠구나. 흔히들 게임에서 말하는 딜러 역할을 시키기 위해 나를 뽑았구나. 프랑스 쪽에서 이니시를 걸면 영어로 딜을 넣기 위한 포지션. 결국 운이다. 


글을 쓰는 내내 운 이라는 단어를 많이 사용했다. 생각해보면 다 운이기 때문이다. 어렸을때 해외에서 살았던 것도 운이고, 그래서 영어를 남들보다 열심히 공부해야 했던 것도 운이고, 면접에서 붙은 것도 운이다.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감독이 있었다면 나는 떨어졌을 것이다. 나의 잘남보다 중요한건 누구와 함께 면접을 보았는지이다. 파리에 간 것도 운이고, 전쟁 때문에 비행시간이 길어진 것도 운이다. 세상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보다 통제할 수 없는 것이 압도적으로 많다. 나라고 별반 다르지 않다. 내가 내 인생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은 착각에 불과하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지만 그게 성공으로 연결될 거라는 보장은 없다. 내가 더 열심히 살았다고 상업영화 연출을 하게될 확률이 올라가지 않는다. 누군가는 단편 영화로 장편상업을 바로 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단편 필모도 없이 투자사에 있다가 장편상업에 데뷔하기도 한다.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에 스트레스 받지 않고자 노력하지만 잘 되지 않는다. 목표하는 바가 있는데 잘 되지 않는다고 해서 당신이 모자란 것이 아니다. 기회가 주어지지 않음에 안타까워 할 수는 있어도 자책할 필요는 없다. 당신 탓이 아니다. 나에게 하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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